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향집 연가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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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9.20
사 45 : 8 ~ 17
객지 생활을 하다가 광주집으로 돌아오면 우선 마음이 편안 합니다.
1975년 첫직장을 서울에서 시작했고 그이후 광주에서 생활도 했지만 거의 서울에서 지낸 제가
그래도 명절때는 한번도 거르지 아니하고 광주를 줄기차게 갔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춘추가 8 5세 신데 아직 견강하셔서 제가 가면 제 입맛을 아시고
이것저것 시장을 보셨다가 밥상을 차리십니다. 이번 명절에는 며느리자리가 집에 와서 각종 전도 지지고 할머니 모시고 시장도 다녀오고 어찌나 속이 꽉차게 행동을 하는지 어머님도 손주며느리 자랑이 대단하십니다.
친정인 나주가 가까운고로 아들이 승용차로 왔다갔다 하며 역활을 잘해서 명절을 뜻깊게 지냈습니다. 정겨운 사람들과 함께 하며 오랜만에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뜻깊은 명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산소를 갔는데 아들 차로 갔기에 편안한 성묘길이었고 출발해서 1시간 30분만에 돌아왔습니다. 수많은 무덤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묻힐텐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남은 사역은 무엇인가? 묵상이 저절로 되었습니다.
묵상중 내린 결론의 하나는 가족사의 회복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광주에 온김에 딸을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서울서 출발하기 전에도 전화를 받지 않길래 메일을 찐하게 써서 보냈습니다.
딸을 생각하면 아버지로서 마땅한 일들을 해주지 못한 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아직 제가 거룩해지지 못하고 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딸을 이번 명절기간에도 만나지 못했지만
오빠의 결혼식에는 꼭 와야 할텐데 하는 마음에 어떻게든 미안하고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4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딸에 대한 저의 사랑과 이해, 주님의 마음이 아직 모자란가 봅니다. 저로서는 아직도 역부족이기에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저의 고난의 세월이 너무나 길었기에 그 고난의 무게 때문에 딸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딸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한것은 아닌지 싶어 더욱 마음이 시립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합니다. 비록 제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결국에는 저희 가족의 구속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아들과 딸의 장래를 하나님 앞에 다시금 의탁합니다.
신실하신 아버지께서 이 아이들을 금그릇으로 쓰시든지 질그릇으로 쓰시든지 아니면 다른 어떤 모양의 그릇으로 빚어가시든지 우리의 목적은 거룩을 이루어가는 것이기에 저는 이것을 놓고 날마다 기도합니다.
나를 피값으로 사셨기에 애굽이 나 때문에 수고하고 속량물이 되었으며 구스와 스바를 다 나에게 돌리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구속사를 이루어 가실때에 내가 이 유월절을 기념할 것입니다. 또한, 나를 길러주신 귀하신 어머님이 아직 건강하셔서 나의 귀향을 기뻐하시고 나를 공궤하신 것도 나의 구속사의 한페이지입니다. 감사, 감사할 밖에 없습니다.
실제 고아였던 나를 친자식으로 길러주신 그 은혜는 이번 명절에도 진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어떤 실패의 자리에 있었을 때에도 한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시고 주님께 기도하시는 어머니이십니다.
너 잘된 것 보고 잠자듯이 주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시는 귀한 나의 어머니께서 손주딸이 돌아오기를 이슬맺히게 기도하십니다.
사랑하고 그리운 딸의 눈망울이 아른거립니다. . 나를 거룩하게 하는 나의 보석.
내 딸아 이제 돌아오려므나... 오늘도 너를 기다리는 밤이 이렇게 하얗게 지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