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하는 것도 은혜다.두려워하는 것도 은혜다.마땅히 무서워할 것, 두려워할 것을 그렇게 할 줄 아는 것이 은혜다.신앙생활 오래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되고,회개하기만 하면 다 용서해주신다고 하니,아무런 생각없이 죄를 짓고,별 두려움 없이 회개를 한다.그러다 보니 습관이 된다.습관이 쌓여 인격이 된다.무서워할 줄 모르는 인격, 두려워할 줄 모르는 인격,죄를 삼갈 줄 모르고 은근히 즐기기까지 하는 인격이 된다.그런 인격이 되고만다.오늘 예레미야서 23장 9-22절을 보며, 뼈가 떨리는 은혜를 배운다.예레미야 선지는 말씀한다.내 마음이 상하며 모든 뼈가 떨린다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린다고,죄때문에 그렇다고 했다.이 땅에 가득한 죄를 보고 그 죄때문에 뼈가 떨린다고 했다.뿐만아니다.이방인은 원래 그렇다고 치고,예루살렘 성전에서도 그랬던 때문이다.선지자들과 제사장, 그들마저도 똑같은 죄에 빠져서 헤맸기 때문이다.그들은 한 수 더 떴다.죄를 지으면서도 무서워하기는 커녕 거짓 평안을 빌어댔다.거짓 축복을 선포해댔다.그러면서 죄의식, 죄책감마저 갖지 않게 했다.그래서 그들의 죄는 더 컸다, 더욱 많았다.그러면서도 무서워하지 않았다.오히려 죄를 즐겼다.예레미야는 말한다.그래서 무섭다고, 뼈가 떨린다고,정신이 어지러워 비틀거려진다고 말한다.오늘도 하루가 밝았다.죄를 무서워하는 은혜,죄때문에 뼈가 떨리는 은혜,그런 은혜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그런 은혜를 잃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그래서, 북국 이스라엘처럼,남국 유다처럼 진노의 대접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그래서,하나님의 나라, 그 평안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또 간절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