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비로서 이제 폭풍우를 뚫고 간다
작성자명 [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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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11.18
나 비로서 이제 깊고 넓은 바다 간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손을 주는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나 비로서 이제 폭풍우를 뚫고 간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를 잡아주시는 그분은 나의 주님
주 나를 놓지 마소서
이 깊고 넒은 바다에 홀로 내 삶에 항해의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난 의지합니다 날 포기하지 마소서
나 잠시 나를 의지하여도 내 삶의 항해에 방향을 잡아 주시옵소서
이 깊은 바다에 날 홀로 버려 두지 마소서
아버지,
8월초 아버지의 대장암 수술 후 장 파열로 재수술을 하며
2달에 걸친 중환자실에서의 고통, 그리고 천국에 가시기까지..
주님은 정확하게 세팅하셔서 아버지의 영혼을 받으셨다.
수술 전 저의 반강제적인 권유로 주님을 영접하시고
병상세례를 받으신 후 마음으로 믿으셨다.
그 과정에서 주님은 30여년 원불교 신자인 어머니의 마음을 만지셔서
우리들교회에 등록하게 하셨기에 그 소식을 들으시고
어머니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덜어져서인지..
마음으로 주님을 믿는다면 손가락을 움직여보라는 딸들의 말에
엄지손가락을 두 번이나 움직이시며 마음으로 믿는다는 표시를 정확히 하셨다.
돌아가시기 3일전이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날, 부모님이 잘 알고 있는 우리들 공동체 한 지체의 간절한 방언기도로
그동안 주님을 모르고 우상을 섬기며 살아온 날들을 회개하셨다.
돌아가신 날, 말씀으로 정확히 심판 다음에 구원을 주셨음을 말씀하셨다.
중환자실에서의 온갖 기기를 꽂아놓고 손도 묶어놓고 있는 고통..
89년 우상을 섬기며 살아온 아버지가 반드시 치루어야 할 구원의 댓가요 십자가였다.
또한 그로 인해 완악한 어머니를 등록케 하는 통로역할을 하셨다.
우리들교회 등록후 4년에 걸쳐 구원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줄기차게 기도하고 믿었더니,
임종 직전에 이렇게 완벽하게 세팅해주셔서 구원해주신 기적의 은혜에 참으로 눈물만 나왔다.
아~그리고 어머니,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혼자서 안절부절 못하는 어머니를 주님은 내가 모실 수 밖에 없는 환경으로 몰아가셨다. 우리 가족과 함께 지내며 매일 아침 내가 남편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며 함께 손잡고 기도하고, 큰아들이 놀고만 있는데도 평안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크다고 하셨다.
어머니 자신은 원불교를 30년 다녔어도 삶에 변화가 별로 없는데, 너희 부부가 실천하고 사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하시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차도 없이 여러 날 누워계시는 아버지의 고통이 아무래도 자신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아버지의 고통의 수고를 통해 주님께서 어머니에게 직접 찾아와 마음을 만지신 것이다. 마침내 어머닌 저와 같이 교회에 나와 등록하셨다.
어머니는 주님께로 돌아오면 아버지가 혹시나 낫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왔으나 돌아가시자, 다시 돌아가 49제를 드리며 용산의 원불교재단의 실버타운으로 들어가셨다.
아~어찌 내 힘으로 할 수 있으랴..
그러나 내 힘으로 해보려는 게 너무 많아서 어머니가 미웠다.
긍휼과 미움이 왔다갔다 했다.
나,
아버지의 장례를 우리들교회장으로 치른 은혜에 감격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을 졸였다.
어머니가 한편으로 원불교식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영적 싸움이 심했다.
장례식 후 난 시름시름 아팠다. 입맛이 없어졌다.
위내시경을 해보니 위염, 식도염이 있고 소변검사 결과 방광염이 있다 했다.
하루 한끼 정도 약간의 죽이나 누룽지만을 먹으며 누워만 있다 보니 만사가 귀찮고 손가락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사단의 공격이라는 영적인 면도 느꼈지만, 병이 나아야 먹을 수 있지..생각하며 널부러져 있었다.
토하기까지 하니 항암치료의 고통이 떠오르고 먹으면 음식이 목에 걸린 듯 하니 더 더욱 먹고 싶은 의욕이 없어졌다.
거기다 난 그동안 진이 다 빠지도록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살았으니 이젠 좀 받아도 된다는 자기 연민에, 폐경기로 다가가는 호르몬의 변화, 더불어 남편의 절박한 경제 상황까지 한 몫을 더했다.
아픔 속에 숨고 싶었고 우울했다. 일어서고 싶지 않았다.
왜 내게 끝도 없는 고난을 주시는가..하며 그래도 먹어야 뭘 하든지 하지..하며 엎드려 눈이 붓도록 통곡했다. 한달여에 걸쳐 그런 생활을 하며 겨우 겨우 목장은 해나갔지만 예배도 방해를 받았다.
교회홈피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큐티나눔은 더 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못먹으니 입원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하며 군의관 조카와 상담을 하는 중에 내 병은 90%이상 정신적, 영적인 질병임을 알았다.
아~그렇다면 털고 일어서야 되지 않겠는가!!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지 않은가!!에 생각이 미쳤다.
일어설 힘을 주십사 하고 기도했고 기도 부탁했다.
살아야 된다.
일어서야 된다.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다.
되내이며..그저께 목자모임에 갔다.
춥고 다리가 후둘거렸지만..솔직하게 나눔하고 함께 눈물로 기도했다.
어제부턴 의지적으로 먹으려고 애쓰고 토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낮에 산책도 잠깐 다녀왔다. 조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
또 널부러져 누워있는 나를 우리들 공동체 형님의 전화가 깨운다.
그래 써야지..
써야 된다.
컴퓨터 앞에 앉자 “항해자”의 가사가 머리에 떠오르며 눈물이 비오듯 쏟아진다.
나 비로서 이제 깊고 넓은 바다 간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손을 주는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나 비로서 이제 폭풍우를 뚫고 간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를 잡아주시는 그분은 나의 주님
주 나를 놓지 마소서
이 깊고 넒은 바다에 홀로 내 삶에 항해의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난 의지합니다 날 포기하지 마소서
나 잠시 나를 의지하여도 내 삶의 항해에 방향을 잡아 주시옵소서
이 깊은 바다에 날 홀로 버려 두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