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기:
주를 따르기 위해 오늘 내가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
묵상하기:
주님은 사람을 살리시려고 십자가를 지셨고,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고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음을 믿습니다.
오늘 담임 목사님께서는 주님을 따르려면 주는 그리스도시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하고, 내 믿음을 장담하면 안되고, 내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오늘 제가 져야 할 십자가는 부목자로서 교회 홈피에 목보를 올리는 것입니다. 부목자로서 4년차인데 지금껏 부지런히 목보를 올렸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 개편된 목장에서 목보를 올리는 것이 고난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저는 한번도 직접 대면해서는 만나보지 못한 목장 식구들만 있는 곳입니다. 목장에 빠지지 않고 함께 온라인으로 보통 3시간 넘게 인사를 하고 나눔을 6회를 했습니다.
목장에서 제가 56세로 제일 어립니다. 그러니 모두 삶의 연륜이 있으시고 약재료도 많으시고 공감능력도 풍부하시고 사랑도 많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면 없이 비대면으로만 만나니 대면으로 목장 할 때와는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다 좋은데 제가 목보를 쓰려고 하면 나눔 하신 집사님에 대해서 몇 주간은 많이 서먹서먹 했습니다. 직접 만나면 비언어적인 표현도 많고, 가만히만 함께 있어도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핸드폰의 작은 화면에서 만나니 시간이 갈수록 얼굴도 알고 고난도 기도제목도 알게 되지만 왠지 알 수 없는 거리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목자의 사명은 목보를 올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제가 집사님들의 나눔의 내용과 의도대로 정확하게 목보를 올리지는 못하지만 집사님들께서 매주 한주간씩 삶의 현장에서 말씀으로 치열하게 살아내신 나눔을 최대한 올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목보를 올리다보면 자꾸 구구절절 올리고 싶어집니다.
그것은 목장에서 나눔한 것들이 다 소중하게 느껴지고, 나눔에 대한 목자님의 피드백도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권면과 사랑이 담겨 있기에 웬만하면 말씀하신대로 다 올리고 싶은 저입니다.
부목자가 되면 목보쓰는 게 고난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목보를 쓰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가도 조금씩 생겨나는 것이 있고, 나눔을 다시 쓰면서 그 집사님의 상황이 더 이해가 되고 체휼이 되면서 은혜도 많이 받게 된다는 것이 좋은 점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이야 구구절절이 다 올리고 싶지만, 객관적으로 다른 여러 분들이 목보를 보시기에는 저의 구구절절의 목보는 적합하지 않기에 가급적 간결하고 내용을 잘 알아보도록 쓰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적용하기: 목보를 구구절절 쓰는 것이 더 은혜가 된다는 저의 자기 확신을 내려놓고, 누가 보아도 내용을 잘 알아 볼 수 있는 목보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목보를 쓰려면 잘 듣고 잘 요약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하는데, 이 일이 수고라고 생색내지 않고, 주님을 따르기 위한 저의 십자가로 알고 목보를 올리는 취지에 알맞게 써 가도록 애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