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재 목사님 매일큐티 8.26 녹취본
오늘 큐티인 말씀은 출애굽기 21:28-36절까지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삶의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 원합니다.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 삶의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면~
1. 하나님의 기준을 잘 알아야 합니다.
28절에서는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로쳐서 죽이고 임자는 형벌을 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29절에서는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고 그 임자가 경고를 받았는데도 단속하지 않아 소가 사람을 받아 죽이면, 소는 물론 임자도 죽이라'고 하네요. 주인이 소의 나쁜 버릇을 알고도 관리를 태만히 했다면, 그만큼 받을 형벌이 크다는 것이지요.
우리도 그래요. 자녀의 문제를 알면서도 #039우리 아이는 원래 그래요#039. 방관하며 말씀대로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다면, 그 부모가 나중에 받을 형벌이 크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30절 이유를 보니 '소 주인이 생명의 대가로 속죄금을 내면 자기 생명만큼은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소에 받혀 죽은 자가 아들이든지 딸이든지 법규대로 소 주인에게 부과된다고 해요.남종이나 여종이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종의 경우에는 은 30 세겔을 내라고 하네요. 여러분 은 30 하니까 감이 딱 오시죠?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 소 한 마리 값에 팔았잖아요.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대신하는 속전이 되어 주신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하필이면 종들의 속죄금과 같은 값에 팔리셨다는 게 이해가 되세요? 주님이 그만큼 낮아지고 낮아지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실 때도 여인의 몸에 티끌처럼 낮아지신 주님이시잖아요.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자 낮아지고 낮아지는 겸손의 구원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속에 은혜를 아는 자는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고자 스스로 높아지기보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낮아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적용 질문)
-자녀를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기준인 말씀으로 양육하고 있습니까?
-자녀가 소처럼 들이받는 버릇이 있는 줄 알면서도 우리 아이는 원래 그러니까 차차 나아지겠지 하며 방관하고 있지는 않으세요?
-나를 살리고자 낮아지고 낮아진 주님처럼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내가 낮아져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2. 마음의 동기를 잘 살펴야 합니다.
33절 이후는 #039타인의 짐승에 손해를 입힌 경우의 보상법#039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이 사건마다 구체적으로 법규를 정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이 그래요. 일일이 정해놓지 않으면 오리발 내밀기 십상이잖아요. 자기가 받은 피해만큼 공정하게 복수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한 대 맞았으니까, 나도 한 대만 때려야지~ 이렇게 넘어가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한 대 맞으면 더 때리면 더 때렸지 그래서 어제도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이 성경에서는 공정성에 관한 말씀이지요.
33-34절에 보니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두거나 구덩이를 파고 덮지 않아서 소나 나귀가 빠지면, 그 구덩이 주인이 짐승이 임자에게 잘 보상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이 귀한 가나안 지역에서는 인공적으로 판 이런 우물이 매우 값진 재산이었어요. 대개 그 깊이가 깊어서 구덩의 주인은 우물 입구를 넓은 들판이나 나무 판자 등으로 덮어두어야 했죠. 그런데 주인이 게을러서 구덩이를 열어두는 바람에 소나 나귀가 빠지면, 마땅히 구덩이 주인이 그 손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주인의 단순한 실수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의 게으름과 부주의로 남이 손해를 입었는데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화인 맞은 양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35절에 '소끼리 싸우다가 한 소가 죽으면 살아있는 소를 팔아 나누고 죽은 소도 반으로 나누라'고 해요. 36절에서는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소를 주인이 단속하지 않은 경우엔, 죄는 소를 소로 갚고 죽은 것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앞에 29절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소 주인의 게으름과 부주의를 엄중히 다루십니다. 그런데 다시 35절을 가만히 살펴보니, 소가 살든 죽었든 똑같이 나누니까 죽은 소 주인이 좀 억울할 법도 하지 않나 싶네요. 누구보다도 공정하신 하나님이 왜 이런 기준을 정하신 걸까요? 문제는 #039동기#039입니다. 살아있는 소의 주인에게는 고의성이 없었잖아요. 이 모든 게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살다 보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산 소의 주인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묻지 않고 양쪽 다 함께 손해를 감당하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동기가 사람을 살리는 데 있는지 일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욕심이 있는지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적용 질문)
-나의 게으름과 부주의 때문에 가족과 지체에게 손해를 끼친 적이 있습니까?
-상대가 고의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손해봤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 적은 없나요?
묵상간증)
소처럼 들이받으며, 방황하는 아들을 통해 사랑하고 무심한 엄마임을 회개하게 되었다는 한 집사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입니다.
저희 가정은 남편이 사기를 당하고 보증 선 것이 잘못돼 많은 빚어지게 되었어요. 저도 빚을 갚고자 어린 두 아들을 집에 남겨둔 채 정신없이 돈을 벌러 다녔지요. 그러던 어느 날 큰아들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들이 친구들과 싸우다가 유리창을 깼다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날은 친구들과 패싸움을 해서 교복에 피를 묻혀오기도 했어요. 저는 29절에 #039들이받는 버릇이 있는 소처럼#039 계속 방황하는 아들을 보며 걱정은 좀 되었지만, 사춘기 남자 아이니까 저러다 말겠지 하고, 그냥 넘어갔어요. 그런데 얼마 후에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후배의 돈을 빼앗고 때리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결국 그 일로 저를 비롯한 가해 학생 부모들이 교무실에 소집되었답니다. 그런데 피해 학생 부모님의 진술서를 보니 아들의 죄목이 폭행, 협박, 금품 갈취 등이라고 쓰여 있어서 저는 그 단어들을 보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어요. 그제야 그동안 빨리 빚을 갚아 아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아들이 아프고 외롭다고 하는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은 무심한 엄마임을 회개하게 되었어요. 그날 저는 피해 학생 부모님에게 무릎을 꿇고 눈물로 용서를 구했고, 아들에게는 엄마가 잘못했어라고 사과했어요. 이후 아들은 방황을 멈추고, 공동체에 속해 신앙생활을 잘 했답니다. 지금은 예전에 자신처럼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지도하는 일을 하며, 믿음의 가정을 꾸렸고요. 돈밖에 모르던 저를 아들의 방황을 통해 엄마의 자리로 돌아오게 해 주시고, 삶의 자리에서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감사해요.
저의 적용은~
아들에게 고맙다고 자주 표현하겠습니다.
방황하는 자녀를 둔 지체들에게 무심한 엄마였던 저의 죄와 연약함을 나누겠습니다.
삶의 작은 일에도 그 마음을 알기 원하네 그 길 좁은 길로 가기 원하네~(찬양)
우리가 삶의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기준 즉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는 나를 살리고자 낮아지고 낮아지신 주님처럼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낮아집니다. 삶의 작은 일에도 순종하려면, 우리 마음의 동기를 잘 살펴야 합니다. 사람은 겉으로 나타난 결과로 판단하려고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모두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동기를 보시고, 그에 따라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큐티를 하는 것이 날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039하늘의 언어#039를 이렇게 #039땅의 언어#039로 이렇게 해석해서 나의 삶에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날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 묵상하며, 적용하는 것이 바로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해석해서 우리 삶이 해결돼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삶의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이다지도 구체적으로 그 기준을 말씀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참으로 일일이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오리발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저희들입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잔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깊고도 넓은 사랑임을 깨닫게 도와주시옵소서. 창조주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종처럼 낮아지고 낮아지셔서 은 30에 팔리셨는데, 우리는 자존심과 명예를 내세우느라 구원을 위해 낮아지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또 들이받는 버릇이 있는 소를 단속하지 않은 주인처럼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자녀를 보면서도 차차 나아지겠지 하며, 방관할 때도 있습니다. 참으로 구원의 애통함이 없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주여!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님이 우리의 게으름과 부주의를 엄중히 다루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늘 깨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마음의 동기가 생명을 살리는 데 있는지 내 욕심에 있는지 항상 잘 살펴서 삶의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저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게 도와주시소서.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