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함백탄광에서 내가 나에게 묻다
■ 성경구절
ampbull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요한계시록 18:24)
■ 질문하기
ampbull 성 중에는 나와 육신의 아버지의 피도 발견될 것인가?(24절)
■ 묵상하기
1. 바벨론의 애가(18:9-19)
ampbull 오늘은 아버님 추도예배날이다.
ampbull 오늘 본문처럼 아버지는 일생 바벨론의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술에 취해 애가만 부르셨다. 아버지는 부(富)를 쌓을 기회가 없었을까?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처남이 5ampmiddot16에 참여하여 현역 대령으로 대전시장에 오른 때에 대전으로 이사를 갔고, 대전시청 노무자로 취업했다. 당시 외삼촌은 공설운동장, 보문산공원개발 등 굵직한 사업을 일으켰기에 아버지에게 작은 가게라도 내줄 수 있는 여력이 있었을 텐데도, 단순 노무자로 일하게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외삼촌은 아버지를 무척이나 무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ampbull 일제시대를 거친 아버지는 할아버지 따라서 일본에도 갔지만,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하던 노동일을 함께 했다. 아버지는 음주를 하면 이 부분에 대해 할아버지를 비판했고, 나는 이런 다투는 모습이 싫어서, 가출하기도 했다. 가출에서 귀가한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불러놓고 나중에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ampbull 지금 생각하니, 아버지가 외삼촌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無學 때문이며, 평생 노동일과 가난의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공부할 기회를 주지 않은 할아버지의 탓으로 돌렸던 것 같다. 여러 고난을 지내온 지금에야 아버지의 한(恨)이 이해가 된다. (일본에서 공부를 한 아버지의 동생(삼촌)은 해방 후에, 먼저 육사에 입교한 외삼촌의 권유로 육사에 입교했고, 6ampmiddot25 때 전사하였다. 할아버지는 삼촌이 전사한 사건이 우리 가문의 몰락이라 단정짓고,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냈다)
2. 성도들의 기쁨(18:20)
ampbull 나는 아버지가 급히 대전으로 떠나고 나서 고향에 남겨졌다가 초등 5년 2학기 때 합류했고, 이듬해 나는 대전중학에 들어갔다. 내가 중학에 합격한 일이, 아버지는 같이 노동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부러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 우리는 두 칸 방에 6남매가 살고 있었다. 나는 인문계 진학을 포기하고 학비가 저렴하고 취업이 보장되는 국립전문학교 기계과에 들어갔고, 이것이 나의 학력 열등감의 시작이었다.
ampbull 우리집의 가난은 할아버지, 아버지를 거쳐 나에게까지 길게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THINK해 보니, 나까지 이어진 가난은, 하나님의 세팅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의 가난은 아내를 만나는 도구가 되었고, 아내를 만났기에 사랑스러운 세 딸과 이 땅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해석은 몇 년 전 일대일 양육을 받으면서 목사님 저서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을 단숨에 읽으면서 해석한 부분이다.
ampbull 아내는 바벨론에 속해 음행을 일로 삼았던 나를 우리들공동체에 속하게 하여, 좋은 양육을 받을 수 있게 하였고, 이 양육으로 내 인생에 한(恨)으로 남아있던 가난이, 성도의 기쁨이 되는, 구속사적 해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하였고, 이러한 해석의 능력은 사탄의 휘하에서 애가를 부르던 나를 하나님의 소속으로 바뀌게 하는 인생 역전을 가능케 하였다.
3.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18:21-24)
ampbull 나는 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20세에 공직에 입문했고, 아버지는 무척 기뻐했다. 아버지는 내가 쓰던 무거운 책상을 직접 어깨에 지고, 서울의 하숙집에 오셨고, 그날 아버지와 나는 단둘이 시간을 보내었다. 평소 웃음이 없던 아버지였지만 그날은 미소를 볼 수 있었다.
ampbull 공직에 들어선 나는 바벨론 왕들과 교류하면서 음행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다가 독주를 즐겼던 아버지의 습관처럼, 나도 심한 음주가 빌미가 되어 말석에 떨어졌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는 중에 아내의 권고로 말씀공동체에 오게 되어, 양육을 받고 금주를 선언하는 간증을 한 후 희안하게도 술과 온전히(100%) 멀어지게 되었다.
ampbull 아버지는 내가 5,6세 무렵, 잠시 함백탄광에서 광부로 일했다. 나는 아내와 딸들에게 함백에 가보고 싶다고 늘 말해왔는데, 딸들이 동강시스타 리조트에 1박2일 예약을 해준 지난 9월 말에 아내와 함백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딸들이 예약해준 일정이 우연치 않게도 어머니 추도예배 전날 방문하는 일정이 되었다. 60여년 만에 함백에 가니, 탄광은 폐광됐지만 광산출입구는 작은 공원으로 보존되어 있었고, 아버지가 출입하던 모습도 그려볼 수 있었다.
ampbull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어린 나를 만났다. 5,6세의 어린 내가 70을 바라보는 나에게 왜 술을 그리 마셨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바벨론의 언저리에서 그간 너무 고생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말씀공동체의 소그룹리더가 되어 목장예배를 준비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에 좋다고 격려해 주었다.
ampbull 내가 60여년만에 함백탄광에 가서 찾은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게 주신 첫사랑이었다. 위로 형이 둘 있었지만, 갓난 동생과 미취학인 나만 데리고 탄광촌에 갔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기간에는 오직 나에게만 사랑을 주었다. 그후로 나는 부모님과 가까운 대화를 한 기억이 별로 없다.
ampbull 늘 독주를 즐겼던 아버지는 42년 전 오늘, 위천공의 병으로 입원했는데, 지혈이 되지 못해 소천하셨다. 병실에서, 여동생(둘째 고모)이 교회 다니기를 권했는데, 퇴원하면 다니겠다고 다짐하셨다고 둘째 고모는 나를 만날 때 마다 위로해 주신다. 병실에 있는 동안 하나님은 아버지를 방문하여 회개하는 시간을 끌어내셨을 것으로 믿는다.
ampbull 최근에 나는 침을 맞으러 한의원에 갔는데, 진맥을 한 의사는 내게 절대 보양식을 하지말며, 시레기국이 가장 몸에 좋다고 했다. 특히 가을무우는 나에게 산삼이라고 했다. 내가 가난한 것이 나의 건강에도 좋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건강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나, 그때까지, 나의 건강을 음주음란에 오용하지 않고, 나의 개인적 성결과 가문의 구원과 소그룹리더의 역할 수행에 사용할 것이다.하루하루 주어진 말씀으로 THINK하게 하고, 해석하도록 하는 공동체가 나의 한숨을하새노래로 만들고있다.
■ 적용하기
1. 이 땅에서의 잠깐의 영화(주식, 아파트 평수 등)보다는 구속사적 가문을 세우는 일에 더 시간을 보내겠습니다.
2. 5세 때의 내가 오늘은 내게 무엇을 묻는지, 아직 멸망되지 못한 바벨론이 무엇인지, 매일 큐티하면서 THINK하고, 적용해 나가겠습니다.
♧ 추도예배 때 이 큐티를 가족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