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 대한 김양재목사님의 삼사대 저주에 관해서
작성자명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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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11.20
에스겔 18,2 에 보면 #8222; 아버지가 마신 신포두주 때문에 아들의 이가 시다“ 라는 예전 부터 전해내려 (레31,29) 오는 이스라엘의 속담이 들려있다.
우리 나라의 말에도 #8222;콩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는 말이 있고 독일 속담에서도 #8222;사과 나무에서 사과가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내 삶은 바로 내가 어떻게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결단과 책임에 있는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은 절대로 저주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저주는 징계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3,10 에 #8222;기록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안에 있다“라고 말했다.그는 계속에서 신명기 21,22-23을 인용하여 #82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바울은 이제 예수님을 우리의죄를 연결시키면서 #8222; 그리스도는 자신이 저주가 됨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속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가 받아야 저주를 직접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우리를 죄에서 생명의 구원으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구약에서 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징계와 저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속의 은혜가 있는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찌 전혀 알수 없는 의심과 고통의 시간속에 이스라엘 백성 역시 그들의 고통이 혹시 그들의 부모의 죄때문이라고 생각했을때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말을 한다.
“ 19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8222;
저는 독일에서 독일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사역을 하고 있는 김경희 입니다.
그동안 5년의 별거를 마치고 지난 달 10월 7일에 이혼을 했습니다.
가족의 갈라짐때문에 우리들 교회와 김양재 목사님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고 자주 목사님의 설교와 우리들 교회의 홈을 방문합니다.
목사님께서 #8222;이혼을 하면 저주가 자식의 삼대까지 간다“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그렇게 해석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역시 저주차원에서 말씀하신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절대로 불신결혼, 절대 이혼 반대등 우리들 교회에서 강조하는 몇가지 구호가 제 마음에 모두 닿는것은 아니지만 절대 이혼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이 저주에 있는것이 아니라 내 죄의 부족함을 보면서 영적 후사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주님이 보여주신 보혈, 십자가의 고난을 붙잡고 살라시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심리학에서도 한가정에서 일어나는 내 실수와 잘못때문에 내가 살아 온 삶을 내 자녀의 자녀들이 반복하며 살수 있다는 이론들이 있습니다.
성서에서 보면 이혼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악한것을 아시고 모세를 통해 인정해주십니다.
이혼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이혼을 했을경우 그 이혼에 따른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할찌 즉 이혼을 했다해도 앞으로 살아갈수 있는 방법을 강조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율법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이혼하는 부부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혼을 할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입장과 환경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물론 내 십자가 이거니 생각하면서 우리들교인들처럼 참고 인내하며 이겨나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전 이분들을 존경합니다.
그렇다고 이혼을 이미 하신분을 존경하지 않는것은 아닙니다.
이혼을 하지 않고 사는것이나 이혼을 하고 사는 삶 모두 어렵고 힘든것은 사실입니다.
상대방 파트너의 이해할수없는 행동들 도저히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또 부모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들을 날마다 부딪치며 사시는 분들에게
우리들 교회와 목사님은
내 죄와 실수를 보면서 예수님 십자가 붙잡고 영적 후사를 낳기 위해 견디어 나갈때 언젠가는 하나님과 가정을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는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다라고 말씀을 선포합니다.
전 우리들교회 홈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절대 이혼을 하지 않고 영적후사를 위해 상대방 파트너의 정신적 유체적 폭력 그리고 외도들을 잘견디며 사시는 분들을 경험했습니다.
때론 이혼의 두려움때문에 또 나의 집착때문에 내려놓치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저 날마다 지옥처럼 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법적으로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남남처럼 아니 원수처럼 사는 부부와 그분들의 자녀들이 이혼을 한 부부와 그들의 자녀보다 더 고통을 겪고 사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혼을 하면 자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혼자서 사는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특히 한국의 사회에서는 상상할수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이혼을 할수 밖에 없고 이혼을 앞으로도 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절대로 이혼을 하지 말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우리들 교회와 김양재 목사님께 미안합니다.
부부의 갈라짐에는 반드시 부부의 모두의 책임이있습니다.
물론 모든것은 내 삶의 결론이고 책임입니다.
외도와 폭력 그리고 무책임한 일들을 수없이 하는것은 가정을 준수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는것으로 해석되어지고 아니면 아주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분들 역시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져야합니다
이미 마음이 돌아선 남편과 아내의 마음을 돌려달라고 기도 하며 몸부림 치며 싸워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떠나 집나간 파트너가 다시 돌아올수 있다면 내 죄를 돌아보고 모든것이 다 내 책임과 잘못으로 돌리며 고통을 견디는 우리들의 그늘을 주님은 원하지 않을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제게 가족이 갈라질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고통과 아픔속에서 주님은 신학의 길을 열게 하셨고 공부가 마치자 마자 독일 교회와 학교의 사역지를 주셨습니다.
사실 저도 이혼이 두려웠었습니다.
독일 보험제도 때문에 5년의 별거뒤에 이혼을 했습니다.
솔직이 혹시나 하는 바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5년전 수도원에서 가족이 갈라질것을 주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5년 이후 그 수도원에서 독일 목회자들의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세미나가 마치는 마지막 날 10월 7일에 이혼을 하러 가는 새벽 예배에 많은 독일 목사님들이 절 위해 기도해주셨습니다.
변호사도 구하지 않고 혼자 법정에 가려는 나에게 오래전에 알았던 독일 친구 변호사가 기적처럼 바로 이혼 며칠전에 연락이 와서 무보수로 일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법정에서 오랫만에 만난 전 남편의 얼굴은 좋아보이지 않았습니다.
전 그날의 아침을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두려웠던 제 마음에 하나님은 평강과 평안을 주셨습니다.
#8222;두사람이 함께 갈수 없는 길이라면 너 혼자라도 가거라“ 하는 듯한 말씀입니다.
이혼을 앞둔 몇달전 부터 늘 아침마다 섬기는 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용서할수 없었던 두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사람을 내 의지에서 올라왔던 마음이 아니라 주님이 선물해주신 평화로운 마음으로 축복했습니다.
전 그 두사람의 행위를 용서할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약함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의 행위가 절대로 나에게 일어나지 않다라고 보장할수 없는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제아들의 16살 생일을 맞이하는 10월 30일에 전 편지를 썼습니다.
#8222;내 사랑하는 다니엘아, 네 의지가 약하여 언젠가 삐뚤어진 길을 걸어가게 될때 또 그런 유혹이 네 마음을 꾈때 반드시 마마와 헤어질때 인사했던 푸라이브르크 중앙역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그리고 파파와 헤어져서 홀로 주님과 붙잡고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고 기도했던 마마의 눈물도 지워서는 안된다.“
제 아들 다니엘은 이제 내 사역을 도와주는 내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착하고 좋은 아빠의 돌봄과 제 기도와 사랑속에서 우리아들은 잘 자라고 있습니다.
부모의 헤어짐이 자기의 삶에 긍정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외동아들로 온실과 같은 보호에서 자라온 아들은 독립심과 책임감을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는것 같습니다.
아들과 헤어져 공부하면서 전 아들에 대한 내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은 당신이 다니엘을 책임져주시겠다는 약속데로 우리 아들을 멋지게 키우셨습니다.
이제 이혼 한 남편과는 가끔 아이문제로 전화를 할때가 있는데 정말 편안한 마음입니다.
믿었던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무너졌다는 원망도 없어졌습니다.
내 아들은 아빠와 아빠의 여자친구와도 잘 지내고 있는것 같습니다.
모든것은 내가 하기에 따른 것 같습니다.
둘레 상황과 환경이 어떻든 주님만 붙잡고 최선을 다하면서 살면 나도 살고 결국 다른 이들도 살리는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갈때 내 자녀들도 그나마 헤어진 엄마 아빠의 이혼에서도 감사하며 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독일 기독교 연방 최고 주교감독이 되신 캐스만 여자목사님의 이혼후 말씀이 생각납니다.
#8222;한 사람이 도저히 나와 같이 삶을 동행할수 없다고 할때 아프지만 떠나보내야 한다고“
사람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라고 하시는 김양재의 목사님 말씀을 기억합니다.
수없는 가정들이 무너지는 요즘 한국의 사회에서 가정 준수의 말씀은 지금 우리들의 가정을 다시금 살펴봐야하고 느헤미야의 재 성전 건축처럼 다시 가정들이 회복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은 내 혼자 만들어져 가는것이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 뜻을 함께 한 사람들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함께 일하는 프록젝트에는 계약이 필요하고 규칙이 필요합니다 물론 실수가 있었을때 용서도 품어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 아무리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가 나무를 홀로 노력하며 다듬고 열매거두기 위해 애쓰지만 그 무화나무가 결국 뿌리를 가정으로 신앙으로 내리지 못할때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할수 있는 힘까지 다 해보고 내려놓고 그 나머지는 주님의 몫입니다.
이혼을 저주가 무서워서 못하시는 분이 있거나 이미 이혼을 한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시는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이혼을 하지 않고 가정준수 하면서 또 이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모두 나름데로 참기 어려운 고통들이 있을것입니다.
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주가 있을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살아온 결과이고 그 결과가 잘못되어서 내가 받아야 고난과 아픔이 있다는것은 주님을 바라볼수 있는 기회이지 절대로 저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주님의 형상을 닮는것이고 그분의 좁은 길을 우리가 가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물질중심의 풍요와 그에 따른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리들이었기에 한국의 경제 성장은 조금 배를 채울수는 있었는지 모르지만 정치적 사회적 교육적으로도 부정 부패의 실수가 허다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는 더 심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중 3분의 2가 종교인들이라고 함)
저희 기독교는 다른 종교 보다 더 심하면 심했을정도로 부패해져갔고 경제성장을 축복인냥 부축이었고 목회자들의 권력싸움, 비양심적 행위등 사회를 소금과 빛으로 인도하기는 커녕 그들에게 밟히는 일들이 생겨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물질 중심의 사회에서 당연히 가정이 깨지고 결국 개인역시 무너지는 사건들을 주님은 아셨던지 한여인을 오랫동안 훈련시켜서 지금 한국의 사회에 세우셨다고 생각합니다.
김양재목사님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그동안 물질우상으로 무너져야했던 바벨론의 포로 생활의 고난을 남을 탓하기전에 먼저 우리의 죄를 먼저 보면서 회개하는 삶 그리고 우리의 회개를 통해 펼쳐질 영적 구속을 낳는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일깨워 주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자신 역시 날마다 말씀의 큐티를 통해서 당신의 부족함을 늘 보시고 또 자신의 아픈 과거의 고난을 통해 많은 이들을 영적으로 살리고 계시다는것이 그분의 설교에서 느껴집니다.
그분의 설교에는 눈물과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무엇인지 느끼게 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