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작성자명 [김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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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9.21
하나님께서 헛되이 우상을 섬기다가 결국은 망하게 될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우상의 실체에 대하여 먼저 말씀하시곤, 어제 오늘은 당신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어떤 사건을 통해서, 어떤 사람을 통해서 혹은 자연을 통해서건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믿음이 어릴수록 사건만 보고, 사람을 의지하지만 믿음이 자라면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알게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네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되 텅빈채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셨습니다.
조성하다 는 말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원하는 모양새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산과 들과 바다를 만들고, 그곳에 나무와 짐승과 물고기들을 창조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견고케 하다 는 말은 기초를 세운다는 의미로 창조한 모든 것의 기초를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늘과 땅을 텅빈 채 창조하지 않고 완벽하게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헛된 분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이유는 사람으로 거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을 위하여 하늘도 땅도 조성하셨다고 선포하십니다.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요.
하나님께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천하만물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하고 사랑스런 존재입니다.
사람이 목적입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구원이 최고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사용하면 안됩니다.
사람을 자기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악한 자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가장 큰 악입니다.
두번 째는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곳에서 은밀히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밝히 드러내십니다.
온 우주만물들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를 계시하십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다른 모든 이방종교들은 인간이 신을 찾아나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깊은 산속에서, 어두운 토굴에서 도를 닦으며 신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찾아오십니다. 갈대아 우르, 그 우상의 도시로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지만 사건을 통해, 사람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헛되이 찾는다는 것은 대상이 없는 것을 부르고, 비인격적인 것을 맹목적으로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부르짖으면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분이십니다.
우상을 찾고 그 앞에 절하는 자들은 모두다 자기들의 열심에 도취되어 헛되이 부르는 것 뿐입니다.
자기가 지극정성을 드리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누가 듣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지성이면 감천이다 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헛되이 찾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능히 구원치 못하는 우상에게 하듯하지 않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의를 말하시고 정직을 고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시지 않습니다.
세번 째로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기독교는 득도의 종교가 아닙니다. 계시의 종교요 구원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십니다.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구원을 위한 어떤 행위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 분 자체로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구원이 무엇일까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일까요? 질병에서 건강으로 옮기는 것일까요?
고통에서 행복으로, 가난에서 부유로, 무지에서 깨달음으로, 불화에서 평화로 옮기는 것일까요?
구원이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십니다.
22절에 여호와를 앙망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앙망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에는 돌아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먼 미래의 어떤 시점에 이루어질 불확실한 어떤 종류의 영적 경험이 아닙니다.
구원은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그 분을 바라보는 순간 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평생 도를 닦다가 죽을 때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외마디를 남긴 우리 시대의 스승도 알지 못합니다.
푸른 산마다 찾아다니며 최고의 종교적 열심으로 심지어 자식을 불살라 바치는 자들도 모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열심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얻기위한 노력을 멈추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온전함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네번 째로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절대로 그냥 돌아오지 않습니다.
천지는 없어지지만 말씀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마음이 변해서, 지킬 능력이 없어서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신분이시고 불변하십니다. 그 능력이 무한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입에서 나온 모든 약속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구원의 약속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보증입니다. 구원의 근거가 나에게 있다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변치않는 약속에 근거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나의 열심, 나의 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자랑합니다.
변치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신실하심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나타내면 자랑이 되지만, 하나님을 자랑하면 바로 그것이 찬양이 됩니다.
다른 번역에는 자랑을 찬양으로 표현해두고 있습니다.
어제, 오늘 저의 큐티가 상당히 이론적으로 흘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큐티를 하다보면 인간에 촛점이 많이 맞추어 집니다. 적용에 강조점을 두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너무 사건과 사람, 그리고 적용만으로 나가다 보면 치우칠 수도 있습니다.
계속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건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