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환 한 포로들이
성전 재건 후 봉헌식과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없었다면 과연 심판을 이겨냈을까?

나는 야고보서를 묵상하면서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리라>는
말씀이 그토록 율법의 준엄함을 깨우쳤던 야고보서에
기록되어져 있다는게 참 놀랍고 놀랐웠습니다
야고보에서 나를 가장 떨리게 만들었던 말씀은
<긍휼을 행하지 않은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이였습니다

깊이 파고 들어가면 야고보서는 율법을 강조한 것 같지만
모든 율법을 이루는 긍휼을 강조한 것으로 긍휼을 베풀면 율법을
다 지킨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결론에 이르도록 만드는 말씀의 운동력이 있습니다
모든 시험의 긍극적인 목적은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자로
만드는 것이였는데 그렇다면 과연 야고보서에서 겨냥하고 있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 없는 자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입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긍휼을 베푸는 자>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가끔 나 자신도 율법을 가지고
형이상학적인 유희를 즐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율법을 잘 알면 알수록
율법의 자리에 즉 하나님 자리에 앉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다 또 내 자리에 앉는...
돌이켜보면 내가 율법의 자리에 앉았다가
내 자리에 앉기를 반복하는 행위만큼 내가 나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행위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정신차려서
율법 열을 다 이루어야 하는
내 자리에 <늘> 앉아 있다보면 비록 아홉을
이루었을지라도 나는 율법을 어긴 자라는 말씀이
임하는 은총가운데 늘 내 자리를 지키는 겸손의 복을 받지 않나 싶습니다

어떻튼 율법을 다 이루지 못한 죄인이기에
내가 다 이루지 못해 나로 인해 아파하는 나로 인해
상처받은 나로 인해 불행하게 된 이웃으로 인해 나는 아파하고 애통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는 애통하는 자에게는 복을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실제적으로 오늘날 위로와 격려와 소망의
말씀으로 복된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고 계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시대에 사는 우리들의 특권인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패역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어지간해서는
내 의가 깨지지 않으니
그런 사람들을 만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한 두달전인가
나는 내가 얼마나 긍휼이 없는 자인가를
자각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나도 모르는사이에
처음과는 달리 내 의로 그들을 심판하고 있었다는 것이였습니다
그 순간 나를 쳐서 복종시키게 한 말씀이 바로
<긍휼을 행하지 않은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는 말씀이였습니다

그 이후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긍휼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의 차원에 속한 것 중의 하나인 긍휼을 구합니다
내 긍휼은 이미 바닥이 나서
그들을 심판하는 입장에 서있었기 때문이지요
내 자원은 영구하지 않더라고요
이 때의 긍휼만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지혜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시험을 이기고 자랑하리라는
말씀 그대로 자랑할 수 밖에 없는 위로부터의 긍휼인 것입니다
그렇게 긍휼을 구하지 않으면
내가 자꾸만 내 의(나는 너처럼 하지 않는다)와
율법으로 그들을 심판하려 하는 시험을 이겨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바벨론 포로라는
심판을 이기고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봉헌식으로 자랑하고 있는 귀환한 이스라엘을 보며
심판을 이기고도 남아 자랑하도록 만드는 위로부터의 긍휼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