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터뜨리면 분노의 종이 된다.
미워하는 마음을 품으면 미움의 노예가 된다.
음란한 욕정을 품으면 정욕의 포로가 되고만다.

- 순천만의 갈대, 사진 : 느티나무 님 -
버려두면 그렇게 된다.
그대로 가만 두면,
무덤위의 잡초가 소리없이 자라듯 자기도 모르게 사로잡혀지고 만다.
악한 영에게, 인정사정 보지않는 사악한 영에게 노예가 되고 만다.
그대로 두면 그렇다.
버려두면 그렇다, 그렇게 되고만다.
그걸 유기[遺棄]라고 한다.
신학적 용어로 그렇게 부른다.
악한 영에게 사로잡히든말든,
마귀에게 종이 되든말든,
그대로 두는 것, 던져두는 것,
그리곤 하나님께서 눈길 한번 던져주시지 않는 것을 유기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이 버리신 사람,
괄호밖의 사람들에겐 그렇게 하신다.
잔혹하게 내버려두신다.
그리곤 거들떠보지도 않으신다.
하지만 백성에겐 다르다.
아들에겐 다르다.
유기하지 않으신다.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마음대로 죄짓고, 마음대로 분탕질하게 버려두지 않으신다.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귀의 종이 되지 않게 하신다.
정욕의 포로가 되지 않게 하신다.
세상의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신다.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아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에스라 9장 9-15절을 보며,
버려두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한다.
버려두셨다면,
포기하셨다면,
나 또한 벌써 멸망당하고 말았을텐데,
부엉이 바위위에 올랐어도 몇번은 더 올랐을텐데..
그래서 감사하다.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않음은,
하나님이 붙들어주시기 때문임을,
자빠지나 또 일어날 수 있음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임을,
그래서 광야에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신 덕분임을 깨닫는다.
오늘도 하루가 밝았다.
오늘도, 이 하루도,
버려두지 않으시는 은혜로 살 것을 믿는다.
두 손으로 꼬옥 품어주시는 사랑으로 살게될 것을 믿는다.
고아와 같이, 사생자와 같이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실 것을 믿는다.
그 믿음으로, 그 은혜로 또 하루를 연다.
오늘도 초겨울의 날씨답지 않게 너무나 포근하다.
맑고도 포근한 날씨에 마음마저 따스해지는 목욜의 아침이다..
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