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본문입니다.
22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의 말씀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율법적이고 기복적이었고 열심이 특심이었던 저는(복은 받고 저주는 안 받고 싶어서 지키고 안 지키는 것에 지나치게 매여있었다) 생명이 피에 있다고 하며 이방인이었던 성도에게 피를 먹지 말라고 했다는 말씀을 제게도 똑같이 적용시켜 순대를 먹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순대는 너무나 맛있었습니다. 선지국까지는 끊겠는데 순대의 유혹은 너무 달콤해서 먹고 나면 너무 괴로웠지만 순대의 유혹에서 저는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계속 나오는 22절 같은 본문을 읽으며 검색을 좀 해봤는데 이 초대교회에서 이 말씀을 하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순대를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22절 같이 다 지킨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당시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과 우상 숭배를 하던 이방인이 섞인 곳이 초대 교회였기 때문에 믿음이 약한 자와 강한 자가 서로 보완하면서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예수 믿기 전의 유대인들은 피채 먹느냐 마느냐가 율법적으로 겁나게 중요한 문제였고 게다가 목매어 죽인 것은 피가 그대로 그 안에 들어 있으니 특히나 평생을 그 습관으로 살아온 유대인에게는 수용하기 힘든 일이었음) 하기 위해서 정해 준 규칙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니 깊은 뜻도 이해하지 못하여 내 방식대로 성경을 해석해서 하나님을 무서운 분, 저주하는 분으로 아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무엇을 지키지 못하고 잘 하지 못하면 버림받을 것 같은 마음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우리들 교회에 왔을 때 정기적인 예배와 기도회에 갈 수 없는 것들이 저를 무척 힘들게 했는데 그것도 중독의 일종이었던 것 같아요. 안심이 되지 않았어요.
이번 주 설교를 들으면서 즉시 목자님이 제게 문자를 보냈는데 좋은 말이었어요
[안 되는 나를 정죄하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옵소서]
좋잖아요. 근데 제가 갑자기 살기가 싫어지고 그 순간에는 제가 변할 것 같지 않고 은혜를 알지 못해서 화가 나고 그래서 목자님한테 하나님은 나를 깨닫지도 못하게 하면서 왜 부른거냐며 생각을 정리 할 테니 카톡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 생각을 했는데 계속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왜 화가 났을까? 났으면 난거고 은혜를 못 깨달았고 기분이 나빴으면 나쁜 거지 왜 목자님한테 카톡을 하지 말라고 해서 (24절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마음 약한 목자님을 슬프게 했을까?
그 이유를 오늘 찾았습니다. 저는 아무리 노력하고 공부해도 안 깨달아지는 것을 목자님은 별 것도 안하는 것 같은데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은혜를 깨달았다고 하고 나에게 했던 말들도 ampldquo응, 나는 되는데 너는 안 되는구나.. 불쌍한 것. 너를 위해 기도할게, 참 안됐다..amprdquo하며 동정표를 날리는 것처럼 스스로 느끼는...한마디로 제 열등감이 확 올라왔던 것입니다. 내가 어떤 부분은 목자님보다 낫다고 스스로를 우월하게 여기던 제 모래성이 무너지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제 육신이 치고 올라와 목자님을 슬프게 하고 나를 엄마의 심정으로 돌보는 목자님에게 나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면서 지껄이니 에덴에서 다 벗고도 부끄러움을 몰랐던 것 같은 우리의 관계가 범죄 한 뒤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려 했던 아담같은 제 어리석음 때문에 이틀 동안 막혀 있었습니다. 그 동안 은혜에 대해서 여러 모로 생각을 해 봤어요. 갈 길이 멀지만 오늘 이 고백을 목자님께만 할까 모두가 보게 할까 하다가 더러운 것은 빨리 털어버려야 되겠기에 그냥 다 고백합니다. 저의 교만과 열등감이 공동체를 힘들게 했네요. 모두가 알았든 몰랐든... 목자님 미안해요 카톡 하세요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