제목: 소(牛)
■ 성경구절
ampbull 출21:35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살아 있는 소를 팔아 그 값을 반으로 나누고 또한 죽은 것도 반으로 나누려니와
ampbull 출22:30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바칠 때) 네 소와 양도 그와같이 하되 이레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여드레 만에 내게 줄지니라
ampbull 출23:19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 묵상하기
ampbull 창세기에서, 야곱이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땅에 갈 때, 야곱은 자신의 생업인 목축업을 계속 하기위해 고센땅에 머무르겠다고 했다. 목축이 주업인 유대민족에게는 동물에 대한 규율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ampbull 출애굽기에서도, 동물의 첫새끼를 하나님께 바칠때도 함부로 떼어놓지 말라는 규율을 두고 있고, 염소새끼를 삶을 때도 그 어미의 젖으로는 삶지 말라고 하셨다.
ampbull 하나님은 동물을 다룰 때도, 일반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다루라고 하시는 것 같다.
ampbull 요며칠간의 큐티본문에 소가 많이 등장하는데, 소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동물이라 묵상을 할 때마다 소에 대해 생각나는 일이 있다.
ampbull 나에게 부여된 첫임무가 #039소키우기#039 이다.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집에 수송아지 한마리가 들어왔다. 남이 맡긴 송아지인데 어른 소가 되면 시장에 팔고 그 댓가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소풀을 해날랐다.
ampbull 왼손잡이인 나에게 어른의 오른손용 낫은 구배가 반대로 되어 있기에 잘못 다루면 흉기가 된다. 풀을 벨 때는 풀의 밑둥에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낫질을 해야 한다. 한번은 부주의하여 오른손 검지가 뼈가 보일만큼 낫에 잘렸다. 옷을 찢어 응급조치했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기에 울지도 않았다. 그때 상흔이 아직도 뚜렸하게 남아있고, 필기구를 쥘 때마다 눈에 보인다.
ampbull 여름방학 때는, 소는 휴식기다. 이때는 동네 아이들이 모두 소를 끌고나와서 야산에 방목한다. 4학년 때쯤 친구들과 소를 방목해놓고, 개울가에서 해지는줄 모르고 가재잡이를 했다. 어둑해져서 산을 보니 소떼가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은 소찾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그 소가 우리 소가 아니므로 반드시 찾아야했다. 산을 하나 넘으니, 사방이 캄캄해졌다. 다행히 소들은 함께 모여있었다. 소들이 차고 있는 요롱소리가 우렁차게 들렸고, 우리 소를 찾아 끌고오니 동네 소들이 모두 따라왔다. 할아버지는 내가 산에서 돌아오지 않자, 나를 찾으러 산으로 가기위해 동네 풍악대를 소집하고 계셨다. 단석산 기슭에 위치한 우리 동네 야산에는 노루도 있었고, 납짝발이라고 불리던 작은 맹수도 살던 때였다.
ampbull 소는 무럭무럭 컷다. 어느날은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던 소가 그동네에서 가장 큰 황소에게 싸움을 걸더니 단번에 큰 황소를 이겨버렸다. 그날부터 우리 소를 더 아꼈고, 더 친해졌다.
ampbull 그리고, 5학년 여름방학 때, 부모님이 계신 대전에 잠시 들렸는데, 나의 전학이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도시학교의 입시경쟁에 휘말렸고, 고향의 소는 잊고 지냈다.
ampbull 이런 사연이 있는 나는 성경을 묵상할 때 소가 등장하면 어릴 때 키웠던 그 소가 생각난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지금, 만일 소를 잃어버렸다면, 어릴 때 혼자 넘었던 그 산을 넘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니, 못할 것 같다. 그 야산에는 무덤도 많다. 그러면 어릴 때 그 힘은 어디서 왔을까? 황폐해진 가정경제가 나를 움직이게 했던 것 같다.
ampbull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평안한 지금 나의 믿음이 연약해 보이지만, 내가 절체절명의 순간(예를 들어 생의 마지막 순간 등)에는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그 은혜에 의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몇주전 코로나의 터널에 홀로 갇혀있을 때에도, 오직 주님만이 함께 하심을 느꼈었다.
ampbull 믿음이 일천한 나도 이 정도이므로, 스스로 좁은 길을 택하여 수십년 묵상을 바탕으로 매주 설교하시는 담임목사님의 설교 내용에 성령의 위엄을 느끼며,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사도바울이 사도행전을 통해 알려주듯이, 모든 험한 길을 스스로 택한 바울의 그 행위에 대해 100% 신뢰가 간다.
ampbull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예수님께서 사도행전1:4에서 당부하신 것이, 나에게는 말씀공동체에 잘 붙어 있으라고 하신 당부로 생각된다. 공동체의 도움으로 양육받고 적용과제를 훈련하면서 가다보면 나도 큰 길을 택하는 것보다는 좁은 길을 택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고, 연약한 믿음에 성령께서 때마다 힘을 부여해 주셔서 나에게도 성령의 위엄이 갖춰질 것임을 확신한다. 특히 마지막 죽음의 때에도 성령의 위엄을 갖춘 아름다운 모습을 딸들과 손녀손자들에게도 보일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대해 본다.
ampbull 그런데, 다시 묵상을 다시 해보니, 죽음은 내게 남은 마지막 전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주님은 전쟁은 내게(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셨다. 나의 마지막 전쟁을 오직 주님께 맡겨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