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항상 옳으십니다.
작성자명 [김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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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9.20
믿음에는 왜 가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항상 옳으시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왜 나를? 이라고 소리칠 수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똑바르고 옳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굽은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의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 정상이지만, 하나님의 팔은 안으로도 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습니다.
마치 진흙같은 우리가 토기장이되신 하나님께 왜 나를 이 따위로 만들었냐고 할 수없는 것입니다.
진흙은 잘게 부서져, 고운 가루가 되기만 하면 됩니다.
고운가루가 되지 않았기에 아직도 우릴 빚어내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게 빻아져 고운가루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원래 우리를 창조하실 때 흙으로 만드셨지요, 아마도 진흙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흙이길 싫어합니다. 쇠라고, 은이라고 금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흙은 잘게 부수어 물에 넣고 이겨내면 되는데, 은금이니 용광로속에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용광로에 들어가야만 녹아내리는 은금이 아니라 물이도 잘 이겨지는 흙이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빚어주시는대로 모습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내가 누군가와 꼭같아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손수 하나씩 빚어낸 작품들입니다.
언젠가 작품과 상품의 차이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상품을 똑같아야 되지만 작품은 하나 하나가 다 다릅니다. 다르기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짜리 인생입니다. 예수님을 희생하고서 우리를 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주제가가 왜 왜 왜 입니다.
꽤 고상하게 표현하지만, 가슴 속깊은 곳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옳으심을 인정하고 내게 가장 좋은 것 주심을 감사할 때, 원망과 불평이 사라집니다.
그래야만 나의 장래에 대해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전적위탁이 가능해집니다.
장래의 일을 물으라고 하신 것은 내 맘대로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라는 뜻이지요.
자식이 가장 내려 놓기 함든 부분이고, 자기의 손으로 하는 일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까지도 하나님께 부탁할 수 있게 됩니다. 부탁이란 말은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없습니다. 그러니 주님만 바라봅니다. 이런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불행스럽게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뒤에야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고백할 때, 고레스를 통해 구원해 주십니다.
고레스는 정말 뜻밖의 인물입니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나라를 세우시고 사용하십니다.
과연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15절에 하나님이 숨어계신다는 의미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와 함게 하시는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육신의 눈이 감겨야 영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나는 소경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순간 숨어있는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우상을 만듭니다.
우리의 눈을 만족시키고 살다보면 언젠가는 부끄러움을 당할 날이 오게됩니다.
숨어계시지만, 우리의 창조자가 되시며 언제나 옳으신 하나님을 볼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