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보면서 성자와 준성자를 생각한다.
에스라는 자기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이방결혼을 예사로이 해대는 것을 보곤 기가 막혔다.
자기의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뽑으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예루살렘의 장로들과 백성들이 다 나아와 참회하고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를 보면 성자(saint)라는 생각이 든다.
보기만 해도 호올리한 성자 ,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멀리서 생각하기만 해도 거룩하고 깨끗하고 맑디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
그래서 감히 어떻게 넘볼 수없는 거룩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
역시 그는 세인트 급이다.
그에 비해 느헤미야는 조금 다르다.
그는 자기 백성들의 죄악상을 보면서 자기 머리털을 뽑지 않았다.
자기 옷을 찢지도 않았다.
오늘 본문 느헤미야 13장 15-31절을 보면,
그는 몽둥이와 채찍을 들고와서 그들을 때렸다.
그놈들의 머리털을 뽑아버렸다.
책망하고 저주하며 호되게 나무랐다.
멋있다.
그 과감함이 마음에 든다.
비록 에스라처럼 호올리한 맛은 덜할지 모르지만,
의를 위하여 확실하게 분을 발할 줄 아는 그 배짱이 멋있다.
그를 보면서 배운다.
그리스도인은 배짱이 있어야 하는 사람임을,
침묵할 때와 말할 때를 구분할 줄 알고,
참을 때와 분노를 발할 때를 분변할 줄 아는 사람임을 배운다.
때론 가만 참고 있어야겠지만,
또 때론 불같이 화를 내며 머리털을 쥐어뽑기도 해야하는 것임을,
내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분일진대,
때론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줄 아는 용기와 배짱이 있어야 함을 배운다.
구봉서 얘기가 생각난다.
연예인 교회에 다니고 있을 때 어느 젊은이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고 억측을 부려댔다.
목사는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 젊은이는 자꾸 딴소리를 했다.
그때 잠잠코 듣고있던 구봉서 장로가 일어나 고함을 치며 말했단다.
야 이놈아, 저거 남편 요셉이 믿었다는데 니가 뭔데 안믿어?
.
.
며칠전 우리교회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어느 젊은 교우 한명이 예수의 동정녀 탄생은 번역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태가 히브리어 원어를 잘못 번역해서,
젊은여자라고 해야할 것을 동정녀라고 했다고 강하게 주장을 해댔다.
그건 마태의 실수라고 힘주어 말했다.
앞에 앉아있던 내가 자리를 박차고 책상을 치며 말했다.
어디서 엉터리같은 소릴 지껄여대는게야.
정통 종교회의에서 인정한 사항인데,
당신이 뭔데 교회 한복판에 들어와서 진리를 훼방하는게야?
호되게 나무랐다.
이제까지 한번도 성을 내지 않았던,
교회 안에서 고함 한번 지르지 않았던 내가 그러니 사람들이 아연해했다.
하지만 어쩌나.
진리문제인데,
교회 깊숙이 들어와서 진리를 훼방하는 일에 어찌 잠잠히 있을 수 있을손가.
그리스도인은 때론 그런 용기도 필요하리라 싶다.
말해야 할 때, 꼭 해야할 말을 할 때는
때론 느헤미야처럼 고함도 지르고 눈알도 부라리며 머리칼도 뜯어대는 그런 용기와 배짱 또한 있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목욜의 차가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