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1 주일말씀 [응답 받는 기도] 사도행전 4:23~31 정정환 목사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 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온라인으로 주님 말씀 앞으로 나아갑니다.초대교회 사도와 성도들에게 임했던 주님의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원합니다. 응답 받는 기도에 대해 깨닫는 시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원래 기독교 교회력으로 치면 사월이 고난주간이죠. 그런데 저는 여름철 7월이 고난주간입니다. 그리고 이번주 주일이 사순절 마지막 날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제 얼굴을 보면서... 점점 썪어져가고 있구나 틀린말이 아니죠. 다음주 주일에는 개인적으로 부활절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2년 전에 담임 목사님께서 #039성령의 기도#039라는 제목으로 전해 주신 내용입니다. 그때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성령의 기도를 하기 보다는 내 생각으로 떼부리는 기도만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회개하게되었는데요. 이번에 동일한 본문으로 말씀 준비하면서 여전히 잘 변하지 않는 제 모습을 돌아보고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몇년전에 인터넷에서 이런 제목의 기사가 뜬 적이 있었습니다. 비닐봉지 메시에게 찾아온 기적 당시 SNS상에서는 몇장에 사진이 떠돌아다녔습니다. 다름 아니라 한 어린아이가 비닐봉지로 만든 유니폼을 입고 축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축구스타 메시의 유니폼을 비닐봉지로 만들어서 입고 축구하던 모습이었거든요.
사진] 상의가 비밀봉지로 만든 겁니다. 얼마나 메시를 좋아했으면 이렇게 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이렇게 좋아해야 되는데 말이죠. 이 어린 축구팬의 모습 때문에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했습니다. 이 아이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꼭 찾았으면 좋겠다. 그런 바램들이 이어졌죠. 그리고 1주일뒤에 수소문 끝에 이 아이를 찾았습니다. 다름아니라. 아프카니스탄에 살고 있는 5살된 #039아흐마디#039라는 소년이었습니다. 축구를 너무 좋아하지만 가난한 형편에 유니폼을 구하지 못하다보니까 이 아이 형이 직접 비닐봉지로 유니폼을 만들어 준거죠. 나라의 내전으로 불안한 상황에서도 이 꿈을 간직한 이 소년의 사연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물론 메시 또한 이 사연을 듣게되었지요. 그리고 직접 이 아이를 만나 주었습니다. 메시가 자기 유니폼을 친히 선물해주고 그리고 축구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에도 이 아이를 초청해서 거기서 사진도 찍어주었습니다. 사진] 메시가 자기옷을 선물 해 주고 또 아프카니스탄에 살고 있는 이 아이를 축구경기가 열리는 그곳으로 초대해서 같이사진을 찍어줬습니다. 아마 이 아이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 아이의 사모함이 메시에게 전해졌고 또 상상할수 없었던 선물을 이렇게 받은 겁니다. 아마 어쩌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요?
내가 간절함과 절박한 심정으로 드렸던 기도에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게 응답하십니다. 때론 내가 이 아이처럼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때에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응답을 해 주시죠. 나의 기도에 응답 해 주시는 그 하나님 때문에 우린 감격하면서 5살꼬마처럼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그 기도를 간직합니다. 그러면 이 시간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는 어떤 기도인지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 첫째, (응답 받는 기도는) 동료와 한마음으로 소리높여 이릅니다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사도행전4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혀서 예루살렘공회에 서게됩니다. 이들은 더 이상 예수를 전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사도를 석방해 주죠. 베드로와 요한은 풀러난 다음에 곧장 동료들에게 갑니다. 여기서 동료가 누구일까요?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다. 이 동료라는 단어는 구약 말라기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라고 나옵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교회이죠.
두 사도는 즉시가서 이들에게 그 동안에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 해 줍니다. 아마 제일 생각나고 보고 싶었던 얼굴이 바로 이들이었겠죠. 성도에게 있어서 힘들 일이 생각나고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생각나고 찾아야 할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를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당혹스런사건이나 위기가 발생하면 순간 두려움이 엄습하죠. 그리고 그 두려움에 포로가 되어 버림니다. 아마 베드로와 요한도 예수님이 안 생긴 이 상황에서 처음 겪게된 이 문제가 너무 당혹스럽겠죠. 하지만 두려움에 포로되지는 않았습니다.이들은 이 위기에서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권력자를 찾아가거나 줄을 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먼저 공동체를 찾았습니다. 여러분 나는 어떠합니까? 곤혹스런 사건이 일어났을때 위기상황에서 내 발걸음과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말씀이 있는 공동체와 동료들을 찾기보다도 이 문제를 뭔가 해결해 줄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찾고 있지만은 않습니까? 아니면 나에게 그런 사람이 없다보니까 인터넷 세계로 들어가서 온갖 이야기와 썰들을 보고 듣느라 일상을 소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린 이렇게 문제가 생겼을때 함께 기도할 동료를 찾기보다도 당장에 해결해 줄수 있을 것 같은 도와줄것 같은 대상을 찾아다닙니다. 눈에 보이는 힘있는 권세자 유력자를 찾고 의지하죠. 그러다보면 어떻게됩니까? 결국 그 대상이 나에게 우상이 된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그 대상을 하나님자리에 올려놓고 경배합니다.그런데 우상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일까요? 언젠가는 나를 배신한다는 겁니다. 하나님 대신에 내가 가장 먼저 찾고 의지하던 그것은 반듯이 나를 배신합니다. 그게 사람이든, 돈이든 권세든 명예든 반드시 그러합니다.
저도 작년에 교통사고가 난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난 다음에 이런 저런 궁금한 것이 생겨가지고 앱쇼핑을 하다보니까 몇시간이 흘러가는건 금방이더라고요. 큐티할때는 시간 가는게 느껴지던게 그런거 보는건 세월 지나가는게 전혀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근데 막상 이런 저런 정보가 쌓여갈수록 오히려 쓸데없는 걱정만 더해졌습니다. 나중에는 차라리 그냥 모르는게 낫겠다.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고가 난 날 저에게 주셨던 큐티 말씀이 북이스라엘왕 예후 떠나지 않는 죄였습니다. 예후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의지하는 죄를 말씀 해 주셨는대요. 근대 그게 북이스라엘을 세운 여로보암의 죄라고 하셨습니다.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입니까? 산당을 세워놓고 백성들을 그곳에서 제사하게합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놓고 그걸 하나님으로 숭배하죠.그런데 바로 그게 저였던 것입니다. 사건이 생기면 믿음의 공동체로 달려가서 동료들과 삶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기보다는 인터넷과 유튜브로 들어가서 답을 찾으려고만 했던거죠. 그리고 그곳에서 문제를 회피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막상 문제가 생겼을때 내가 찾아갈 동료 기도제목을 나눌 지체가 있습니까? 만일 없다면 그건 내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그렇게 되기까지 평소 나의 안중에는 공동체가 없었기 때문이죠. 세상친구가 나에게 있다 할지라도 인간적인 위로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오직 예수의 피를 나눈 믿음의 공동체지체들과 이 관계에서만 한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여러분 공동체를 떠난 신앙은 결코 존재할수가 없다. 절대 자립할수도 없겠죠. 우린 100% 죄인이고 오늘 일어섰다고 할지라도 내일 또 넘어질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를 일으켜 세워 주고 나와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줄 지체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합니다. 혹시 이자리에 계신분들 가운데...목장에는 안 나가고 주일예배만 드린 체 안개처럼 사라지는 분들이 계십니까? 아니면 몸은 내가 공동체에 있지만 마음은 안개 공동체에 속한 분이 계십니까? 그곳에서 하루속히 나오시기 바랍니다.
얼마전 저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모르는 번호라서 무심결에 받았는데 황급하게 떨리는 집사님 목소리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늘 담임목사님 설교와 새벽설교를 들어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최근에 이 아들의 자살 징후가 너무 높게 나온 겁니다.
그래서 도대체 누구와 상의해야 될지 모르는차에 제가 청년부를 담당하는줄 알고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사연을 들어보니까 이 아들은 우울증이 심한대다가 한쪽귀가 잘 들리지가 않고 자존감도 많이 낮아서 계속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겁니다. 약을 먹고 자살시도를 하고하루 전날에도 한밤중에 집사님이 주무시고 계시는데 그 방으로 들어와서 죽겠다고 소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늘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시고 예배를 드리시지만 정작 이 문제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너무 불안하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저에게 까지 전화 하셨던 거죠. 제가 그날 큐티 말씀으로 한참을 이분과 상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분께 여쭙고 여자목장에 연결해 드렸습니다. 다행히도 비슷한 고난을 겪으셨던 목자님과 또 동료들이 계신 목장에 연결이 되셔가지고 온라인 목장을 잘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집사님으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목장에서 예배 잘 드렸습니다. 목장에서 많은 위로를 받고 구원의 사건임을 몸소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잘 인내하면서 가겠습니다. 그 문자를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아 이 집사님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 고난을 처음으로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게 되셨구나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의 이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할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이 초대교회처럼 나의 힘든 일을 이야기하고 한 마음으로 소리높혀서 기도할수 있는 공동체가 나에게 있다라는 것은 복 중에 복인거죠. 때로는 공동체에서 상처 받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난 공동체 안 나갈거야 이것은 자기 중심적인 합리화입니다.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 오해받고 상처받고 또 하지만 회복되는 이 시간을 통해서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됩니다. 바로 그게 내가 거룩해져가는 성화의 과정이죠.
베드로와 요한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된 초대교회 동료들은 이제 무엇을 할까요? 아~큰일났다. 드디어 올게왔구나 우린 이제 망했다. 걱정하면서 염려했을까요? 아니면 앞으로 우린 뭐하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야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대책회의를 했을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들이 걱정했다는 내용도 무슨 회의를 했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이들은 두 사도의 이야기를 듣고 곧장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높혀서 기도했습니다.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 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여러분 공동체 동료로부터 그의 나눔을 들었을때 어떻게 반응을 하십니까?목장 할때 어떻습니까? 다른 분들의 나눔을 들으면서 아유~ 찌질하기 짝이 없네~그렇게 행동하더니 지금 저렇게 되었나보다 집사님 삶의 결론이다. 이렇게 판단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무슨 나눔이 저렇게 장황하고 두서가 없고 맥락이 없냐~ 병원가서 상담받고 약이라도 먹으라고 할까? 이렇게 공감도 애정도 없는 반응으로 듣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초대교회 성도들은 두 사도의 나눔을 듣자마자 한 마음으로 곧장 기도합니다. 따라서 지금 내가 속한 공동체있는 동료들의 나눔은 무엇입니까? 내가 한 마음으로 소리높혀 기도해야 할 기도제목입니다. 그가 지금 겪고 있는 그 문제는 내가 함께 소리높혀서 중보해야 할 기도제목이지요. 사실 저도 목장을 탐방하거나 모임을 인도할때면 자동반사적으로 나눔하시는 분들의 나눔을 분석하게됩니다. 공감도 하지만 때론 판단도하고 처방질 할때도 많더라고요.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그것은 그 지체의 기도제목입니다. 사도와 성도들은 누구에게 기도합니까? 대주제여 천지와 바다와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이여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대 주제이신 주님께 기도를 합니다.
우리의 기도대상은 바로 절대 통치자 하나님이죠. 그분께 나의 모든 사정을 아뢰고 일일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린시절에 배가고프면 어떻겠습니까? 엄마에게 배고프다고 말을 하지요. 밥 좀 달라고 내가 몸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엄마가 밥도 차려주고 병원도 데려가죠. 그런데 정작 이 아이가 배고픈데 밥 달라고 말을 안 합니다.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나는데 아프다고 말을 안 하는거에요.그럼 이게 정상적인 관계입니까 아닌거죠.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창조자 절대통치자신대 그걸 머리로는 아는데 실상은 그분을 찾지도 않고 내가 말도 안 하면 어떻게됩니까? 우리집에 아들이 배가고픈데 이 아이가 나를 외면하면서 옆집엄마에게 가서 아줌마 나에게 밥 좀 주세요하면 이 아이가 정상입니까? 아주 이상한거죠. 이처럼 하나님을 외면한 체 나를 도와줄것만 같은 사람을 찾아다니고 다른 것만을 의지한다면 이게 옆집 아줌마에게 가서 밥 달라는 아이랑 뭐가 다르겠습니까?
(적용1)
1. 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찾고 어디를 향하는가? 누구와 그 문제를 이야기합니까?
2. 나는 기도를 부탁하고 한마음으로 소리높여 기도할 동료가 있습니까?
* 둘째, (응답 받는 기도는) 말씀으로 하는 기도다 (25-26절)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사도와 성도들은 이제 시편 2편에 말씀을 인용하여 기도합니다. 시편 2편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시입니다. 다윗의 입을 통해서 성령으로 하신 말씀이죠. 여기서 열방은 이방나라들이고 족속은 유대민족입니다. 세상에 군왕들은 로마통치자들이고 관리는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이들 모두가 한편이되어서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는 일에 관여 했죠. 공통점이 있다면 세상에 권력자입니다. 그러다보니까 분노로 떠들어대고 허사를 경영했습니다. 사도와 성도들은 말씀으로 기도하다보니 지금 자신들에게 당면한 이문제를 말씀으로 해석 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사건이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없는 기도는 기복으로 흐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말씀으로 다 계시 해 주셨는데 기복적인 기도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계속 뭘 달라고만 기도합니다. 기도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반응이죠.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과는 상관이 없이 나의 생각만 주구장창 부르짖는다면 이건 소통이 아니라 불통입니다. 정욕으로 구하는 이 떼부리는 기도에 불과하죠.
제가 우리들교회부임하고 얼마 안되어서 한 모임에서 기도회를 인도하던 때였습니다. 나름대로 기도회를 뜨겁게 잘 인도 했다고 생각하고 자리에 앉았는데...아니나 다를까 한 사역자님이 저에게 오시더니 목사님 수고하셨어요 그러시길래 나름 뿌뜻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역자님이 이 말을 덧 붙이셨습니다. 수고하셨는데 목사님 앞으론 말씀을 좀 넣어서 기도 해 주세요.그 순간 아~내가 했던 이 기도가 말씀은 없고 그저 달라는 외침에 불과했구나 싶어서 얼굴이 화끈거리더라고요. 그 이후부터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게되었습니다. 담임목사님 책에도 매... 끝나기전에 말씀으로 기도하기 적혀져 있죠. 우리가 듣게된 말씀으로 기도할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갑니다. 그래서 진정한 기도의 응답은 상황과 환경이 바뀌기 보다도 이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말씀으로 깨달아 가는 겁니다. 영적인 것을 깨닫다보면 육적인 것도 내가 필요한 만큼 채워주신다는 것을 알게되죠. 자 이렇게 사도와 성도들이 기도하면 시편2편말씀 본문 27절에 그대로 실현됩니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헤롯 안디바는 로마황제의 임명되어서 갈릴리를 다스린 분본왕이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린 로마총독입니다. 이들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합세해서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르고 대적했습니다. 사실 이들은 유대지역을 다스리면서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개와 고양이 같은 견묘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 일에는 친구가 되었죠. 한패가되어서 공모했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해서도 동역하지만 악한 일을 위해서도 함께 동역합니다. 심지어 평소에 사이가 나빴던 원수끼리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의기투합을 합니다.
저도 10년정도 직장생활했는데... 제 상사로 인해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부하직원들도 그랬습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직원들이 유일하게 하나가 될 때가 있으니 그게 언제 일까요? 바로 그 상사를 뒷담화 할때였습니다. 함께 모여서 그를 도마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합니다. 그를 깎아내리고 험담을 하면서 심지어 어떻게 골탕을 먹일까? 궁리하죠. 우리가 소극적인 반항이라도 하자면서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냅니다. 정말 이런 일을 도모하는대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머리가 팽팽 돌아가죠. 이렇게 우리는 작은 일에 분노하면서 허사를 경영한다. 이 허사를 경영한다는 말은 헛된 일을 꾸민다는 뜻이죠.
비단 직장 뿐이겠습니까? 공동체에서 내가 누군가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난 이 목장 안 나가겠다고 그렇게 분노하면서 비난하십니까? 그 시간에 난 TV나보고 그냥 잠이나 자겠다. 그렇게 이야기 하십니까? 바로 이게 허사를 경영하는 것입니다.배우자가 자꾸 날 뒤집어 놓는다고 분노하다가 공동체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너랑 못 살겠다며 이혼을 생각하십니까? 허사를 경영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아이들이 공동체에 잘 나가는데도 학교 성적이 오르지 않는것 때문에 분노하다가 이번 수련회 안 보내겠다면서 그 시간에 학원으로 돌리십니까? 허사를 경영하는것이죠. 청년들은 어떻습니까? 나는 매일큐티하고 공동체를 이렇게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는데도 신결혼을 커녕 손바닥만한 신교제 구름도 안 보인다 그렇게 분노하다가 불신교제를 감행합니다. 허사를 경영하는것이죠. 그런데 바로 이런 것들이 거룩한 종 예수를 대적하고 거스르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자꾸 작은 일에 분노하고 실망하며 허사를 경영하려는 이유가 왜 입니까? 내가 하나님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심판자의 자리에서 통치자 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죠.
세상에 군왕들과 이 관리들처럼 그자리에 딱 앉아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의 주권이 이 대주재이신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니 늘 옳고 그름만 따지면서 작은 일에 분노하고 허사를 경영하죠. 사실 이렇게 말하는 저야말로 옳고 그름의 화신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참 인간적이거든요. 담임목사님께서 간혹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시죠? 우리들교회에서 듣는 이 인간적이다라는 말은 절대 칭찬이 아니라는걸 그 반대인 것을 아시죠? 그러다보니 구원때문에 해야 될 말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자꾸합니다.
이게 내 속에 인본주의더라고요. 이 인본주의라는것은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심판자 노릇을 하려는 것이죠. 옳고 그름에 가치관으로 분노하고 끊임없이 허사를 경영하고 헛된 일을 꾸밉니다. 제가 그동안 그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거스르고 계속 해 왔더라고요.
(적용2)
1. 나는 말씀으로 기도하는가, 내 생각과 정욕으로 기도하는가?
2. 내가 분노하면서 경영하고 있는 허사, 꾸미고 있는 헛된 일은 무엇인가?
내가 기름 부으신 자를 대적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에 누구와 한패가 됩니까?
* 셋째, (응답받는 기도는) 하나님의 권능과 뜻이 이루어집니다 (28절)
세상은 이렇게 거룩한 종 예수와 그 분을 따르는자를 대적하고 거스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예정하신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죠. 로마의 정치지도자들과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의 못 박아 죽이는 일에 한패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자유의지까지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죠. 그렇다면 여러분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난 내 몫에 태인 십자가도 하나님의 권능과 뜻을 이루시기위해서 예정하신 것입니다.
지금 이 십자가를 벗어 던지지 않고 이걸 지고가다보면 내 현재의 이유를 깨닫는 권능을 얻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죠. 아~ 나를 구원하시고자 이 고난을 사용하시는구나 나를 거룩하게 빚으시기위해서 이 일을 쓰시는구나 그렇게 깨닫습니다. 이 우리들공동체는 오늘도 가족의 십자가 건강의 십자가 물질의 십자가 진로의 십자가 이런저런십자가를 지고 가는 분들이 참 많으십니다. 어제도 양육교사를 인도하는데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처럼 옥에 갇힌 환경인데도 거기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분들의 나눔이 이어졌습니다.
그 고백을 듣고 있는데 정말 제 마음도 숙연해 지더라고요. 비록 내가 옥에 갇혀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지금도 그분의 권능과 뜻을 나의 삶속에서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빚어가실 것도 믿으시기 바람니다. 여러분 혹시 곁에서 날 힘들게 하는 헤롯 같은 배우자 식구가 있습니까? 아니면 빌라도같은 직장상사가 있습니까? 그 대상이 아니면 나를 아프게하는 질병일수도 있습니다. 직장이나 사업의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일수도 있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모두 합세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고통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분의 권능과 뜻대로 예정하신 것을 나의 삶속에 이루어 가고 계신다는 것을...
택자에게는 어떤 것도 지나고보면 구속사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걸 깨달아진다면 더 이상 내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감사가 나오겠죠. 내가 감사해야지 감사해야지 한다고 감사 감사 외친다고 감사가되겠습니까? 그게 아니죠. 나의 지금 고난이 성경에 써 있고 내 현재의 이유를 아는 이 권능을 베풀어 주시기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그분의 예정 하신대로 나와 우리가정의 구원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걸 모르니 사건 만 일어나면 나는 시험들었다합니다. 하나님 나 믿음 없는거 아시면서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런 일이 자꾸 나에게만 일어나냐? 니가 도대체 나에게 어떻게 이럴수 있냐? 이런 종류의 말들을 반복하죠. 바로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권능과 뜻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그저 지금 당장에 만족만을 구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얼굴이 늘 춥고 차갑고 어둡습니다. 저도 이 공동체에서 얼굴이 추워보인다는 이야기를 몇번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울을 볼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도대체 이 얼굴이 구원의 소망이 있는 얼굴인가? 기쁨이 있는 얼굴인가? 그러면서 혼자 입꼬리를 들어올려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썩은 미소만 지어지더라고요. 사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될일이겠습니까? 내 얼굴에 기쁨이 없는 까닭은 내 생각이 자꾸 이 현재의 고난과 십자가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까지도 예정하고 계신다. 이걸 믿고 확신하면 이얼굴에 주름이 펴지게되겠죠.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가 없는겁니다. 내가 주님의 죽으심과 이 부활의 내가 참여함으로써 구원을 얻게되고 영생을 누리게 되고 천국을 소유한게 이게 너무 감사하고 기쁜 겁니다. 목사님이 늘 하시는 말씀처럼 영생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지내는것이죠. 아~ 그러면 내 얼굴에 광채가 나지 않겠습니까? 저도 이시간 설교하는데 얼굴에 좀 빛이 났으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적용3)
1.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예정하신 지금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2. 지금 내 얼굴은 어떤가? 어둡고 추운 얼굴인가, 밝고 환하게 빛나는 얼굴인가?
* 넷째, (응답받는 기도는)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29절)
사도들과 성도들은 계속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들이 받고 있는 이 위협을 굽어 살펴주시길 간구하고 있지요. 이들은 위협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유대인의 위협을 주목하사 자신들을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저의 집 아이들이 아주 어릴때 놀이터에 함께 간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미끄럼틀 타고 놀다가 간간히 저를 한번씩 힐끔힐끔 처다 보더라고요. 이 아이들이 왜 그러는걸까요? 아빠가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구나 나를 지켜보고 있구나 나를 보호해 줄거야 이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이 아이들의 그 마음처럼 저 또한 계속 이 아이들을 주목하고 응시했습니다. 혹시나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을까? 어디 부딪혀서 다치지는 않을까? 그 마음으로 주목하는거죠.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굽어보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응시하시고 주목하심으로 지켜 봐주십니다. 이 강팍한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위협합니다. 하지만 사도들과 성도들은 오히려 우리가 담대하게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도대체 어떤 이런 기도가 입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을까요? 이들은 자신이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게 되었음을 믿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의 그 부활에 참여하게 될거라고 믿었습니다. 자신들앞에 당면한 이 지금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죠. 그리고 신뢰했습니다. 그 믿음이 있으니 이 기도가 나온 것이죠. 여러분 내가 예수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받고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어떤 해를 받는 것이 두렵겠습니까? 내가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게되었는데 예수님 때문에 받게 된 어떤 해도 나에게 유익이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지금에 고난에서도 나를 지켜주시길 이 십자가 잘 지고 가게 해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몫에 태인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은 나와 우리가정에 구원을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죽어짐과 내가 썩어지고 밀알이 되는 자기부인의 시간을 통해서도 우리가정에 부활의 빛을 비춰주실 것을 소망하기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초대교회교인들의 기도는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자신의 변화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회피하는 기도가 아니라 직면하는 기도였죠.. 이들은 현실 회피 문제회피 상황회피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이 문제를 직면 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상황을 돌파하게 해 주시길 기도했다.
하나님 저들은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예수님 우리를 붙드사 우리를 담대하게 하심으로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해 주십시요.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요즘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내가 지금 실연 가운데 있다면 주님께서 나를 굽어살펴주시기를 기도해야합니다. 이 풀무불같은 고난 한복판에서도 주님 나를 보호하사 이 문제를 통과하게 해 주시길 기도하시기를 바람니다. 오늘 내 삶의 형편이 어떠하던지 내가 담대하게 이 말씀을 적용하고 나에게 주신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람니다. 이어서 사도들과 성도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담임목사님께서는 이 부분을 설교하실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곤고한 환경에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표적이되고 사건이 해석되는 것이 기사라고... 내가 어떤 환경속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가지면
나의 모든 환경은 남을 죄에서 꺼내 줄 수 있는 환경으로 쓰인다라고 말씀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이죠. 하나님앞에서 나의 죄와 전적인 부패와 무능력을 시인하고 고백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때 성령님은 나로 하여금 십자가로 난길 진리의 길을 선택하게 하시죠. 사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선택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사도와 성도들이 그렇게 기도했을때 드디어 기도응답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하던 그들이 변화되었습니다. 헤롯이나 빌라도 종교지도자들 이들이 변화 된 것이 아니였습니다. 위협의 환경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도하던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내 삶의 지축이 흔들이고, 진동하여 받는 이 기도응답은 내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두려움충만 욕심충만 자기애충만 의심충만 불신충만에서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말씀으로 충만 해 집니다. 기도했더니 내가 변하는 것이죠. 꼴보기 싫은 저 인간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미워하던 내가 먼저 변하게됩니다. 기도하던 내가 성령으로 충만하게되는 것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것 그게 최고의 기도응답이죠. 여러분 성령충만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적용하기위해서 듣기 힘든 그 한마디를 받아내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변하면 성령의 열매는 내 곁에 사람들이 나누어 먹습니다. 내가 말씀충만 성령충만하면 가장먼저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식구들이 기이히 여기기 시작하죠. 오~우리엄마가 왜 저렇게 변했지? 우리아빠가 뭐 땜에 저렇게 달라졌지? 우리가정의 구원역사는 바로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성령충만은 단 하루만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매일 이어지고 연속되고 반복되어져야죠.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충만하길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어떤 계기로 은혜를 딱 받고 하루이틀 정도는 적용을 하죠. 하지만 다음 날이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근데 그런 모습들을 가장 가까이 있는 자녀들도 알고 있죠.
그래서 어느날 갑짜기 내가 아들에게 아들아~사랑한다^^ 카톡이라도 보내면 아빠 요즘 1:1양육 숙제적용하는거 아냐? 이렇게 묻습니다. 엄마 혹시 목장처방 때문에 억지로 그러는거 맞지? 이렇게 아이들도 내가 진짜 성령충만한건지 아닌지 다 압니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라도 들은 말씀 때문에 적용한다면 그게 성령충만하다는 증거이겠죠. 난 하나도 변화된게 없는데 내 기도응답으로 남편과 자녀가 변화되었다 한번 생각 해 보십시요. 오히려 이게 변화된 남편과 자녀입장에서는 전혀 변화가 안된 이 아내 엄마를 보면서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기도하는 나는 하나도 안 바뀌고 상대방이 바뀌기만을 바란다는 것은 이런기도는 욕심충만의 기도죠.
여러분 성령충만의 특징은 말씀을 적용하고도 생색내지 않습니다. 듣기 힘든 한 마디를 겨우 듣고 겨우겨우 넘어갔는데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 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서운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가 하나님이 좋아서 내가 이렇게 적용하게 된것 마저도 황송한 것이죠. 알아주는 사람 단 한명이 없어도 내가 죽어질수 있는 것조차도 감사한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그런것이죠. 자~성령충만해진 사도들이 어떤 일을 합니까?
31절 후반부를 보면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결과는 성령충만이고 이것은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 증거로 이어집니다.
성령충만은 말씀충만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말씀으로 담대하게 살아가죠. 우리가 바로 곁에 있는 이 지체들에게 복음조차 전하는데 소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해 집니다. 담대하게 말씀을 적용하고 순종하죠. 나에게 찾아온 어떤 유혹에도 타협하지 않습니다. 어떤 위협도 굴하지 않죠. 앞으로 내가 받게될 어떤 손해나 불의익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충만하면 말씀으로 사로 잡힌 내가 됩니다. 말씀의 붙잡힌 인생이 되는 것이죠. 그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는데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응답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것이죠. 그런 사람을 어떻게 세상이 건드릴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이 땅에 살면서 두려운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 세상에 무엇을 부러워하겠습니까? 저는 이 시간 함께 예배드리는 모두가 이 말씀에 붙잡힌 인생 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혀서 사시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매주 주일예배 끝날때 패회 찬양을 드릴때면 가슴이 뜨거워지곤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두려워떠는자~ 그 말씀에 생명을 거는자~ 그 말씀에 운명을 거는자~ 순종하면서 주님을 따라가는자~ 그 한사람 그 한사람이 되고 싶다!.그 소망으로 찬양을 부르곤합니다. 바라기는 우리모두가 그 한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적용4)
1. 나는 고난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가? 고난에서 지켜 달라고 기도하는가?
2. 나는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는가? 내 곁에 사람과 환경이 변하기만을 기도하는가?
사실 저는 돌아보면 응답받는 기도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제 신앙의 수준은 기복에서 더 나가지를 못했습니다. 그저 고난을 피하게 해 주시기를 이 문제가 속히 해결되기만을 기도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이 환경속에서 이루워가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응답받는기도의 이 비밀을 알지도 하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아버지 나눔을 했는데...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난 다음에 저희 식구들에게 많은 위로를 해 주셨던 분이 이모부와 이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모부는 언제나 교회와 크리스챤을 비판하던 분이셨습니다. 이모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보살이셨고요.
그 이모부가 저와 함께 식사를 하던 자리였습니다. 저에게 너희집에 예수 믿어서 잘된게 뭐가 있냐? 이 말씀을 하시면서 소수잔을 내미시더라고요. 제가 그 잔을 어떻게 했을까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잔을 받아마셨습니다. 그리곤 네 맞습니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아버지사건이 해석되지않다보니 예수를 믿어도 나와 우리집은 잘된게 없다고만 생각했습니다.그렇게 불신자앞에서 제 신앙을 완전히 부인해 버린것이죠. 그런데 그로부터 5년 뒤에 이모가 쓰러지셨습니다. 지병이 심해지셔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고 매우 위독한 상황이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게 된 때가 주일이었습니다.
예배드리고 있는데 자꾸만 과거에 있었던 그이모부와의 대화가 계속 떠오르는거에요. 내가 도대체 불신자앞에서 무슨 말을 한거지? 내가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는지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리곤 하나님을 부인했던 그 죄악에 대해서 회개했습니다. 내가 그분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조롱을 받을 것 같아서 그 두려운 마음에 한번도 예수의 이름을 전하지 않았던 그런 모습을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모가 구원받고 천국가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이종사촌형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모가 잠시 의식이 돌아오셨는데 말을 전혀 못하니까 종이 한장을 달라고 하셨답니다. 그리고 그 종이에다가는 은혜,성경이라는 이 두 단어를 쓰셨다는거죠. 불교신자인 그 집안 삭구들이 해석이 안되는 겁니다.그래서 저에게 전화를 하신거죠 이모는 교회문턱을 넘으신 적도 없습니다. 입원하기전에는 바로 절에 다녀오셨거든요. 중환자실에서는 가족 이외 누구도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이런 이모의 행동에 대해서 가족들도 기이히 여기고 저도 무척 놀라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곧 바로 성경책을 사서 병원으로 붙여 드렸습니다.그리고 다음날 그 병원을 가기위해서 사촌형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모가 깨어나지 않고 계시니까 제가 와도 대화할수없기에 오지말라 말류를 하는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때가 하나님께서 이모의 구원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무작정 지방에 있는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중환자실 복도에는 너희 집이 예수 믿어서 잘된 것이 뭐가 있냐? 그렇게 말씀하셨던 이모부가 초조한 모습으로 앉아 계셨습니다. 그날 저는 처음으로 이모부에게 복음을 전하게되었습니다.
70세가 넘도록 맘이 굳게 닫혀 계셨던 이모부는 니 이모가 많이 회복되어서 교회나간다면 나도 가야지 ~ 그러시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데 정말 제 귀를 의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면회시간이 되어서 병실에 들어갔는데 순간 이모의 의식이 돌아온 겁니다. 눈을 뜨고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전 이모에게 하나님은 이모를 사랑하신다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계신 이모의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하는데 이모가 눈물을 흘리시면서 고개를 끄떡이시더라고요. 제가 찾아와서 마치 그 말을 해 주기를 바라던 눈빛이였습니다. 그렇게 위독하던 이모가 몇달뒤에 병에서 회복되어 병원에서 퇴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휠체어를 탄 이모를 뒤에서 밀면서 함께 교회오신 분은 다름 아닌 이모부셨습니다. 이모는 그렇게 예수님을 믿으시고 그 이듬해 천국에 가셨습니다.일평생 절에만 다니시다보니까 위독하셨을때 모든 식구들이 그 장례를 불교장으로 준비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몇달전에 예수님을 믿게된 이모의 장례식은 기독교장으로 바뀌어져 치뤄졌습니다. 장례식날 찬송이 울려퍼지던 그 빈소에서 이모부는 제 손을 꼭 잡으시고 이 말을 하셨습니다. 정환아 고맙구나! 니가 그때 보내준 성경책이 이모 영정사진 앞에 펼처져있어~ 정말 고맙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모가 소천하신 뒤에도 이모부는 혼자서 교회출석하시면서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5년전 이모부의 조롱앞에서 예수님을 거스르고 대적했던 저를 내버려두지 않고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자리로 저를 몰아가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제 입술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두 영혼의 구원을 이루워주셨습니다. 과거에는 입조차 열지 못했던 저였는데 이제는 이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기 위한 사역자의 길을 걷게하셨습니다.
저는 최근에 몇차례 영접을 위한 심방을 다녀오게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만나뵙던 분들이 제 이모와 비슷한 연세의 어르신들이었습니다. 그 중엔 한 집사님으로부터 아버지 영접에 대한 요청을 받게되었습니다. 이 집사님 아버지께서 췌장암 4기에 장기까지 전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복음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던 어르신과 교회 냉담하다던 아내분을 만나게되었습니다. 그날 큐티말씀이 골로세서 4장 전도할 문이 열렸으니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길 구하라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게다가 수요예배까지도 이 복음은 천하만민에게 전파된 것이며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말씀을 의지하면서 집사님의 부모님을 뵈었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고 난 다음에 그 자리에 함께 하셨던 동생목자님과 따님 집사님도 남편이 먼저 세상떠났던 사건 자신이 낙태했던 사건을 눈물로 간증을 하셨습니다.그러자 이 아버님은 이제 입술을 열어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병상세례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냉담하시다던 어머니도 그 옆에 있던 조카청년도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제가 이 예수님을 영접하시겠냐는 이 질문에 고개를 끄떡이고 영접기도를 따라하셨습니다. 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참 오래기다리셨다는... 그래서 감사하다는 눈물의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자리에 함께 계셨던 이 분들이 믿음의 동요가 되어서 한 마음으로 드리는 그 기도에 하나님은 구원으로 응답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응답받는 기도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교회로 돌아오고 있는데 정말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형용할수 없는 감격이 올라왔습니다. 한 영혼이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기쁨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주님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99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 구원의 기쁨이 그 분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가장 크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구원을 위한 기도는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께서 100%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하셨습니다.
말씀맺음: 응답받는 기도는 동료와 한 마음으로 소리높여 이릅니다. 응답받는기도는 말씀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응답받는기도에는 하나님의 권능과 뜻이 이루어집니다. 응답받는 기도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 응답받는 기도를 통해서 복음의 증인으로 담대하게 살게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찬양: 말씀 앞에서 경외함으로 주께 홀로섭니다. 생명의 말씀 읽고 순종해 주를 예배합니다. 기록된 말씀 힘이 있어서 진리로 우릴 거룩케하며 거룩한 말씀 세세 영원히 복음이 되어 말씀하시네 하나님 말씀에 두려워 떠는자 그 말씀에 생명을 거는 자 한 사람 찾으시는 주님의 약속을 믿어 하나님 말씀에 운명을 거는 자 순종하며 주 따라가는자 영원한 하나님 나라 이뤄갈 주의 교회여 일어나라 하나님 말씀에 두려워 떠는 자 그 말씀에 생명을 거는 자 한 사람 찾으시는 주님의 약속을 믿어 하나님의 말씀에 운명을 거는자 순종하며 주 따라가는자 영원한 하나님 나라 이뤄갈 주의 교회여 일어나라
기도제목: 응답받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찾기보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동료들과 한 마음으로 소리높혀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대 주제이신 하나님 자리에 내가 앉아서 끊임없이 분노하고 허사를 경영하면서 주님을 거슬러 대적하여 왔다면 회개합시다. 지금 내가 지고 있는 이 십자가 환경에서도 주님의 권능과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 현재의 고난과 위기속에서 주님께서 굽어살피시고 영육간에 병을 낫게하여 주시옵시고 말씀의 표적과 기사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주시기를 기도~ 하나님 나를 성령으로 충만케하시고 언제 어디서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그 말씀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기를 응답받는 기도의 인생이 되기를~
기도:진실하신 하나님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믿음의 공동체와 동료들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셨음에도 사건만 찾아오면 다른 대상을 찾고 두려워하며 요동하던 저를 보게됩니다. 대 주제이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내가 내 인생을 주관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자리에 앉아서 심판자 노릇을 해 왔습니다. 끊임없이 옳고 그름으로 분노하고 요동하며 허사를 경영하고 헛된 일을 행하며 주님을 대적하고 거슬렸던 인생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무관심 한 체 나의 생각과 정욕으로 떼부리는 기도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판단하는 죄를 이 시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하나님 이제는 내 곁에 붙여주신 지체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한 마음으로 소리높여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달아 알기 원합니다. 주님의 권능과 뜻으로 예정하신 내 몫에 태인 이십자가를 잘 지고 갈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구원받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인생 되기를 소원합니다. 현재의 고난과 이 위기에서도 주님 저를 굽어살펴주시고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으로 인해서 내가 죽어지고 주님으로 인해 살게된 인생이오니 주님이 주신 어떤 해도 유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려움 없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주의 손을 내미사 내 마음과 나의 육신의 질병을 고처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가정과 공동체 가운데도 이런 영육간에 병든 식구들이 있습니다. 지체들 식구들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고침받고 낫게하여 주시옵소서 풀무불 환경에서도 말씀이 들리는 표적과 삶이 해석되는 기사를 배풀어주시옵소서 하나님 저에게 주어신 그 어떤 환경도 구원으로 인도하여 가심을 믿습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때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갈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지금 이 고난이 장차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 없사오니 나의 모든 환경이 누군가를 살리는 약재료로 쓰여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시간 기도하는 저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주시옵소서 말씀으로 충만케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먼저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환경에서도 말씀으로 담대하게 순종하고 적용하는 인생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어디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성령의 증인되게 하옵시고 성령의 기도를 드리며 주님께 응답받는 기도의 인생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코로나가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각자의 자리에서 지켜야될 질서와 원칙을 잘 지키고 이때 국민들이 분열되지 않고 이 어려움을 잘 통과하여 가게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백신접종이 원활해서 코로나사태가 종식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 이 나라에 주의 긍휼을 베풀어주시옵소서 구원의 길을 가로 막는 평등법 막아주시옵시고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어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와 이땅에 흐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오며 거룩하신 종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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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생각나고 찾아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교회공동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련하게 친정으로 갔다가 무시와 조롱, 외면을 당해... 다시는 그런 일로 애굽같은 친정을 찾지 않게 되었기에 공동체의 귀함을 알게되었다. 오늘 말씀처럼믿음의 공동체, 공동체를 찾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과 같다 하시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마음 속에서 눈물이 나고감동이 밀려온다.
2
당혹스러운 사건
위기가 발생하면
순간적으로 두려움이 엄습하고
그두려움에 포로가된다.
Q당혹스러운 사건이 왔을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그래서 병원 기도실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응답은 어떻게 받는지 몰랐기에... 기도 해도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가 그때 나의 심정이었다. 미리 들은 말씀도 없었고 신혼때였고...이사한지도 얼마 안되고....교회 옮긴지도 얼마 안되고...등록한지 얼마 안된 상태였다. 그때는 미처 생각 못했는데... 내가 없을때 중환자실에교회에서 심방도 오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위기 가운데서도하나님은 일하고 계신것을 후에 알게되어 또한 감사하다.
3
말씀이 없는 기도는 기복으로 흐른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말씀으로 계시 한 것을 찾지 않고...
기도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반응이다.
말씀에 대한 반응이다.
말씀과 상관없이 나의 생각만 주구장창 부르짖는다.
정욕으로 구하는 떼부리는 기도...
우리가 듣게 된 말씀으로 기도할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간다.
진정한 기도의 응답은 상황과 환경이 바뀌기보다도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말씀으로 깨달아가는 것이다.
영적인 것을 깨닫다보면 육적인 것도 내가 필요한 만큼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을 믿게된다.
Q 지금 생각하면 말씀과는 상관없는 동 떨어진 기도만 했고 나의 필요만 요구했다.
4
허사를 경영하는 것은?
분노하다가 목장 안 나가겠다~
배우자가 날 뒤집어 놓는다고 분노하다가 이혼을 생각하고....
아이들이 공동체 잘 나가는데 성적이 안 오른다고 수련회 안 보내고 학원으로 내 몰고...
청년들은 매일큐티하고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는데도 신결혼 손바닥 만 한 구름도 안 보인다 분노하다가
불신교제 감행한다.
이런 것들이 거룩한 종 예수를 대적하고 거스르는 모습이다.
Q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기 싫어하는 세대에 구체적으로 무엇이 허사를 경영하는 것인지를 나열해
주셔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5
왜 우린 자꾸 작은 일에 분노하고 실망하며 허사를 경영하려고 할까?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심판자...
통치자 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상군왕들과 관리들처럼 그 자리에 딱 앉아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의 삶의 주권이 대 주재이신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작은 일에 분노하고 허사를 경영한다.
Q심판자 통치자 노릇을 하면서도 교만의 죄를모르는 것이 더 문제인 것 같다. 나도 모르고 교만하게 살았던 지난 날을 눈물로써 회개합니다.
6
하나님의 권능과 뜻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난, 내 몫의 태인 십자가도 하나님의 권능과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하신거다.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간다.
가족의 십자가
건강의 십자가
물질의 십자가
진로의 십자가
하나님의 권능과 뜻을 나의 삶속에서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빚어가실 것을 믿어야한다.
Q십자가는 예수님 복음전하다가 당하는 고난인줄 알았는데... 내가 실수해서 다쳐도 십자가로 쳐 주시고 남편이 돈 못벌어 내가 일하러 나가게 된 것도 십자가로 처 주시니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는 지지리 못나서 고생한다 생각하며...예수 믿는데...겨우 먹고 사는 것에 매달려 있어야 되는 나 자신을 자책하는 맘이 있었는데... 그것도 십자가로 처 주셔서 하나님의 권능과 뜻을 나의 삶속에 이루어 오셨고 이루어 가실 주님을 믿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7
응답받는 기도는
위협함을 굽어 살펴주시길 간구함...
유대인의 위협을 주목하사 자신들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해 달라고 ....
지금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함...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받고 영생을 소유하게 됨 기억....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게되었는데 ...예수님 때문에 받게 된 어떤 해도 나에게 유익이 된다.
우리는 이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
지금에 고난에서도 나를 지켜 주시길~
십자가 잘 지고 가게 해 주시길~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은 나와 우리가정에 구원을 이루어 주시길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됨.
Q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만 했다. 오랜동안 했다. 울교와서 공동체에서 양육받고 훈련받으면서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지만 사도들처럼 기도하지는 못했다.
지금부터 남편의위협함을 주목하사 나를 지켜주시길
성경말씀속에 내 이야기가 있다 하며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해 달라고~
암사건보다,가난한 환경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며 믿게 해 달라고~
예수 믿는자에게 어떤 해도 유익으로 바뀌어 주실 하나님을 더욱 더 신뢰하며 갈수 있기를~
가난에서도 우리가정을 지켜주시길~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정에 구원을 이루어 주실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가야 되겠다.
8
초대교회교인들의 기도는 환경의 변화가 아닌 자신의 변화를....
회피하는 기도가 아니라 직면하는 기도를...
현실회피
문제회피
상황회피 하지 않고
담대하게 이 문제를 직면해 주시기를....
상황을 돌파하게 해 주시길 기도...
저들은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예수님 우리를 붙드사 우리를 담대하게 하심으로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해 주시길기도...
풀무불같은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주님 나를 보호하사 이 문제를 통과하게 해 주시길 기도~
내 삶의 형편이 어떠하던지 내가 담대하게 말씀 적용하고 나에게 주신 사명 감당하게 해 달라고 기도~
Q친정가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서 주보를 대 놓고 주지 못하고 책장에 꽂아놓고 온 적이 있다. 예수 믿는 가정인데 형제중에서 제일 가난하게 사니 눌려서 전도하는데...자신이 없었다.
우교에서 훈련받고 내 죄를 보니 말씀이 들리고 담대함이 조끔씩 생겨난다. 표적과 기사다.
9
곤고한 환경에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표적이 되고 사건이 해석되는 것이 기사라고... 내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가지면 나의 모든 환경은 남을 죄에서 꺼내 줄수 있는 환경으로 쓰임받는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다.
하나님앞에서 나의 죄와 전적인 부패와 무능력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Q표적,기사하면 고칠수 없는 병을 고치고 자연현상으로는 볼수 없는 기적을 행하고...라고 잘못 받아드렸는데... 곤고한 환경에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표적이되고... 십자가가 표적이고.... 예수님이 표적이 되고 ... 기사는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 해 내는 것이라 하시니 참으로 감사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표적과 기사라고 생각했었는데..
집에서, 목장에서 적용할수 있는 표적과 기사.... 가까이 다가온 것 같은느끼게되어 감동이다.!
10
성령님은 나로 하여금 십자가로 난 길 진리의 길을 선택하게 하신다.
사망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선택하게 하신다.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응답받는기도다
내 삶의 지축이 흔들리고...
진동하여 받는 기도응답은 내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 내가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 ... 최고의 기도응답이다.
성령충만은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서 듣기 힘든 그 한마디를 받아내는 것 내가 그렇게 변하면 성령의 열매는 내 곁에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다.
Q내가 변하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다라는 말씀에 은혜가 되었다.
학교에서 혼자 아는 찬송불렀는데...
친구: 너 교회 다녀?
나: 아니...
친구: 나랑 같이 교회 가자!
나: 주일날 다리에서 만나서 처음으로 교회가는데...친구가 500원짜리 동전 주면서 헌금하라고 했다.
그 친구를 잊지 못한다.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한다.
이렇게 쉽게 교회 다녔고...내 열심이 들어가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세밀하게 몰랐다.
결혼생활과 긴 생활고 이어진 광야생활로 방황할때 죄를 고백하는 귀한 공동체에서 처음처럼 성령님을 알아가고 있다.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셨다.
11
날마다 성령충만하길 기도해야한다.
성령충만하다는 증거의 예로 억지로 적용한것도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성령충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된다.
성령충만의 특징은 적용하고 생색내지 않는다.
듣기 힘든 한 마디를 겨우 듣고 겨우겨우 넘어갔는데...
나에게 잘했다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서운하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이 좋아서 내가 이렇게 적용하게 된 것 마저도 황송한것이다.
알아주는 사람 단 한명이 없어도 내가 죽어질수 있는것 조차도 감사한 것이다.
Q 얼마나 집에서 죽어지려고 혀를 깨물고 참고 참고 참았던지... 내 죄를 보지 않고는 도저히 죽어지지 않는 길을 알게되어서 ...그것을 알려주신 성삼위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너무 공감이 되는 말씀이다.
12
성령충만은 말씀충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말씀으로 담대하게 살아간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해진다.
담대하게 말씀을 적용하고 순종한다.
어떤 유혹도 타협하지 않는다.
어떤 위협도 굴하지 않는다.
내가 받게될 어떤 손해나 불의익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말씀의 붙잡힌 인생이 된다.
기도의 응답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되는것이다.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혀 가는 인생이 된다.
Q 신앙생활 하면서 성령충만에 대해서도 오해가 많았고 거기다가 말씀충만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한 무지한자였음을 회개하는 심정으로 느낀점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