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4주일말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사도행전 2:14-21) 정정환 목사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기도: 하나님아버지 오늘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고 하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자로 살기위해서 먼저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베드로에게 임한 성령의 충만함을 오늘 저희에게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Q할렐루야! 로 인사하고 싶지만 잘 인사가 잘 나오지가 않습니다. 이번 주중에 주일설교 하라는 말을 듣고 7월 큐티책을 펼쳤는데 사도행전인 겁니다. ㅎㅎ 목사님께서 매주 하시는 이 사도행전을 도대체 어떻게 설교해야하나 근심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오늘 주일 본문을 펼쳤는데 아불싸 4년 전 목사님께서 항암 시작 하기 전 하셨던 성령 충만 말씀인겁니다. 우리공동체 기념비적인 말씀이 잖습니까~ 온 성도님들이 눈물로 기도었던 설교말씀인데amphellip도대체 어떻게 설교해야하나 말씀에 붙잡힌게 아니라 근심과 걱정에 붙잡힌체 매주를 보냈습니다.
그런 제 얼굴을 보는 아내가 이러는 겁니다. 여보 사도행전 감당할수있겠어?ㅎㅎ안 스럽다. 그러더니 설교 원고는 줄 수 있지? 나 목장 인도해야돼~하는데 정말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그래도 금식하면서 기도해주겠다는 말에 좀 위로는 받았습니다. 아침에 나오기전에 물어보니까 한끼 했다고 하러더라고요.ㅎㅎ 그것도 했는지 안 했는지기억이 안난다고하면서amphellip그러다보니 수요예배때에는 기도시간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 하여튼 우리 공동체는 힘들고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이 많은데amphellip 저같은 자가 어떻게 말씀을 전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게 고난인데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렇게 기도로 보냈던 한주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저에게 작은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여러분도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라는 시를 보면 이런 시구가 나옵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amprsquo
여러분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나의 마음을 그에게 준다는 뜻이겠지요. 그 사람에 대한믿음과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114로 전화걸었을 때 친절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멘트가 있지요. 사랑합니다 고객님amprsquo 이 말에 사랑을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아마 계신다면 요즘 정말 힘든 분이겠지요!. 하지만 별로 친하지 않는 관계에서 그 사람이 나에게 내 이름을 다정하게 amphellip누구야! 불러 주었을때는 어떠셨습니까? 굉장히 친근감과 따뜻함을 느끼게되지요. 저도 제가 과거에 몸 담았던 공동체에서 알게 된 제 아내가 저에게 형제님 이러지 않고 정환아! 라고 불러줬을 때는 가슴이 뛰었다. 아~이 누나가 날 친하게 생각하는가보다. 그런데 결혼 후 10년 넘게 살다보니 어느날 갑짜기 아내가 제 이름을 부르면 내가 혹시 뭘 잘못했나?아내가 나 때문에 열받았나? 싶어서 화들짝 놀라곤합니다.
사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그렇죠. 제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정환아 네게 축복 더 하노라. 제가 과거에 고향교회 몸 담았을 때 거기서 선배후배가 작시작곡한 찬양인데요. 이 가사에다가 내 이름을 딱 넣어서 부르면 마치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 같아서 더 위로가 되고 또 은혜를 받곤합니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을 향한 사랑과 신뢰의 표현이겠죠. 그렇다면 이시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 사람은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공동체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14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amphellip
자~오늘 이 본문은 베드로가 했던 첫번째 설교 도입부분입니다. 베드로가 열한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힙니다. 많은 무리 앞에서 담대하게 내 말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소리를 높입니다. 불과 50여일 전 까지만 해도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여종앞에서 벌벌 떨면서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였잖습니까?. 그런데 더 이상 그 베드로가 아닌 겁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 베드로를 변화시켰을까요?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해지다보니까 열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혀 말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성령이 나에게 임하시면 더이상 나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합니다. 지체들이 저마다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자기만 알아듣는 방언을 하기보다는 함께 서서 서로를 붙잡아주지요. 담대함으로 소리를 높혀서 내가 알게 된 예수를 전하고 그리고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간증합니다. 목장을 할때도 전도할때도, 봉사할때도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서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죠.
목사님께서도 설교때마다 이 공동체고백을 통해서 지체들의 삶의 고백과 간증을 함께 나누어 주시지 않습니까?. 제가 지난 주에 영접과 또 영접을 위한 심방이나 또 장례, 결혼,개업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녔다.정말 가는 곳곳마다 우리집사님들께서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주셨다. 그곳에 같이 있던 불신자 식구들을 위해서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소개해주시고 기꺼이 자기의 죄와 수치를 간증 해 주셨습니다.
모압 땅에서 흉년을 겪다가 이 공동체에 오셔서 내가 살아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어 주셨어요.. 그렇게 함께 서서 연약한 지체들을 케어하고 격려해주시다보니까 옆에 있던 저로써도 넘 고맙고 은혜가 되었습니다. 정말 야~말씀에 붙잡혀 있는게 이런거구나 느끼게되었습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라는 말씀이 이해가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가든 경조사 예배를 드리든 그곳에는 성령의 백성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사실 저는 누군가와 함께 서 있는것을 잘하지 못했습니다.아까 목사님께서도 말씀 해 주셨는데amphellip늘 외딴섬처럼 혼자만 있으려고 했던나홀로 신앙이었습니다.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혼자서 그곳에 조용히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청년들과 아웃리치를 간적이 있었는데amphellip 아내의 말에 따르면 제 아들과 딸이 몇일동안 저를 찾지를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아빠가 여전한 방식으로 자기 방에 혼자 집거하고 있는줄 알았답니다. 그 말을 듣으니까 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알게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이런행동의 이면에는 저의 안일함의 우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저에게 담임목사님께서는 혼자서 뭘 하려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사역하라고 늘 말씀해주셨습니다. 양육을 받으면서 적용도 해봤지만 이런 제가 잘 바뀌어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지난주에 이런 저런 사역을 하면서 공동체에 함께 서서 소리를 높이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다보니까 아~공동체와 함께하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내 안에 기쁨이 생기는 겁니다.
야~구원의 일은 혼자 서 하는 것이 아니구나. 지체들과 함께 서서 소리를 높혀서 말하는것이구나. 함께하는 기쁨이 이런거구나 그제야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해가되더라고요. 여러분 목장도 혼자서 할 수 없다. 목원들과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는 곳이 목장이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체를 위해서 설명해주고 붙들어주고 같이 서있게 됩니다. 성냥개비 하나는 쉽게 타고 금방 꺼지지만 여러개 성냥은 함께있으면 잘 꺼지지 않고 또 활활 타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럴 때 꼭 옆에서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각 나라 방언으로 말하는것을 본 일부 유대인들은 이 제자들이 지금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합니다.그러자
베드로는 15-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절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amphellip
지금 아침 9시에 불과한데 어찌 이 사람들이 아침부터 술에 취할 수 있겠느냔 말입니다. 게다가 오순절에는 유대인들이 오전 10시까지 금식해야하기때문에 절대 그럴 수가 없다는 겁니다. 베드로는 조롱하는 이 유대인들을 향해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부드럽고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전 같으면 베드로가 어떻게 했을까요. 예수님이 눈 앞에 계셔도 대제사장 종 말고의 귀를 칼로 내리쳤잖습니까. 성질급한 다혈질의 아이콘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아니라 우리베드로형님이,베드로오빠가 달라졌어요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충만하다보면 달라지는 것이 나의 내면이 변화되고 나의 언어가 달라집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되고 미움과 분노의 말이 아니라 사랑과 화해의 말을 하게되죠. 내가 도저히 넘어갈수 없었던 그것을 넘어가게 해 주시는 거죠!! 내가 알고 있었던 가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에 대해서 담대하게 소리를 높여서 말하게됩니다. 혹 조롱을 받더라도 혈기로 맞 받아치지 않고오히려 반대의 영으로 인내하면서 객관적으로 설명해줍니다.
여러분 내가 말씀충만, 성령충만하다는 것을 어떻게 가늠 할 수 있을까요?
옆에있는 사람이 나를 조롱했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면 알수가 있습니다. 네가 예수 믿는데 보태준게 있냐? 예수 믿고 좀 잘 살아보려하는데 왜 이리 시험들게하냐? 이 사탄 같은 인간아! 혹시 이렇게 혈기로 반응하십니까? 아니면 겉으론 드러내지 않지만 내기 저 인간하고는 상종을 말아야지~ 내가 말을 섞지를 말아야지 이러면서 정죄와 판단을 넘어서 마음으로 살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제 오후 THINK 양육교사를 인도하는데 어제 주제도 갈등충만은 성령충만이다 이 주제였습니다. 배우자의 외도, 조롱, 부모 형제의 비방과 구타를 겪으셨던 집사님들의 나눔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정말 관계 고난을 겪는 분들이 참 많으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중 한분이 이런 나눔을 하셨습니다.남편이 쓰레기통을 비워주는데 계란 껍데기가 있는것을 보면서 남편분이 쓰레기 제대로 좀 버리라고amphellip치우는 사람 생각도 좀 하라고 핀잔을 하고 아내집사님에게 잔소리를 했답니다.그러자 이 집사님이 그거 아들 계란찜을 해 주다가 급해서 버리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러자 남편분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뭐냐며 계속 ....날리니까 이 아내집사님이 치명적인 펀치 한방을 날렸습니다. 당신이나 어머니나 똑같아!!. 순간 이 남편 집사님도 화가나서 좀 조용히 하라고 그렇게 폭발하시고 아내집사님은 나에게 소리지르지 말라고 하면서 서로 난타전을 치르다가 급기야 이 아내집사님은 쓰레기통을 부셔버렸답니다.ㅎㅎ 그래서 이 집사님의 적용은 앞으로 남편에게 어떤 말을 듣더라도 여보 계란 껍데기 제대로 못버려서 미안해요. 다음엔 잘 버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기로 적용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 한마디를 못넘어가는게 있다. 성령충만이라는 것이 신비적체험이 아니라 이런 일상의 자리에서 내가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서 이 한마디를 받아내는 것입니다. 이 한마디를 받아내는 것이 순교이고 이렇게 내가 죽어질 때 화평의 열매가 맺여지는거죠. 그리고 그 열매는 바로 우리 식구들이 나누어 먹는 겁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주님을 전하거나 내 신앙고백하는데 있어서는 참 많이소심했습니다. 늘 다른 사람의 눈치를 쳐다보곤 했거든요. 사이가 편해지고 친해지면 예수님도 전하고 복음도 나누곤 했는데 그렇지 않는 관계에서는 늘 입을 다물곤했습니다. 특히나 이 불신친척들과 같이 있을때는 특히 크리스챤을 조롱하고 핀잔을 주시는 어르신이 계시다보니까 더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을 예수쟁이라고 폄하하고 목회자를 비판하시다보니까 이 분 앞에서는 제가 믿는 예수님을 전할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술자리에서는 잔을 거절하지 못해서 이잔을 받아마시면서도 이분들에게 전도해야되는데amphellip 그 생각만하고 또 말 한마디 꺼내는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왜냐하면 이 분들이 세상적으로도 남부러울것이 없고 식구들끼리도 화기애애하던 모습을 보여주니까 예수가 들어 갈 틈이 없는겁니다. 그런 그분들의 비하면 내 삶의 형편은 너무 찌질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거죠.
그러던 어느날 외할머니께서 위중하셔서 병실을 방문하게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을 모르는 외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이 계속 주시는 영적인 부담감이 제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할머니 임종을 앞둔 상황이라서 친척어르신분들 모두 모여계시는데amphellip. 그분들 눈치만 계속 보다가 결국은 한마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병실을 나오게되었습니다.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 마지막 기회를 제발로 걷어차버린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할머니와의 이땅에서의 마지막 만남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했지만 구원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고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지도 않다보니까 복음을 전하는데는 입이 열리지 않고 소심했던 저였던 겁니다. 예수믿는다는 이유로 조롱받는게 너무 싫어서 신앙을 감추었죠. 그런데도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았습니다. 주일에는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냥 나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틈틈히 선교단체에서 봉사하고 섬기던 때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면 됐지 공동체가 뭐 그리 중요하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사실 이 공동체를 무시하는 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곁에는 지체가 없고 교제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나의 죄를 나눌 그런 지체가 없었습니다. 외할머니에게 이 복음 전하기 위해서 병실로 갈을때에도 이 기도제목을 부탁할 지체도 없었습니다. 한국교회와 목회자에 대해서 비판하는 메일을 써서 뿌리대는 객기만 있었지 정작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할 용기는 없었던거죠.3년간 예수님을 그렇게 따라다니면서도 이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던 베드로의 그 모습이 바로 저였던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께서 저 같은 이런 사람을 복음 전하는 사역자로 불러주신것을 생각하면 그 어떤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돌아보면 목사가 될 자격이라고는 1조차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 저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나는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서있습니까? 아니면 혼자 서있습니까?
누구와 함께 서서 소리 높여 말합니까?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2.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씀으로 삶을 해석합니다.
16절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던 이 제자들에게 일어난 성령강림은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각나라 방언으로 말하게 된 것은 이건 우연히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 요엘서에 계시된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에게 일어난 사건은 바로 말씀의 성취입니다. 지금 내 눈앞에 일어난 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응한 사건이죠.그런데 그렇게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건을 겪으면서도믿음이 없으면 인간적인 일로만 여겨버립니다. 예수님이 찾아온 이 구속사의 사건을 세속사의 사건으로 치부 해버리죠. 제자들이 각나라 방언으로 말하는 이 모습을 본 몇몇 유대인들은 이 제자들이 술에 취해 그런다고 조롱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도 그렇다. 말씀이 응한 사건,말씀대로 되어 진 일에 대해서 내 곁에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조롱합니다. 야~그거 재수가 좋아서 그런거 아냐?, 그거 다 운이 좋아서 그런거지 뭐~우연의 일치 아냐?amprsquo 이렇게 비웃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 사건은 말씀이 응한 사건입니다.
운이나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죠. 그 일의 결과가 내가 원하고 바라던 대로 되었든 아니면 그 반대든지간에 우리는 그 일을 보면서 맞아 말씀대로 되어진 사건이구나amprsquo그렇게 우리는 생각하고 마음의 옷깃을 여며야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설명해 줄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 곁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보면서 조롱하고 비아냥거린다고 할지라도 그 말에 휘둘리지가 않게됩니다. 만약에 내가 조롱을 받는다 할지라도 구원을 위해서 마땅히 해야할 말을 오늘 이 베드로처럼 해줄 수가 있는 것이죠.여러분 우리가 설교를 듣고 큐티하지만 왜 자꾸 조롱과 부정적인 말에 휘둘리게 될까요?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을 말씀이 응한 사건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 따로 사건 따로 말씀 따로 삶 따로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누어 생각하기 때문이죠
. 내가 말씀대로 해석하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건으로 내가 받아드리고 인정한다면 설령 이일에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교만하거나 우쭐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회개의 사건으로 받아드리죠! 반면에 이 일에 결과가 내가 원했던 것과 완전히 반대로 거꾸로 나왔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일을 통해서 내가 예수님을 만나면 감사한 사건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한것이지요.베드로가 오늘 이 요엘서를 인용한 것을 봤을 때 이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아마 베드로는 구약의 말씀을 묵상하고 읽었던 것 같습니다.이처럼 내가 평소에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사건이 딱 일어났을 때에도 말씀으로 해석하고 누군가에게 설명해줄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공동체가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게 된 것도 그렇죠. 담임 목사님의 이말씀 묵상이 온 성도의 말씀묵상으로 이어지고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간증하다보니까 사명의 지경이 조끔씩 넓어지게 된 것입니다.
좀전에 제가 언급했던 친척을 가운데는 이종사촌형도 있습니다. 그 사촌형 아내가 몇년 전 암으로 소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장례식장에 가게되었는데 제가 우리들교회와서 사역하고 또 말씀으로 또 양육을 받다보니까 저의 가치관도 조끔씩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이전과는 달리 이 친척들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 할수 있게 되더라고요.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전도할 생각만하면 마음이 눌렀는데 이제는 그분들 앞에서 소리높여 전도하고 또 이모가 구원을 받게 된 간증을 할수 있었습니다.
제 이모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보살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이모가 질병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을때 제가 이모에게 가서 전도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셨거든요 그렇게 구원을 받으시고 천국에 들어간 이 사건을 불신친척들 모두가 소문을 들어서 알고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이 그 이모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던 제 기도의 응답이었고, 또 말씀이 이루어진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친척들 앞에서 이 고백하고 간증하고 있는데 갑짜기 상주로 앉아있던 그 사촌형이 이러는 겁니다. 그것은. 중환자들이 일시적으로 경험하는 선망증세라고... 병이 심각하면 그런 환청과 환시가 나타날수 있다고 그러면서 막 의학적인 지식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 형이 의사였거든요. 자기 아내도 의사였는데 갑자기 찾아온 이 질병에 손조차 ㅆ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이 고난때문에라도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찾아왔잖아. 그런데제 이 간증에 웃으면서 반박하는데 야~교양이 참 무섭다amprsquo 생각이 들었습니다.정말 아덴사람이죠. 그런데 그 옆에서 친척형은 이런 말도 합니다. 니가 아무리 여기서 전도하려고해도 안될거라고amphellip니 앞에 계신 외삼촌이 대학 교수님이라고amphellip.. 얼마나 박식하고 깊이가 있으신데 목사가 아닌 목사 할아버지가 와도 절대 설득 할수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제가 이야기해도 복음을 거부하고 이 이모의 구원사건을 한낮 신비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는 이런 말들이 조롱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제가 구원에 대한 마음으로 애통하다보니까 그 어떤 말에도 불편하거나 서운 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이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안타깝고 애통이 되었습니다. 그저 제가 전해야 할 이 복음 만을 끝까지 거기서 전 했습니다 그리고 꼭 예수님 믿으시라고 그 말을 하고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목사님의 책과 큐티인과 제 간증을 써서 그걸 집집마다 택배로 다 보내드렸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에게 일어난 사건을 우연이나 아니면 내 열심이나 노력으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높이죠. 하지만 성령이 임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일도 말씀의 성취 된 사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높이고 찬양하게 되는 것이죠.
적용: 지금 내게 일어난 사건 가운데 말씀으로 되어진 일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의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겐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17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절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하나님이 말세에 그 분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신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말세는 언제입니까? 종말의 때이다. 예수님께서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때까지의 기간입니다. 그럼 나에게 그때는 언제인가? 담임목사님은 이 본문을 설교하실 때 그것은 나의 한계를 인식할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경험하는 절대치의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을 겪을 때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되죠. 그런데 자기인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의 종말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내 인생의 말세에 자아가 죽어지고 예수로 살게됩니다. 그리고 그 때 하나님은 그분의 영을 우리의 육체에 부어주십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죠.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됩니다. 세상 경험이 없고 철이 없는 자녀들이 말씀으로 자기 삶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공동체 아이들은 영아때부터 엄마랑 같이 큐티를하죠. 그러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양육을 받습니다. 사실 저희집 아이들도 그 수혜자 반열에 들어갑니다. 제 아들과 딸이 과거에 어린이집 다닐때였는데amphellip 다섯살된 동생이 일곱살 된 누나에게 이런말을 했습니다. 어린이집에 자기랑 친한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니까 누나가 이렇게 대꾸를 했습니다. 야! 걔 교회 다녀?amprsquo 동생이 안 다닌다 이야기 하니까amphellip누나가 이러더라고요. 야~예수님 안 믿으면 그건 불신교제야 불신교제 안돼 헤어져amprsquo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걸 다섯살 된 동생이 듣고 끄떡 끄덕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옆에서 보는데 기가찼습니다. 저나 아내가 집에서 아이들에게 신교제 불신교제 말을 한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교회에서 그 말을 들은 것입니다. 사실 저도 과거에는 신교제 불신교제라는 말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 아이들이 이렇게 어려서부터 구속사의 말씀을 듣고 큐티하다보니까 이렇게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희귀질환으로 투병하던 한 아이가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장례예배를 인도 했는데...그때 아이의 언니인 중학생,초등학생 자매들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의 동생을 보면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고요. 하나님께서 동생을 우리가정에 선물로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그 나눔을 했습니다. 이 고백을 들으면서 함께 예배를 드리던 성도님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바로 여러분 이것이 자녀들이 예언하는모습 아니겠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어릴때부터 이렇게 말씀을 듣다보니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예언을 하는 것이죠.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본다고 하십니다. 다른말로 비전을 보는 것이죠.청년시절의 특징이 뭡니까? 눈에 보이는것을 우상으로 삼고 자기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눈에 보이는 쫓아살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2주 전 쯤 제가 교회에서 결혼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신랑 신부였던 두 청년이 모두 초신자였다. 파혼과 낙태 사건을 겪으면서 자매가 먼저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 형제는 교회 홈페이지 상담게시판에 너무 괴롭고 힘들다면서 글을 남겼습니다. 그글에 제가 답을 해주면서 연락을 취하다가 우리들공동체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는게 없어서 술에 의지하고 허무함에 죽으려고 했던 형제... 세상문화에 쾌락에 빠져 살던 자매가 목장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초양육과 1:1도 받게 되었다. 초신자인데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큐티기도회에 들어가서 자기의 연약함과 기도제목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지난날의 죄악을 회개하고 다시금 결혼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한주를 앞두고 이 두 사람의 관계에 신뢰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파혼의 위기가 도래했습니다. 하지만 부부목장과 또 여자목장식구들의 기도와 권면으로 마음을 돌이키고 다시 화해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치뤘습니다.신랑신부가 초신자다보니까 그날 하객의 대부분이 불신자였습니다. 이 두 사람 덕분에 불신자분들이 우리들교회 판교채플에 들어오셔서 결혼예배를 드렸던거죠. 이렇게 성령이 임하시면 청년들도 자신이 갖고 있던 욕망과 세상적 환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이 임하는 삶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이 두청년은 지난주 휘문에서 세례도 함께 받았습니다.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고 말씀합니다. 과거만을 자꾸 회상하고 자꾸만 서운하고 아쉬운것이 더해지는 그 때 꿈을 꾼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죠. 그리고 모세는 80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했습니다. 갈렙은 85세에 아낙자손과 싸우겠다면서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우리들 공동체에도 실버 골드 목장엔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꾸고 영혼구원의 사명감당하시는 집사님들이 많이계시죠. 나의 인간적인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그 꿈에 사로잡혀서 공동체에서 믿음의 본이 되어주고 계시죠. 하나님은 그렇게 그 분의 영을 모든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십니다. 남녀노소를 망론하고 차별하지 않고 계층과 세대를 뛰어넘어서 모든 종들이 예언하게 하십니다. 날마다 한 말씀으로 모든 세대에게 역사하시므로 자기 삶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시죠. 그래서 여러분 성령은 말씀의 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으로 충만해지고 말씀 만을 좇아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과 마음의 장벽을 깨트립니다. 나의 부족함과 결핍, 열등감 마저도 뛰어넘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면 이 땅에 자녀문제, 젊은이문제, 노인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문제 또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면 해석이 되고 해결로 나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공동체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예언과 환상, 꿈이 가득해질 줄로 믿습니다.
적용:나는 어떤 예언과 환상과 꿈을 꾸고 있습니까? 나의 인간적인 예언과 환상과 꿈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예언과 환상과 꿈입니까? 내 안에 깨어져야 할 편견과 고정관념, 마음의 장벽은 무엇입니까?
4.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흑암 속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19절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절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는 기사를 땅에서는 징조를 베푸십니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된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심판으로 인해서 처절한 흑암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우상으로 삼고 의지하던 해달별이 떨어지는 이 사건이 찾아오면 칠흑같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죠.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그 밤이 도래한 것입니다.하지만 이런 심판의 때는 바로 택자에게는 구원의 시간이 되는거죠. 바로 그때가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 십자가를 지셨죠. 이처럼 내 삶에도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고 붙들만한 그 어떤 것도없다고 할지라도 나의 절대치의 고난 앞에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택자에겐 어떤 환난과 고통의 사건도 구원의 사건이 되는 것이죠. 도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암담한 상황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얻게하시기 때문입니다.그러니 여러분 지금 나에게 해달별이 떨어지고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제 곧 이르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 될일이 있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죠.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위탁을 의미합니다. 나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붙잡고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렇게 예배와 목장에 붙어가면서 이 말씀듣는 구조속에 내가 거할 때 그 말씀이 나를 붙잡아주시는 겁니다. 흑암중에 있는 나에게 찾아오심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시죠. 내가 거하고 있는 이 성 중에도 성령의 백성이 많다라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허락한 이 구원이 나에게만 그치는것이 아니라 내 곁의 있는 또다른 누군가도 구원의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큰 축복이죠. 바로 이게 복음입니다.
제가 첫번째 대지에서 저의 외할머니 얘기를 했는데... 임종 전에 계신 외 할머니를 만났는데 결국은 복음을 전하지 못한 채로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오고 있었던 때 였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순간에 내옆에 있던 동생이 한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119대원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소천하셔서 영안실에 계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알고보니까 저와 동생, 어머니가 외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같이 있었을 때 그 때 아버지께서 저희 집 아파트에서 투신하신 것이였습니다. 그날 점심식사도 아버지랑 같이 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나니까 믿겨지지가 않는겁니다.
장례식 첫날 빈소에서 나와서 밤 하늘을 바라보는데 이 깜깜한 밤 하늘처럼 정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되는 것 같았습니다. 십수년간 질병으로 건강을 회복하고자 안간힘을 쓰셨던 이 아버지의 삶과 또 그 아버지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던 우리 가정에 왜 이런일이 일어나야했는지를 이해 할수 없었습니다. 제 머리속에는 오로지 왜? 라는 이 단 한 글자만 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왜라는 질문을 안고 몇년을 지냈습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그 어떤 지식으로도 이 질문의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재앙보다 더 큰 재앙은 말씀으로 내 삶과 현실이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이 외할머니의 이 땅에서 마지막 만남이 이런식으로 이루어졌다는게 너무 허무하더라고요.그리고 5년의 시간이 지나서 우리들교회로 오게되었습니다. 공동체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사건을 오픈하고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해석이 안되다보니 이 사건 자체만을 이야기할뿐 더 이상 그 어떤 나눔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수요예배때 담임목사님께서 열왕기서로 유다왕들의 계보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좋은 부모 나쁜 부모 할 것 없이 예수 믿게 해주신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는 말씀이 나팔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순간 제 머릿속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아~그래, 맞아~ 아버지가 날 예수 믿게 해주셨지. 아버지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부르게 되었지amphellip 아버지가 나의 구원의 공로자 맞아!. 우리 가정이 아버지로 인해서 주님을 찾게됐고 구원받게 된거야.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 흘리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수년간 꼬여있던 제 마음의 실타래를 그렇게 풀어주셨습니다. 몇년동안 왜? 왜? 항변하던 제에게 주님은 그렇게 찾아와주신거죠.아버지 그 사건은 주님께서 날 위해 기사를 베푸시고 주의 이름을 부르게하시므로 구원을 주시는 사건이란걸 알려주신 것입니다. 제가 성령충만으로 나가는 사건이 된거죠! 말씀이 없었다면 그져 피와 불과 연기속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주저앉아 있었던 저 였는데 주님은 이런 저를 말씀으로 찾아와 주셔서 붙잡아주시고 그분의 영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하면서도 그 분의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언제나 내 이름 석자를 부르면서 그 이름이 불리워지기만을 바랐던 제 죄악과 완악함과 교만을 보게하셨습니다.
저는 내 이름이 사람들에게 불려지고 내 이름이 영광을 얻기를 바랬습니다. 정정환이라는 이 이름에 우상을 새기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냥 좋은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어서 위선과 외식을 하고 가면을 쓰고 지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충만하다보니 가장 가까이 있었던 할머니에게조차 복음을 전하지 못했던거죠. 내 욕심과 자기애로 충만하다보니 아버지 아픔조차 공감하지 못한 채 집에서는 저의 편안함과 안위만을 추구했습니다. 내 열심과 자기 의로 충만하다보니 세상성공을 부르짖고 스펙을 부르짖고 힘과 권세와 명예을 부르면서 그저 내 인생의 목적이 잘 먹고 잘 살고 그저 행복에 만 꽂혀있었던 겁니다. 그런 제게 주님은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사건으로 찾아오신거죠. 그리고 그 암흑 어둠속에서 기사와 징조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바로 그건 말씀이 있는 공동체를 만나게 하신 겁니다. 매주마다 목사님께서 전해주시는 이 구속사의 복음을 듣게 하시므로 내 삶이 해석되게 하신 거죠. 내 현재 이유를 아는 것이 진정한 권능이라고 하셨습니다.근데 이 주님은 이 권능을 깨닫고 누리는 인생으로 저를 견인해가셨습니다. 매 예배시간마다 그 예언의 말씀을 들으면서 웃고 울면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의 죄성에 절망하는 날도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죄를 사하시고 내 상처를 치유하시며 싸매어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이 성령님의 손길을 경험하다보니 그 회개의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을 내 삶에 이르게 하신겁니다. 제가 이것을 깨닫게되니까 아버지의 자살 사건은 더 이상 재앙의 사건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므로 나와 우리 가족이 구원받는 구원의 사건이 되게하신거죠. 그리고 이제는 식구의 갑작스럽고 황망한 죽음 이해하기 힘든 죽음 앞에서 장례를 치르는 유가족들과 저의 이 약재료를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과 함께 서서 주의 이름을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이 자리에 그리고 영상을 보시는 분들 가운데 고난과 환란중에 거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비록 내가 오늘 피와 불과 연기속에 있을지라도 바로 이 날이 나에게 구원이 임하게되는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될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오늘 약속 하시는 겁니다.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되는 사건이 나에게 찾아왔을지라도 지금 내가 그런 환경에 있을지라도 오직 내가 할일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을 불러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 어떤것도 그 무엇도 나를 죄와 사망과 중독과 고통에서부터 건저낼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가게 하시죠.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주시는 그 구원의 기쁨과 감격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의 이름이고 생명의 이름이며 소망의 이름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잘 알려진 이런 명품브렌드가 있잖아요. 굿지,루비똥,프라다 샤넬 이런 메이커들은 그 이름 하나만을 가지고 장사를 하죠.. 그런 이름에 세상사람들은 열광을 하고 몇시간 동안 줄을 서서 그것을 비싼 돈을 들여서 구입을 하죠. 그런데 그 이름과는 비교할수 없는 이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분이 바로 지금 내 안에 계십니다.그럼에도 혹시 요즘 나는 어떤 이름에 열광하고 있습니까? 어떤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사모하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우리가 평생에불러야 할 이름이 있다면 오직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 밖에는 없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이 본문을 설교하실 때 암이 발견되었다는 나눔을 하셨습니다. 암이라는 이 질병으로 인생의 한계와 말세를 겪게 하셨지만 오히려 아픈 성도님들을 체휼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광된 하나님의 신비를 알게하시고자 이 일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함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바라기는 오늘 이 시간 우리 각자가 지금 어떤 형편에 처해 있던지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회개로 나아가고amphellip. 하나님께로 돌이키므로 구원받는 역사가 나와 우리 가정에 있기를원합니다. 나뿐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식구들도 또 우리 자녀들에게도 이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증거하므로 그들도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을 함께 경험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적용:나에게 찾아온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 사건은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이름을 사모하고 열광합니까? 나는 지금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말씀 맺음: 주의 이름을 부르는자는 공동체와 함께서서 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말씀으로 삶을 해석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겐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흑암속에서도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바라기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모두에게 이 은혜가 임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찬양: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이에요.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아들아 네게 축복 더 하리라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이에요. 사랑한다 내 딸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네게 축복 더하노라
기도제목: 공동체에서 나 혼자 서 있지 않고 지체들과 함께 서서 소리 높혀 삶을 나누고 서로를 붙들어 줄수 있기를 기도~ 나를 조롱하는 이가 있을지라도 인내하면서 구원을 위해 마땅히 할말을 해 줄수 있기를~ 나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도 말씀으로 해석하고 설명할수 있기를~ 나의 한계를 깨닫는 이 말세에 말씀충만 성령충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과 환상과 꿈을 꾸게 해 주시길 기도~ 해가 변하여 어두어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흑암의 사건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삶이 되기를~ 평등법이 통과되지 않게 막아주시고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기를~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공동체로 인도 해 주셨지만 언제나 나 홀로신앙으로 외딴섬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체들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왔습니다. 내 욕심과 자기애로 충만하다보니 가장 가까이 있는 식구들의 아픔과 상처를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입을 닫고 그들을 외면하며 지내왔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내 열심으로 자아로 충만하다보니 작은 조롱조차 받아내지 못하고 혈기를 내고 판단을 하고 정죄를 일삼았던 저였습니다. 하나님 돌아보면 나에게 일어난 그 어떤 일조차 말씀이 이루어지는 사건이었음에도 믿음없이 그 사건을 세속사로 치부했던 불신앙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이런 저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하나님 지금 내 한계를 깨닫는 나의 말세에 주님의 영을 부어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의 이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주시옵소서 기복적인 말과 세상적인 환상과 꿈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주시는 예언과 환상과 꿈을 꾸는 인생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갈바를 알지 못하고 헤매이는 우리자녀들 있습니다. 말씀이 들려 예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악된 문화속에 있는 우리 청년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환상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젊은날 가졌던 꿈이 깨어져 상실감에 있는 장년과 노년의 성도들께는 주님께서 주시는 꿈을 꾸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가정에 성령을 부으사 모든 문제가 말씀으로 해석되게하여주시옵소서 그래서 진정한 해결로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공동체에 남녀노소를 망론하고 모든 차별과 장벽이 허물어지게하사 성령으로 하나되고 충만케되는 역사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이 공동체 어느누구 한 사람도 홀로 고립되지 않게하여주시옵시고 함께서서 소리높혀 말하며 고백하며 간증하며 서로를 붙잡아주고 사명을 위해 한 마음되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나에게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되는 흑암의 사건이 찾아왔습니까? 그렇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원합니다. 피와 불과 연기속에도 주님을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원의 은혜 베풀어주시옵소서 복음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증인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내 곁에 있는 식구 부모형제 지체들도 주님의 이름으로 인해 구원 받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모두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평등법이 발의되었습니다. 하나님 막아주시옵소서 구원의 길을 가로막는 모든 악법들이 통과하지 않케 도와주시옵소서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어 이땅가운데 건강한 생명윤리가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오며 존귀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느낀점******
1
구역예배공동체만 경험한자로써 우리들 공동체에서 죄를 고백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되어 또공동체에서 나 혼자 서 있지 않고 지체들과 함께 서서 소리 높여 삶을 나누고 서로를 붙들어 줄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나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이다 생각이 든다.
2
성령이 나에게 임하시면 더 이상 나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한다.
함께서서 서로를 붙잡아준다.
담대함으로 소리를 높혀서 내가 알게 된 예수를 전하고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간증한다.
목장을 할때도 전도 할때도 봉사할때도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서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한다.
*우교공동체는 구원의 공동체 맞다!!
3
성령이 충만하다보면
나의 내면이 변화되고
나의 언어가 달라지고
용서 할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되고 미움과 분노의 말이 아니라 사랑과 화해의 말을 하게된다.
도저히 넘어갈수 없었던 것을 넘어가게 해 준다.
*목사님의 말씀과 공동체가 있어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를 체험하고배우게되었다.
4
성령강림은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다.
계시된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다.
오늘 나에게 일어난 사건은 말씀의 성취다.
눈앞에 일어난 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응한 사건이고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건을 겪으면서도 믿음이 없으면 인간적인 일로만 여겨버린다.
구속사의 사건을 세속사의 사건으로조롱한다
말씀대로 되어진 사건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옷깃을 여며야한다.
그리고 사건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설명해 줄수 있어야한다.
*남편 렌트카사건을 남편의 잘못이다 세속사로여기니 삶의 결과로 값을 톡톡히 치르게 하셨다.
공동체 고백을 통해서 지체들의 삶의 고백과 간증을 통해서
공동체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이다보니 말씀대로 되어진 사건이고 주의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주신 피와 불과연기 같은 사건임을 깨닫게되어 얼마나 감사한지요.
.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겐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신다.
말세에 그분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신다.
종말은 예수님께서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때까지의 기간이다.
나의 종말은 나의 한계를 인식할때다.
자신이 경험하는 절대치의 고난이 말세다.
고난을 겪을때 자신의 한계를 느낀다.
내 인생의 말세에 자아가 죽어지고 예수로 살게된다.
그때 하나님은 그분의 영을 우리의 육체에 부어주신다.
* 결혼생활하면서 얼마나 많은 한계를 경험했는지 모른다.
지금을 말세지말이라고 들었지만 그게 나에게 적용시키지 못했다.
공동체와 함께지체들의 삶과 고백과 간증을 통해서 점점 더불어 하늘에서는 기사 땅에서는
징조를 조끔씩 의식하게 되고알아가게된다.
4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으니는 꿈을 꾼다.
성령이 임하시면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
과거만을 자꾸 회상하고 서운하고 아쉬운 것이 더해지는 그때 꿈을 꾼다고 한다.
*이 말씀이 맞는 것이
얼마나 직장고난이 많으면 옛날 직장을 그리워하며 남편 선택한 것을 후회하며살았는지요.
성령이 임하지 않으니주인되시는 하나님을 등지고 많은시간 헛된 망상으로 허비한 것을
진정으로 회개합니다.
나에게 해달별이 떨어졌을때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낙심하지말라
절망하지말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제 곧 이르겠구나 생각하면 된다.
내가 할 일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위탁을 의미한다.
구원자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붙잡고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예배와 목장에 붙어가면서 말씀듣는 구조속에 내가 거할때 말씀이 나를 붙잡아주신다.
흑암중에 있는 나에게 찾아오신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나에게 허락한 이 구원이 나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곁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도 구원이 이르게 하는것이고 이것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자에게 주시는
가장 큰 축복이다 이게 복음이다.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욕심이 많았구나 생각이 되었고...이 말씀이 나에게 임하기까지 이방법 저방법 사용하시면서너무나 수고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