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Vs 명령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출1616-36)
똑같은 행동, 다른 결과입니다.
어떤 행동은 겉으로 보기에 전혀 차이가 없어 보이나, 욕심과 집착의 산물로 불순종의 악취를 내기도 하고,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한 사랑의 열매가 되기도 합니다. 포인트는 그 행동의 원인이 무엇이었냐는 것에 따른 다른 결과 였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속은 자, 속인 자로 살았던 삶의 이유입니다.구원이 목적이 되지 않은 행위들의 고단함입니다.
남다른? 종교적 열심이 탁월한 저는 첫아이 태연이를 낳고, 어느 부모들처럼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최선을 다해 최고의 환경을 자녀들에게 주려는 마음은 우리 부부의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비교적 성공적이라 생각했습니다.큰 착각이었죠.
사춘기를 시작으로영유아기와 유소년기에자녀들과 보낸즐거운추억과 자녀들과의 소통에 벌레가 생기고, 장막에불통의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결과물이 황당하여 #039 이게 뭐지?#039 하며 또 다른 우리들 스타일로 회개의 열심을 내기도 종교적기복의 열심을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혼돈과 공허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손쓸수 없는 여러 밤들을 만나, 여러 해가 지나고, 지독한 괴롭힘과 번민이 쌓이다보니, 비로소 내 속에 사랑과 헌신으로 포장된 욕심과 집착이 그 실체를 드러냈고, 자녀들의 영적, 육적 현 상태가 명령대로 순종하지 않은 내 삶의 결론이었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태연이 군입대 이틀 전까지 담담했는데, 하루 전 이되어 불안 우울해 보이는 태연이를 보니 덩달아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동안 이런 상황이 되연 자동으로 올라오는 제 행위가 스물스물 올라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지막 밥상과 섬김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줄까? 기회를 엿보고 온 가족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조율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온 가족이 한 명씩 한 명씩 각 자 밥을 따로 따로 먹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상상한 그림이 아닙니다. 엄마가 차려주는 정성가득한 밥상에 온가족이 새로운 길 가는 아들, 형을 축복하고 기도해주는 모습을 기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흉내를 내보려 했는데, 우울한 태연이, 휴일도 없이 회사간 바쁜 아빠, 불안을 열심으로 퉁치려는 엄마, 무관심한 동생들 사이에서 그런 그림은 과도한 저의 망상 이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이런 인본과 기복에 기대어 나와 우리 가정의 괜챦음을 포장하고 싶은 욕구를 떨치지를 못합니다. 이것이 수고로이 거두러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저의 불순종의 결론입니다.
태연이 생일날 받은 만나, 해산하는 수고를 다시하라,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는 말씀을 항아리에 간수합니다. 또한 오늘 군입대하는 태연이가 군대에서 하늘의 만나를 먹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와 우리 후손을 위하여 매일 매일 말씀대로 순종하여 만나를 항아리에 담아 잘 간수하고, 먹을만큼 거두는 하루하루되기를 기도합니다.
엄마의 회개가 태연이에게 줄 수 있는 군입대 선물이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