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7일 주일 말씀 에스겔 47:1 ~ 47:12 [ 쓸모 있습니다. ] 신승윤 목사님
[ 에스겔 47장 1절 ~ 47장 12절 ]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여러분 정말 오랜만에 만나시는 분들 계시죠. 제가 제일 힘들었던 것이 교회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뭐냐 그러면 꼭 옆에서 이렇게 환하게 얼굴을 쳐다보고 예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막 서로 손잡고 막 흔들라 그러는데 그게 싫어가지고 교회 못 나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래도 우리가 인사를 해야 되잖아요. 꼭 안 해도 꼭 말하지 않아도 괜찮거든요. 그냥 서로 한번 쳐다봐 주세요. 쳐다보고 서로 한 번 쓰다듬어주고 손이나 한 번 이렇게 쓰다듬어주고 우리 동성 간에는 한 번도 안아주시고 잘 지냈냐 이 정도만 이렇게 해 주시고 거기는 안지 말어 왜 남녀가 안어요. 자 감사합니다.
오늘 에스겔의 사명을 통해서 또한 에스겔에게 주신 성전의 환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지금부터 약 2천6백여 년 전에 그 아버지를 따라서 성전에서 봉사하는 직분을 사모하며 착실하게 준비했던 그 스물 다섯살의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레위는요. 스무 살 때부터 이렇게 성전에 들어가서 맨 처음 허드렛 일부터 해요. 그러면서 점차 성전과 예배에 대한 일을 배웁니다. 그리고 30살이 되었을 때 제사장으로 취임해서 자신의 직무를 감당합니다. 그런데 스무 살에 성전에 들어가서 5년이 지나던 주전 597년에 그 청년은 갑자기 한순간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유다의 왕 여호야긴과 함께 끌려가게 됩니다. 전쟁 영화 같은 데서 여러분 포로로 끌려가는 거 보셨잖아요. 그런데 그거는 심의 때문에 정말 약하게 표현한 거거든요.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넘은 일이고요. 그리고 그 포로로 끌고 가는 그 상대는 야만인 중에 야만인으로 불리는 바벨론입니다.
상하의 탈의는 기본이고요. 팔과 다리를 쇠사슬로 묶어서 100명 정도를 단위로 이렇게 끌고 가는데 이렇게 1만 6천 킬로미터를 이동합니다. 이윽고 이스라엘의 포로들은 그발강을 끼고 있는 바벨론의 도시 릿불에 도착해서 나무를 팹니다. 나무를 패고 수로를 개관하는 일에 투입됩니다. 에스겔이 뭘 할 수 있었을까요. 성전을 돌보는 거 성전에서 수종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그랬던 그가 포로가 되어서 삽을 잡고 나무를 팹니다. 땅을 팝니다. 노예로 살아갑니다. 한때 거룩한 성전에서 수종드는 제사장이 되리라 믿었던 청년 에스겔이 이 힘들고 억울한 노예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을 믿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두실 리가 없다. 반드시 나를 고향으로 되돌려 넣어주시고 바벨론의 포로를 끝내주시고 나를 제사장 되게 해주실 것이다. 그 소망으로 오 년을 버팁니다. 그런데 그러고도 포로가 된 지 6년이 지났을 때 에스겔은 고향인 유다 왕국이 멸망되었으며 오매불망 돌아가기만을 바랐던 그 성전은 완전히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때 에스겔 마음이 어땠을까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학수고대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이제 모든 것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되었죠. 버틸 수 있었던 단 한 가지 이유 그것도 날아가 버렸습니다. 게다가 이 힘들고 억울한 포로 생활이 언제 끝날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이렇게 남의 포로가 되어 일평생 고생만 하다가 남긴 것 없이 죽겠구나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하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내게 이제는 없구나. 그런데요. 나는 이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머나먼 타국에서 이름 없이 살다가 죽게 되리라는 가난한 마음, 바로 그 상한 심령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합니다. 그리고 에스겔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수종을 들며 봉사하는 제사장이 아니라 거친 들에서 비난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지하는 선포하는 선지자가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 많은 선지자들을 알고 있죠. 그중에 유독 에스겔은 참 많은 실현과 연단을 겪잖아요. 하나님이 어떠한 명령을 내리셔도 마다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나는 제사장이자 제사장이거든요. 내가 제사장인데 거룩해야 하고 더러운 것 옆에도 가지 말아야 하는데 인분 똥을 구워 먹으라니 그게 말이 됩니까 그 말에 순종합니다. 당시 죽은 사람을 옆에서 울지 않는 거 있잖아요. 울지 않는 것은 그 망자를 경멸하고 비난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내의 죽음 앞에서 울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대우받아야 할 제사장이 교양도 없이 너희 그러면 죽는다. 울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를 수가 있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되고 싶었던 기대도 열심히 준비한 노력도요. 미래에 대한 소망도 사라진 채 힘들고 모진 포로 생활을 겪은 에스겔이잖아요. 자존감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으며 깊은 좌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억울하고 답답한 포로 생활을 겪으면서 포기와 좌절을 경험한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명하실 때 모든 명령을 단 한마디의 군소리 없이 순종합니다. 그 후에야 그 후에야 여러분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자신이 그렇게도 돌아가고 싶어 했던 그 성전 있잖아요. 그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성전을 그의 눈앞에 환상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회복을 약속하세요. 나의 기대와 소망은 사라졌지만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지금껏 알지 못했던 것을 알리시며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십니다.
삼십대 중반에 우리들교회에 처음 부임을 했는데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들교회에서는 이렇게 강단에 서면 제 이야기를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뭘 했나 생각해 봤거든요. 근데 제가 겸손한 사람이 아닌 거예요. 여러분 아시잖아요. 아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뭐 하나가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내가 뭐 했지 아무런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아 그렇다면 가족에게는 내 가족에게는 내가 뭐라도 해줬거나 보여준 것이 있겠지. 이 생각을 왜 했는지 몰라 아무튼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니까 그나마 저희 아들이 제일 순하거든요. 그래서 아들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준명아 아빠가 뭘 해줬니 아들은 저를 이렇게 보더니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해줬습니다. 저희 아들은 할 말이 없을 때 이렇게 합니다. 다음으로 사춘기 중2병 딸에게 물을 차례입니다. 두려웠습니다. 아빠가 뭘 해줬니 역시나 돌아온 답변은 이것이죠. 왜, 설교 때 할 말이 그렇게도 없니 마지막으로 저기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같습니다. 여보 내가 뭐 해준 것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기 있는 음식 쓰레기를 비워달라고 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답변인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해도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는데 누구에게 어떤 대답을 듣겠습니까. 우리 20대 청년들 계시죠. 20대 청년들은 아마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어느 정도 공감하시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나이는 한 살 한 살 먹어가는데 형편이나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뭐를 한 거는 같거든요. 이것저것 뭐를 한 거는 같은데 남은 것이 없는 거예요. 나를 기대할 수 없어서 온갖 기대를 걸었던 나의 자녀와 배우자는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이 그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하루하루 힘들게 회사에 다니고 주어진 일을 하며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봐도 예상되는 것이 있다면 그다지 달라질 것 없는 미래라는 우리 지체들의 한탄을 듣습니다. 이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올해보다 내년은 더 나을 거야 이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성품이 달라졌다거나 믿음이 깊어지지도 않았고요. 경험과 지식이 쌓였다고 스스로 믿거든요. 스스로 믿으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할 수 있겠지 그런데 여전히 그만두어야 할 것을 알아도 멈추지 못하며 돌이켜야 할 때 돌아서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무능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은 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에 대한 실망, 변하지 않는 환경, 씻겨지지 않는 상처 그리고 달라질 것 없는 미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담고 오늘을 삽니다. 지금까지 나는 뭐 하고 살았나 혹시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기대할 것이 없고 쓸 만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망을 경험하고 포기를 해야 비로소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우리가 믿는 이 신앙의 역설입니다. 어떤 분은 이미 많이 깨닫게 된 분도 계실 거고요. 또 어떤 분은 이제 출발점에 서 계십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가다가 멈춰 서신 분도 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성전의 환상을 우리에게도 알려주시는데요. 환상이 공상이나 망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말씀을 통해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에서 어떤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는지 어떤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는지를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주시는데요. 이렇게 자세히 보여주시는 첫 번째 이유는 너희가 성전에서 예배하게 될 그 날이 분명히 오리라는 약속의 말씀 그리고 둘째 이유는 성전에 그 사명과 역할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내 안에는 주님이 계시며 나에게는 구원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지은 죄가 얼마나 되든지 환경이 어떠하든지 나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성전에서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본문을 통해 함께 묵상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그 성전이 되기를 소망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고 쓰임받지 못한다고 한탄하지 말고 하나님이 쓰시는 성전이 되기를 소원할 때 한때 나처럼 죽어가는 인생을 살리는 약재료의 인생이 될 줄을 믿습니다. 쓰임 받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려면요.
1. 예배와 말씀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1절,2절)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전의 곳곳을 보여주시잖아요. 여러분 우리 함께 큐티하면서 아시는 바와 같이 성전에 부엌까지를 곳곳을 보여주신 후에 마지막으로 뭐를 보여주시냐 하면요. 성전 앞 동쪽에 그 재단을 보여주십니다. 최초로 성전의 문지방에서 그 성전의 문지방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 나오거든요. 이 미세한 줄기의 물이 제일 처음 이 재단을 지나 닫혀 있는 동쪽 문으로 흐릅니다. 동쪽 문은 하나님이 들어오신 후에 닫혀 있었기 때문에 에스겔은 천사의 인도를 받아 북쪽 문을 통과하여 동쪽 문 밖으로 가서 이 장면을 목격합니다. 에스겔의 묘사처럼요 처음 그 물은 문 밑으로 스며들어 흐를 정도로 얇고 작은 물줄기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 물이 처음으로 지나가는 제단은요 뭐냐 그러면 제물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그 단입니다. 그런데 이 제단은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깨끗한 곳이 아니에요. 짐승의 각을 떠서 거기에 올리고 불에 태우기 때문에 주변에는 피가 낭자했을 것입니다. 닦아도 닦아도 그 피가 지워지지 않습니다. 태우다 남은 찌꺼기도 있을 것이고 보기에는 항상 불에 그을러져 흉했을 것입니다. 하나같이 깨끗하고 순결하잖아요. 성전의 기구들이 얼마나 깨끗합니까. 그런데 그중에 가장 더러운 기구가 바로 제단입니다. 그러나 보기에는 흉하고 지저분하다 할지라도 제단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날마다 활활 불타오르며 감사와 감격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을려지고 지저분한 번제단처럼 나 자신이 나를 봐도 지은 죄가 너무나도 흉하고 자랑할 것이 도저히 없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내 죄 때문에 애통하고 회개하며 예배하는 나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죄 사함을 받는 번제단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번제단에요 성전에서 나온 생명의 물인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먼저 흐릅니다. 여러분 한때는 그렇게도 활활 타올랐던 회개의 번제와 눈물의 예배가 점차 사그라져서 이제는 피와 그으름만 묻어 있는 재단으로 우두커니 남아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지금 나의 모습은 아닙니까. 내 속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들어가야 동쪽 문을 지나 죽어가는 가족 구원의 광야와 사명의 받으러 나갈 수 있는데 내 속에 욕심과 분노가 막히고 쌓여서 말씀을 흘러보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불에 타 그을러진 인생이지만 나는 날마다 타올라야 하는 하나님의 성전에 번제단입니다. 가장 먼저 말씀을 받아 그것을 흘러보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예배의 제단입니다.
아직 감염의 확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 말씀 드리는 것이 민감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점점 나의 제단에 회개의 불이 꺼지고 예배의 감격이 사그러들고 있다면 여러분 더욱 위생과 방역에 신경을 써주시고 백신 접종도 받으시는 수고를 하셔서라도 이 자리에 나와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아시잖아요. 진리는 원칙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것입니다. 먼저 나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전에서 흘러나온 이 생명의 물, 생명의 말씀이 회개하며 예배하는 번제단에 가장 먼저 흐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먼저 말씀을 받아야 흘러보내실 수 있습니다. 눈물의 회개와 감격의 찬양과 사명의 확신은 오직 예배를 통해 회복됩니다. 다른 방법 없습니다. 지금까지 쌓인 죄가 너무 많아서 그동안 올바로 드리지 못해 죄송해서 그래서 다시 나오기가 망설여지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조금만 생각을 바꿔 볼까요. 여러분 그럴수록 더욱 나오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 다시 예배의 재단 회계의 번제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모니터와 TV 앞에서 이 제단을 쌓으실 수 없다면 이곳에 오셔서라도 다시 예배를 회복하셔야 합니다. 감히 확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실수와 방황을 또다시 반복하고 여전한 상처를 주고받으며 중독에 물들고 노력해도 떨어지며 무시 받았던 모든 일은 단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지금 여전히 그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 버리지도 못할 거잖아요. 여러분 못 버리잖아요. 그러면서 너무 자책만 하지 마세요. 끊어내지 못하는 죄와 풀리지 않는 상황과 기대할 것 없는 미래를 겪고 있으면서 겪고 겪으면서 내 힘으로는 이것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되고 좌절할 때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모양을 하고서라도 지금 예배를 드리고 계신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타올라야 하는 하나님의 제단이라는 것을 깨달아 모두가 성전에서 흘러나온 말씀의 은혜를 흘러보낼 수 있는 주가 쓰시는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보며 소원하겠습니다. 함께 묵상하며 적용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용) 지금 내 안에는 무엇이 흐르고 있습니까? (미움, 욕심, 혈기, 우울, 체면 등)
적용) 예배와 말씀의 회복을 위해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적용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아야 합니다. (3절~5절)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북문으로 돌아 나가느라 그러니까 동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천사의 인도를 받아서 동문까지를 이렇게 북문을 먼저 통과해서 동문으로 나가는데요. 작은 물줄기를 에스겔이 확인하고 부문으로 이렇게 잠시 돌아나가는 사이에 에스겔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처음에는 동문을 겨우 스며들어요. 그 흐르던 물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약 500m를 잰 후에 에스겔을 물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데요. 처음에는 발목까지 차올라요. 이렇게 네 번을 측량하는데 처음에는 발목, 다음에는 무릎 그리고 다음에는 허리 마지막으로는 사람이 헤엄을 쳐도 될 만큼 물이 가득 차올라 넘치는 강이 되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이 환상의 진행에 대해 관심이 더 가지게 되더라고요.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줄을 가지고 천척을 잰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난 후에 그 물을 건너게 하고요. 다음 에스겔이 건넙니다. 이 순서가 무려 네 번 반복이 돼요. 하나님의 천사라고 근데 하나님의 천사라면서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면서요. 그걸 꼭 재야 합니까. 저는 왜 이런 게 궁금한지 모르겠어요. 그 왜 줄을 재서 딱 눈에 보면 저기서 저까지가 천척이다 그럴 수는 없을까요. 500m라는 짧은 거리를 굳이 손에 줄을 가지고요 잽니다. 생각해 봤거든요. 이랬을 것 같아요. 에스겔 줄은 한 사람이 못 하잖아요. 에스겔아 거기 좀 잡고 있어라. 내가 500미터 가 갖고 고함 지를께 거기가 500미터다. 기다려 이러고 줄을 잡고 에스겔은 잡고 오백 미터를 뛰어가지고 다 쟀다. 이러면 거기까지가 이걸 네 번을 반복하는 거예요. 그 하나님의 사람이나 그걸 일일이 다 잰 하나님의 사람이나 기다렸다가 건너라고 하며 건넌 에스겔이나 보면 알잖아요. 보면 깊다면 알잖아요. 근데 건너라고 하면 건넌 에스겔이나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물이 차오르는 것은 분명히 보이잖아요. 대충 보고 와 성전에서 나온 물이 이렇게 큰 강이 되었구나. 이거 알면 되는 거잖아요. 놀라움의 끝인데 그걸 왜 일일이 다 줄로 재고 건너라고 해서 확인을 해야 하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큐티를 오래 하다 보니까 이런저런 생각 다 드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급하고 조급한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인내를 통해 지혜를 배우고 과정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것인데 저는 이 원칙과 질서를 지키며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바로바로 보이는 것이 좋아서 공부보다 돈 버는 일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즉각 승부를 보는 것이 좋아 빠지게 된 것이 도박이고 결국은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지 않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 이 말이 제일 싫습니다. 지금도 저는 식당에서 줄을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맛집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조급함이요. 사람마다 다른 성격의 하나일 뿐 저의 신앙과 맡겨주신 사역과 사명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정말 단 한 번도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이 마무리하십니다. 물의 측량이 시작된 그 후부터 생명의 말씀이 나를 적시는 그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의와 욕심이 살아 있어서 물이 발목과 무릎에 찰 때까지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며 기다려야 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허리에 이르고 강이 될 때까지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이 있고 애통해야 할 회개가 있으며 인내해야 할 사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저같이 인내하기가 너무 힘든 분이 이 자리에 계시지는 않습니까. 나의 조급함을 멈추고 사건 속에서 해결만을 부르짖지 않는 최고의 방법을 지난주에 목사님께서 알려주셨잖아요. 여러분 기억나세요. 바로 우리 공동체와 함께 가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바울을 죽이려 하는 살기 등등한 그 사람들로부터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바울과 동행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살기가 등등한 나의 조급함과 혈기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우리 공동체와 함께 가시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안아주심 안에서 생명의 말씀에 내 몸이 담겨 헤엄칠 수 있을 때까지 머물러야 합니다. 깨닫게 해 주실 때까지 기다리고 날마다 말씀 묵상하면서 말씀을 묻고 공동체에서 묻고 들으며 주신 말씀으로 내 죄를 보고 애통하며 하루하루를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잘 붙어서 잘 묻고 잘 묻는 만큼 잘 들으며 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자매님, 우리 청년 자매님들도 많이 계시고 우리 여 집사님들 많이 계셔서 제가 진짜 시원하게 한번 물어보고 싶었어요. 우리 집사님들은 옷을 살 때 어떻게 사십니까. 제 아내를 보니까요. 이렇게 시즌인가 세일을 할 때마다 이만한 택배 박스의 옷을 사요. 그래서 막 배달이 옵니다. 그러면 뭐하는 짓인가 보고 있으면 그 날은 집안에 패션쇼가 벌어집니다. 제일 힘든 것은 이것입니다. 여지없이 벌어지는 일인데요. 아내는 이렇게 양쪽에 옷을 이렇게 막, 막 신나게 들고 옵니다. 여보 어느 게 나아 아 저도 보는 시선이 있잖아요. 이쪽이 나, 저쪽이 나 어 이쪽이 나 그럼 갑자기 버럭 화를 냅니다. 똑바로 보라고 어 똑바로 보라고 어느 쪽이 예쁘냐고 이쪽을 이쪽 이러면 정말 당신은 왜 내가 맨날 얘기할 때 전화기를 보고 있냐고 왜 내 말에 귀를 안 기울이냐고 어느 쪽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어느 쪽이 예쁘냐고 이쯤 되면 눈치를 채죠. 저쪽 그러면 갑자기 너무 좋아합니다. 역시 당신은 보는 눈이 있어. 딸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옷을 휘날리며 돌아서는 아내를 보는데 저는 한 가지 생각이 듭니다. 왜 나에게 묻는 것인가. 짜장면을 먹을 때 중국집 음식을 시킬 때가 있잖아요. 어느 날 음식을 시킬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짜장면 여보 오늘 중국 음식이 땡기네 당신 우리 집사람이 그래요. 짜장면이 좋아 짬뽕이 좋아 이러면 어 오늘은 짜장이 땡기네 어쩌지 짬뽕 시켰는데 왜 나에게 묻는 것인가 정말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듣는 구조 안에 머물게 된 그 때부터요. 이미 생명의 물은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해답을 이미 정한 채 묻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으려는 조급함과 그 고집이 꺾이고 공동체를 신뢰하며 성령의 안아주심을 경험하는 그 모든 과정을 지나치는 동안이요. 생명의 물은 나의 발목과 무릎과 허리를 채워 결국은 그 안에서 헤엄치는 생명의 강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여전히 억울하고 불안하시잖아요. 답답하시잖아요. 우울하시잖아요. 여러분 절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발목까지 무릎까지 차오르신 거예요 하나님이 앞서 나가시며 준비해 주시는 대로 양육을 받고 주신 말씀 붙잡고 목장에서 묻고 들으면서 이 생명의 말씀이 발목에서 무릎 그리고 허리와 온몸을 덮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함께 묵상하며 적용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용) 해결이 되지 않아서 조급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적용) 나는 지금 어디까지 잠겨 있는 것 같습니까?
3. 약재료가 있는 인생입니다. (6절~12절)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처음에는 작은 물줄기로 시작되었으나 이내 발목에서 시작해 강을 이루었습니다. 메말랐던 광야에 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이제 이 강에 그 주변에 나무와 식물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물이 흐르지 않는다면 절대로 자랄 수 없는 것들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물은 강에서 바다로 나갑니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바닷물이 되살아나며 새로운 생명이 태어납니다. 강에는 어부들이 심히 큰 물고기를 낚게 될 것이며 그 물고기로 배고프고 굶주린 누군가를 먹일 것입니다. 시들지 않는 열매 또한 맺힐 것인데 이렇게 모든 새로운 생명이 자라날 수 있는 이유는요. 이 물이 이 생명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물로 말미암아 맺히게 된 열매는 굶주림을 채워줄 식량이 되며 그 입사귀는 생명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약재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본문에서 우리들교회 성도님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약재료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나는 이 땅에서 욕심과 욕망의 포로, 비교와 열등감의 포로가 되어 기대할 것 없는 미래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입니다. 배신당하고 버림받으며 보여줄 것 없고 되는 일도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이런 내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렇게도 모질고 힘들었던 포로 생활을 통해 순종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연단과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며 비로소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달아 말씀 앞에 엎드려 회개의 눈물로 고백하는 나의 간증은 살 소망을 잃어가고 눈물로 하루를 살아가는 한 영혼에게 생명을 주어 살리는 약재료가 됩니다. 우리가 살리지 못하는 갯뻘과 진뻘도 있다고 하십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시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면서 우리 공동체와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입사귀가 약재료가 되기 위해서 산산이 갈리고 부서지듯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나의 죄를 고백할 때 오히려 오해와 비난을 받기도 하시잖아요. 그럼에도 실패의 약재료, 수치의 약재료를 드러내며 고백하시는 성도님들로 인해 오늘도 누군가는 살아나서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먼저 고백하심이요. 이 사명을 감당하시는 우리 목사님을 따라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끝으로 저의 약재료를 나누고 말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저는 도박 중독자입니다. 어릴 적부터 승부를 보는 것을 좋아해 늘 경쟁을 해서 이기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알았습니다. 20대의 어린 시절부터 돈을 벌어 나보다 배우고 잘난 사람은 내 밑에 두고 쓰면 된다는 그 뒤틀린 가치관으로 그것이 결국 나의 인생의 목표가 되었고 하루에 네다섯 개의 불법적인 일을 하며 악착같고 모질게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벌어서 조금이라도 더 쉽게 벌고자 몇 명의 선배들과 함께 나름 큰 성인 도박장을 열고 스물여섯에 한 개의 PC방을 포함해 세 곳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 남짓 되지 않아 믿었던 형에게 사기를 당해 벌었던 돈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하던 일이 있잖아요. 하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돈은 벌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우습게 아는데다가 돈을 버는 가치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를 모르고 돈을 우습고 하찮게 여기고 거기다가 배신감과 허무함까지 더해지니까 결국은 제가 도박 중독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 도박장 중독자의 모두가 그랬듯이 나를 믿고 맡겨주었던 그 모든 일들에서 배척을 받고 손을 자꾸 벌리고 다니니까 정말 의리와 친구밖에 없다고 하는 그런 모든 말은 아무 소용 없이 모든 친구들이 다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사채를 쓰다가 홀로 여관방에 숨어 매일 밤 베개에 칼을 품고 자면서 처음 들어오는 사람을 죽고 나도 죽으리라 몇 주를 지냈습니다. 세월이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도 생겼습니다. 회심을 했다 착각을 하고 고향에서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다시 도박에 손을 대었습니다. 신학생의 신분으로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며 도박장을 들락거렸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을 지폐를 한 뭉치씩 가지고 다니면서 무서워서 묻지도 못하는 아내를 외면하며 집에 돈이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만 원짜리 한 장 주지 않았습니다.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그거 갖고 도박해야 되니까요. 결국 괴롭잖아요. 이런 내가 너무나도 싫어서 다니던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이후 다짐에 다짐을 하고 용인으로 올라와서 다시 신학교에 갔지만 도박은 버렸으나 물질에 대한 그게 똑같은 건데 모르는 거예요. 제가 도박은 버렸으니 됐다 하면서 내게 남겨진 그 죄를 보려고 하지 않고 여전히 남겨두는 거예요. 물질에 대한 그 미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배우고 갖추지 못했다는 열등감에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려 할 때 우리들 공동체를 만났습니다. 말씀을 듣고 양육을 받는데 그동안 내가 단 한 번도요. 회심하고 몇 년이 지났다고 생각해도 한 4,5년이 뭐예요. 지났다고 생각해도 단 한 번도 나의 죄를 놓고 회개한 적이 없다는 것을 그걸 비로소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목장에 들어가 주식으로 인해 가족을 힘들게 한 선배 집사님의 나눔을 들으며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도박 중독과 지금은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도박 사이트를 구경하는 버릇을 오픈하였고 목장 식구들의 꾸중과 관심 덕에 그 습관마저 끊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새벽 설교에도 내가 얼마나 도박으로 나도 병들고 가족을 힘들게 한 사람인지를 나누고 회개할 수 있는 많은 시간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근데 이것이 끝이 아니더라고요. 한 삼 년 전 쯤으로 기억해요. 전화 한 통을 받았거든요. 교회 홈페이지를 보고 전화를 하셨다면서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목사님과 같은 신학교를 다녔던 사역자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모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스포츠 관련 사행성 배팅에 중독이 되어버려 받은 사례를 다 쏟아붓고 그것도 모자라 교회 돈에서 손을 대다가 결국 빚까지 졌다고 합니다. 결국 사모에게 들켜 이혼 위기에 있고 교회에게도 들켜서 사임을 당하고 이런 자신이 정말 너무나도 싫고 양심에 하나님께 죄송하고 자신에게 미안하고 가책이 들어서 차라리 죽어버리려고 했는데 새벽 설교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목사님도 목사를 하시는데 이게 좀 그렇더라고 이 말 듣는데 아, 저 이거 좀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이 일단 드는데 그러시더라고요. 목사님도 목회를 하시는데 이러면서 나도 살고 싶고 시작하고 싶어졌다고 하면서 뭐라도 말하고 싶어, 뭐라고 뭐라도 말하고 싶은데 말할 사람이 없고 뭐라도 말하고 싶어서 전화드렸다고 고맙다고 갑자기 저에게 기도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공동체에 와주실 것을 권면했습니다. 당장은 고사하시길래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수화기 넘어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그 눈물, 그 눈물이 제가 어떤 마음인 줄 알잖아요 그게 어떤 두려움과 외로움과 힘듦과 그 연약함인지 알잖아요. 그래서 기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 미안합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둘이 함께 얼마나 반복하며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목사님께서 어디를 가셨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까지 제가 나눈 이야기 있잖아요. 이 이야기는 결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들 공동체의 흔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수치와 부끄러움을 겪었기 때문에 죄와 중독에 굴러 떨어졌었기 때문에 지금 그 사건을 겪고 있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고 안타깝고 애통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약재료로 쓰임을 받습니다. 저는 큰 교회 목사 이름이 알려지고 명망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고 하나님이 그 길을 보여주시고 해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쓸모 있는 인생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그래서 매인 열등감과 비교에 쩔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는 분명히 압니다. 저는 저 같은 사람도 예수 믿고 목사로 살아가기 때문에 여러분은 안심하고 예수 믿으셔도 된다는 그거 전하려고 사역자가 됐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데 너무나도 오래 걸렸습니다.
약재로의 사명을 감당하셨다는 그 이유로 수치와 비난을 겪으셨습니까. 지금 당하고 계십니까. 그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이 분명히 책임져 주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쓸모없는 인생이 아닙니다. 부디 지금의 환경과 상황에 갇혀 하나님이 쓸모 있다 하신 인생을 함부로 가치 없다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의 약함을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수치와 부끄러움의 고백을 사용하셔서 새 열매를 맺고 생명이 태어나는 약재료의 삶을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후에 나눔을 하시잖아요. 나눔하실 때 바로 이것 때문에 주님을 만난 나의 수치와 약재료를 나누시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누가 무시하면 어떻고요 알아주지 않으면 좀 어떻습니까. 우리 공동체가 함께 격려하고 안아주시는 성령의 임하심이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수치를 나누는 그 자리에는 분명 나의 실패를 상급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성전인 나를 쓸모 있다 하시는 주님이 함께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적용) 나의 약재료는 무엇입니까?
적용) 나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어떤 수치와 비난을 겪었나요?
이 시간 함께 찬양하실 텐데요. 우리가 찬양의 가사를 묵상하시면서 주님 안에서 자존감이 서고, 자존감이 세워지고 나의 발목과 무릎과 허리와 나의 몸을 싸서 강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하며 주의 말씀이 나의 생명의 강이 되어 나의 온몸을 적시기를 사모하며 기다리고 인내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수치와 부끄러움의 약재료를 통하여 사람을 살리시고 생명을 잉태하게 하실 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더 이상 우리 부끄러워 맙시다. 무엇이 그렇게 부끄럽습니까. 하나님이 쓰겠다고 하시는데 뭐가 그리 부끄럽습니까. 두려워 마십시오. 망설이지 마십시오. 공동체 보호함 받으시면서 말씀의 인도함 받으시면서 천천히 갑시다. 우리 하나님이 강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살리시고 나 같은 사람을 통해서도 제 영혼을 살리시는 그 은혜를 경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