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1 주일예배 ampldquo성전의 터amprdquo (역대하 3:1) 이성훈목사
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기도: 하나님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무자격도 없고 조건도 없는 저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 전하는 자리에 세워주셔서 두렵고 떨리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섰습니다. 오늘 성전의 터에 대해서 주님이 사랑하시는 지체들과 함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지난 목요일부터 우리는 큐티인 역대하를 묵상을 시작했는데요. 매일 큐티 잘 하고 계신가요? 솔로몬이 성전을 지으려고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우리가 보고있습니다. 성전이든 궁궐이든 모든 건물은 보통 땅 위에 짓잖아요. 물 위나 허공에는 건물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보니까 평범한 땅이 아니라 정말 특이한 터 위에 지은 예배당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몇개만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진]
1) 예배당인데... 저 큰 바위산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돌 산이라고해요. 그 꼭대기에다가 저렇게 교회 예배당을 지어놓은 것인데 10세기때 지었다고 하네요. 저 위를 도대체 어떻게 올라갔을지 참 궁금하더라고요. 화산 돌산위에 세워진 예배당
2) 저 예배당은 12세기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강 위에,다리위에 놓인 예배당, 여행객들이 다리 건너 여행하다가 딴 길로 새지 말고 예배드리고 가라고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합니다.
3)뭔지 아시겠어요? 나무에요 나무, 나무가 15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 된다고 하는데 저 나무가 어느날 (17세기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번개를 맞았대요. 번개를 맞았는데 이게 교묘하게 맞아서 가운데 속만 싹 타서 없어지고 그 옆에는 생명이 유지된거에요.그래서 그 공간이 생긴 것을 어떤 사람들이 보고서 여기다 예배당을 짓자 라고해서 나무를 터로 삼은 예배당입니다.
4) 저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건물이 있는데... 가운데 구멍이 하나 있죠. 동그랗게 하나 있잖아요. 저게 예배당 지붕이래요. 지붕~ 지붕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저 지하에 예배실이 있다는 것이잖아요.
사진] 지붕아래에 예배공간이 펄쳐저 있다고 합니다. 정말 신기하죠. 저거는 지하에 터를 두었다 해야 될까요?
5) 협곡,계곡에 다리를 올렸는데 한쪽 계곡에다가 큰 돌로 된 교회를 또 세웠습니다. 이렇게 희안한 터 위에도 예배당을 지을수 있다는 게 너무 희한해서 또 재미있어서 여러분과 함께 보려고 준비를 했어요.
여러분에게 만약에 교회를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여러분은 어느 터 위에 예배당을 지으시겠습니까? 혹시 모래 위에 지으실 분은 아무도 안 계시지요.? 모레위에는 절대 지으시면 안됩니다. 오늘 우리 함께 읽은 역대하 3장 1절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터가 모리아산이라고 해요. 그런데 역대기자는 이 터에 대해 오늘 본문에 보니까 세가지를 소개합니다.
같은 장소를 3가지 설명하니까 뭔가 강조하고 싶은거에요. 언젠간 무너질 성전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것이 상징하는 우리 성도 한사람 한사람 우리가 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성전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성전건물이 아니라 그 성전이 상징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들어야 할 주님의 음성이 이 한절에 지금 담겨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역대하 3장1절 말씀을 통해서 성전 터의 세가지 특징을 같이 살펴보시면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인 우리가 성전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터 위에 서 있어야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성전의 터는 첫번째
1. 하나님만이 상급이시라는 믿음의 터입니다.
1절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
모리아라는 지명은 성경에서 단 두번 나오는데... 오늘 본문하고 창세기 22:2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그러니까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했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그런데 사실 이 모리아 산 자체가 중요하겠어요?. 모리아 산이 상징하는 모리아 산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상징하는, 그 의미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어디든 모리아 산이 될수가 있는 것이죠.우리가 오늘 예배드리고 있는 이 성전도 모리아 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읽어야되는 것이죠. 그러면 모리아 산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목사님 창세기 강해 때 저희가 들은 것처럼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수준을 테스트해가지고 사람들에게 자랑하시려는 하나님의 시험에,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응답 한 그런 장소입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이 엄청난 시험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곳이고, 하나님께서 책임 지실 것을 믿은 곳입니다. 이 믿음으로 인생에서 아브라함은 가장 간절한 예배를 드린 곳이고 이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은 곳입니다. 한마디로 모리아 산은 이세상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그런 믿음의 터입니다.
요즘우리가 사도행전 말씀을 듣고있으니 바울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바울도 자기보다 늘 하나님을 앞세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는 그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에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그래서 그 한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매맞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자기가 쓸수 있었던 그 로마 시민권같은 특권을 쓰지 않았어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 내가 죽는것같은 적용을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져주신다는 그러한 믿음.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최고의 상급이시며 목적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의 터 위에 바울이 서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상급이심을 고백하는 믿음이죠. 이 믿음의 터 위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져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보다는 웅장한 구조나 값비싼 재료 오늘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역대하 3장 뒷부분에 나오는 것을 보시면 엄청난 성전의 구조와 황금으로 다 덮은 것과 보석으로 치장한 화려한 것들이 나오잖아요. 그렇게 화려 해 보이는 이 외모나 특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때가 훨씬 많습니다. 건물에 터는 건물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잖아요 그러나 건물을 장식하는 보석이나 금은 얼마나 잘 보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터보다는 그 화려한 재료들을 더 좋아하는것이에요.
제 이름은 성훈입니다. 성훈은 거룩한 공을 세우라는 뜻으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이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은 저는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거룩한 공을 많이 세우겠다는 그런 별난 사모함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물론 그때 가졌던 그 사모함이라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모함이라기보다는 제가 높아지고 또 높아져서 세상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고자하는 그사모드라게를 사모하는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에 따르면 저는 네살때부터 내가 크면 할아버지처럼 목사님 될거야 이랬다고 합니다. 제 주변에 요나처럼 드라마틱한 일을 겪으면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고 그런 확신을 가지고서 목사가 되신 분들이 많이 계신데요. 저는 그런 인생의 드라마가 정말 없습니다. 고난도 없고 고난을 받기 위한 그 방황의 길로 가고 싶어하는 그런 욕구도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시키지 않아도 때 되면 교회가서 예배를 잘 드렸고, 또 시키지 않아도 때가되면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억지로 한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힘든 일인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혼나 본 기억도 없고 그 흔한 잔소리를 들어본 적도 사실 거이...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살다보니까 학교 성적도 잘 나와버렸어요. ㅎㅎ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간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울대를 가버렸지 뭐에요! ㅎㅎ 엄마가 하도 조르셔서 학원을 친구들과 다녀봐라~ 고등학교때 유명한 학원에 하도 부탁해서 억지로 갔다가 수업이 한시간에서 두시간이었는데... 한시간을 들어보니까 더 이상 들을 것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자리에서 나와서 사무실 가서 환불 받아서 돌아 온 적도 있습니다.
@교과서만 봤더니 만점 받았다는 재수 없는 성공사례 여러분들 인터뷰로 본 기억이 있었을터인데요. 바로 성공사례중 하나가 저 경우가 된 셈이죠.뭐 그죠!? 중학교때는 전교2등 밑으로 내려 간 적이 거이 없고요.ㅎㅎ 고등학교때는 우리때는 전국모의고사라는 것을 봤어요. 요새는 시험을 많이 안 보아서 그런 것이 없을지 모르겠는데요. 전국 모이고사를 보았는데 전국모의고사에서 제가 전국 1등 한 적도 있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성적표를 잘 보관 해 두고 액자에 넣어두고 이랬어야했는데 이렇게 할 줄 몰라가지고 버려버린 것 같아요.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고요. 찾았습니다. 좋은 성적을 원해서 악착같이 한것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냥 그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대원외고를 들어갔는데... 대원외고 입학도 제가 준비하고 계획 한 일이 아니였어요. 사실 저나 제 부모님이나 그런 특목고 같은데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제가 살던 동네도 서울 변두리였어요.그래서 거기 학교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특목고 보내려는 그런 열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대원외고라는 학교가 있는 사실도 몰랐는데요.
중학교 졸업할 무렵에 아버지 직장 때문에 대원외고가 있는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아버지 직장 동료분께서 아니~아들 공부 잘한다는데...그 동네에 좋은 학교 있으니까 한번 시험이나 보게 해라~ 그래서 저희 가족이 한주동안 의논을 하고 고민을 하다가 그래 시험이라도 한번 봐 보자~ 그리고 시험 준비를 했는데 제가 시험준비 할 시간이 딱 3주였습니다. 3주동안 제가 뭘 할수 있겠어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 제일 어려운 문제집을 가져다가 한권 쓱 풀고서 가서 시험을 봤는데 덜~거덩 합격을 하더라고요.ㅎㅎㅎ
그런데 외고 들어가서 공부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 같이 있다보니까 4살때부터 품어왔던 그 목사의 꿈 목사되겠다는 꿈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머리가 커지면서 목사의 삶이 그렇게 영광스러운 삶이 아니라 사모드라게처럼 높아 질수 있는 삶이 아니라 고단한 삶이라는 것을 좀 알게되었고...또 꼭 목사를 해야만 성훈, 거룩한 공을 세워드릴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것을 또 깨달았어요.그래서 아버지처럼 외과 의사 해야 하는것이 더 좋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고2때 학교가 문과 이과를 나누었어요. 2학년 들어가면서 결정을해야했는데...1학년 때였죠. 저는 문과를 가서 목사를 해야되는지 이과를 가서 의사를 해야하는지 할아버지처럼 목사냐? 아버지처럼 외과의사냐? 이것을 인생최대의 고민으로써 고등학교 1학년때 고민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가을에 저희 할아버지께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입원 하셨습니다. 문병하느라고 제가 중환자실을 몇차례 방문을 했어요. 그곳은 긴장한 의료진들이 뿜어내는 그 생명의 기운과 거기에 누워계신 환자분들안테서 스며나오는 그 죽음의 기운이 이렇게 공존하는 곳이였습니다.
짙게 깔린 죽음에 맞서 싸우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모습이 저에게는 굉장히 크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렇게 온 힘을 다해서 정성껏 보살펴서 누워있는 환자를 다시 살린다해도 어차피 저분은 언젠가는 돌아가실거 아니냐? 언젠가 한번은 죽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술도 귀하지만 결국 사람을 영원히 살리는것은 복음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번뿐인 인생인데 가장 가치있는 일을 하자, 의술도 귀하지만 아버지처럼 의사되는 것도 좋겠지만은 나는 역시 복음 전하는 목회를 해야되겠다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2학년때 문과를 갔고 사실 제가 수학을 영어국어보다 더 좋아하고 ...제 성격을 보니까 사람들을 섬기고 앞에서 말씀전하고 막 ~ 따라다니고 이런 목사보다는 제 기술가지고 조용하게 사는 의사가 제 성격에 더 맞을 것 같아서 진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날 그런 생각이 나서 결심을 해서 문과를 갔고 대학교도 철학과, 신학과를 가서 이렇게 목사가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제 이력서는 정말 아무런 흠이 없어요. 정말 보암직합니다. 제가 제 이력서를 보아도 너무 뿌듯한거 있지요. 저는 세상에서 살면서 기분 좋을때가 몇 시기가 있잖아요! 저는 어딘가 지원할때 이력서 쓸때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너무 자랑스러운거에요. 하여튼 그런데... 솔로몬이 고급목재와 황금과 각종 보석으로 정성껏 성전을 쌓아 올렸듯이 저도 좋은 배경과 또 학벌과 사역지를 화려한 재료 삼아서 성훈, 즉 거룩한 공이라는 저만의 성전을 화려한 성전을 지으려고했습니다.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며, 바리새인이며, 가말리엘의 제자며, 로마시민이었던 바울의외형을,겉모습을 그런 외적인 조건을 갖추려고 했어요. 지금 와서보면 다른 것들은 제가 바울을 닮았다고 자신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딱 한가지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바울을 닮았다라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게 뭘까요? 바로 대머리가... 바울이 대머리였다고하는데... 대머리만큼은 제가 확실하게 바울의 외형을 닮았다고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믿음의 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상급이심을 온전히 믿지 못하니까 제가 늘 앞날을 걱정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거룩한 공을 세우면 그에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한다는 계산이 제 머리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심 기대했던 그 보상이라는 것은 최고의 상급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서 얻는 그 명예와 인정과 재물이었습니다. 믿음 없이 계산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은혜로 불쌍히 여기셔서 제 인생의 임자를 만나게 해주셨어요.
제가 좋은 재료라고 여겼던 저의 배경과, 이 학벌과, 이 사역지 정말 자랑스러운 저의 황금이었는데...이것을 마치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처럼 여겨주는 지금 제 아내와 하나님께서 같은 멍에를 매게 해주신 것입니다. 결혼하자마자 아내는 제가 자랑하는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아내는 제가 돈도 못벌어온다고... 가장이면서 돈도 제대로 못 벌어온다고... 돈 못 벌어오면 시간이라도 많아야 될터인데 돈도 못벌고 시간도 없어서 맨날 바쁘다고 그렇게... 돈 없고 바쁘면 성격이라도 좋아야되는데... 아이 이 사람은 돈 못벌고 시간도 없고 성격도 나쁘다고...이 모습을 잠깐 그럴때가 있잖아요 사람이...잠깐 그랬으면 아내도 그냥 지나갔겠죠 그런데 이것을 제가 결혼하고서 10년동안 매일같이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아내 속이 어떠했겠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이제 조끔 마음이 헤아려져요.
그런데 제가 그때는 정말 하나님을 이렇게 저의 상급으로 여기는 믿음의 터위에 서 있지 못하다보니까 아내의 이런 비난을 제가 마땅히 들어야 할 말로 듣지 못하고 정말 원망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나님만을 상급으로 여겼다면 아내의 그런 비난을 나 좀 살려줘amprsquo ' 나좀 살려줘~' 외치는 그런 외침으로 제가 들으면서 그 마음을 헤아렸을 것이고... 그러면서도 저는 흔들림없이 사명의 길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제 인생 최고의 상이신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믿음의 터가 없으니 저는 아내의 말에 분노와 원망으로 응답했고 결국 저 자신도 그렇게 열심히 준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된것을 후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늘 이혼과 자살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어요. 믿음의 터 없이 쓸데없는 재료들로 덕지덕지 치장 만 했던 제 삶의 결론이었습니다.
적용질문 :인생의 집을 어떤 모양으로, 무슨 재료로 짓고 계십니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집입니까?
이것만은 높고 화려하게 지어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부르짖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전의 터 두번째는
2. 어떤 경우든 내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터입니다.
1절 두번째 구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산전 수전 공중전 지하전까지 겪으며 끊임없이 회개했던 다윗은 통치 말년에 또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인구조사를 한 것이죠. 다윗은 백성의 수를 드러내서 세력을 과시하려고 했어요. 목사님께서 설명 해 주신대로 넘버게임을 한 것입니다. 조사된 130만의 수를 보면서 다윗은 그제서야 내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큰 죄를 저질렀구나amprsquo 이렇게 자기 죄를 뉘우쳤지만 결국 그 죄에 대한 벌로 백성 7만명이 죽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 바로 이 모리아 산입니다. 이때 다윗이 이렇게 말한다. 사무엘하 24: 17절 말씀입니다.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원래 이 사건은 사울을 따랐다가 다윗을 따랐다가 또 압살롬을 따랐다가 이렇게 정처없이 자기원대로 아무나 쫓아다니는 그 백성의 그 불신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는 백성의 불신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려고 허락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잘 잘못을 따지기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다윗이 억울한 것 같아요.
백성의 불신 때문에 괜한 죄에 격동이 된 것이잖아요. 하지만 다윗은 백성의 목자로써 백성의 모든 죄를 자기가 책임지며 제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앞에 제가 죄인입니다.! 고백합니다. 믿음있는 사람의 모습이죠. 가정과 교회에서 중심잡는 그 한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참 하찮게 여길때가 많아요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 지신,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과 같은 편에 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동역자가 되는 일이고, 그런 엄청난 일이다. 억울하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영광입니다.
@ 바울이 성령의 환상을 따라서 성령의 직행으로 빌립보에 왔잖아요.그런데 거기서도 참 기가막힌 일을 많이 당합니다. 맞지 않아도 될매를 맞았고 갇힐 필요가 없는 깊은 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거기서 성령의 찬송을 부릅니다. 그렇게 바울은 빌립보의 변두리 인생들, 이 잉여(剩餘)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바울이 사울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그 사람은 도저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게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바울은 그렇게 변할수 있었을까요? 성령의 회심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 같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박해한 죄인임을 철저하게 깨닫고 자신의 옛 삶에서 완전히 돌이켰습니다. 그렇게 교만했던 사울이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바울로, 그래서 성령의 수행원으로, 또 성령의 동역자로 빚어져갔습니다.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의 터입니다. 어떤 경우든 자기 죄를 보면서 회개할때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이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갑니다.
*저는 지금까지 여러 분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 가장 첫번째 스승이자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은 초등학교 4때 담임선생님입니다. 저는 그 선생님을 4학년 1학기때 전학가서 만났는데요. 그 전학이 제게는 4번째 전학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학교가 제가 다닌 다섯번째 초등학교였죠. 제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에 아버지께서 군의관으로 입대하시는 바람에 임지를 자주 옮기셨고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그래서 전학을 4번이나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때 5~6학년때 저를 부르는 별명 몇개 중 하나가 동동수망발이었어요. 동동수망발...이게 뭔말인가하면 제가 다녔던 동북초 동성초 수유초 망우초 발산초, 초등학교 이름을 다 따서 한 것입니다.
변두리만 다 돌아다닌 것이죠. 근데 어머니와 함께 교무실에서 선생님을 처음 뵌 날 선생님께서 제 생활기록부를 보시더니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전학 그만다니게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전학을 다니면서도 공부 잘하고있는것이 참 기특하네요. 이제는 여기서 졸업을 하게 하시면 좋겠습니다.amprsquo 이 말씀이 제 부모님께 충격을 주었는지 정말 저는 그 학교에서 초등학교 졸업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은 예수 잘 믿는 집사님이셨고 제 장래희망이 목사라는것도 아셨어요. 저는 교회에서도 늘 칭찬 만 받고 그렇게 전학을 다니면서도 학교 선생님들안테 혼나본일이 거이 없었는데요. 그런데 유독 그선생님은 저를 자주 혼내셨습니다. 그 중에 잊을 수 없는 일이 저를 매로 때려주신 일이였어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 맞아본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몸이 불편한 친구를 ( 장애가 있는 친구였는데...)밀어서 넘어트렸거든요. 특권의식이 배어있던 저로써는 그 것이 잘못인줄도 모르고 그렇게 했었던 것 같아요. 그 모습을 보시고서 선생님은 저를 매로 쳐서 깨우쳐주셨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몸 불편한 친구를 내가 폭행했다는 그 죄가 저에게 너무 죄책감으로 눌리는 그 과정이 시작되었고요. 그래서 그 일을 계기로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지만 그제서야 처음으로 주님 앞에 제가 죄인임을 고백하며 회심을 경험 할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매와 훈육이 저를 예수님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인생의 첫 은사시자 가장 중요한 스승 중 한분인 셈이죠. 그분의 성함이 이양재 선생님입니다.ㅎㅎ 그 후로도 저는 여러 스승님들을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제게, 저 뿐만 아니라 저희 아내에게도 저희가정에 큰 은혜를 주신 스승님은 우리 목사님이십니다. 김 양재 목사님~ 이렇게 보면 제가 양재라는 이름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이양재 선생님 통해서 철없던 시절에 처음으로 죄라는 것을 생각해서 예수님께로 나갈수 있었고요. 양재초등학교를 나온 양재동에 사는 그녀를 만나서 ㅎㅎ 그녀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100일동안 매일 같이 양재동으로 출근을 했으나 이혼의 위기를 당했습니다.그런데 이혼의 위기에 있을때 우리 김양재목사님 만나서 말씀묵상과 가정중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그 엄청나고도 놀라운 은혜를 받아서 저와 제 집이 여기까지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 (다른 일은 제가 태어나서 생각 해 보지 않았잖아요.) 잘 안다고 스스로 생각을 했어요. 학부와 대학원에서도 신학할려고 동서양 철학을 공부했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을 읽고 라틴어로 쓰인 신학에 고전들을 읽었고 영어와 독일어와 불어로 쓰인 현대 신학의 글들을 공부했으니 제가 남들보다 조금 더 잘아는줄로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지식으로는 제 가정 하나 간수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조차 양육할 수 없었어요. 우리들교회 와서야 제가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지 못하는 그런 죄인일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묵상하면서 하루하루를 말씀대로 살아내고계시는 우리 성도님들 앞에서 이전에 제가 솔로몬의 그런 황금처럼 저의특권처럼 자랑했던 스펙들을 이렇게 오픈하는 것이 사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사실 오늘도 이렇게 재수없는 저의 이력밖에는 나눌 것이 없어서 설교준비하는것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처가 별이되어 빛을 발하고 계신 우리 성도님들 그 옆에,반짝반짝 빛내고 계신 우리성도님옆에 제가 이렇게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너무도 영광이기 때문에 이렇게 용기를 내서 저의 고백을 나눕니다.
지난 수요일에 설교해주신 초원지기님은 고등학교 입시도 떨어졌다고 하셨는데.... 하지만 지금 우리들교회 초원지기와 목자로써 이렇게 지체들을 잘 돌아 보시고, 초등부 부장으로 13년이상 섬기시면서 아이들을 살리시고 계시는 것을 보면 정말 제가 그분께 머리가 숙여지고 마음깊이 존경스럽습니다.
최고 학벌을 가진 제가 열등감이 폭발 할 지경입니다.
대단한 이력이 있어도 이력이 없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앞에 한명의 죄인으로 서는 것이고. 그 죄를 다 속량해주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잖아요. 별인생이 없습니다. 별나게 살아도 별볼일 없이 살아도 별빛 반짝이는 저 하늘 아래에 살아도 별빛같은 나의 인생아~를 부르며 살아도 결국 우리의 별은 예수님 한 분 뿐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렇게 목사님과 우리들 교회를 만나서 구속사적 가치관을 깨닫게 되니 이제야 제가 비난과 지적을 조끔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부부 목장에 갔을때 저는 저를 고발하는 아내의 말을 도저히 들어줄수가 없었습니다. 목장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아내를 향해서 제가 '아니~ 어떻게 성도님들 앞에서 사역자 남편에 대해서 그렇게 심한 말들을 할 수 있느냐? 도대체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라고 싸우기 시작해서 오는 길마다 싸웠던 기억이 많이 있고요. 몇번은 차 안에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날이 새도록 싸운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내의 말 정도는 큰 동요 없이 들어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어끄젓께 부부목장을 하는데...목자님께서 저에게 목사님은 죄패가 뭐에요?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우리적용질문이었잖아요. 제가 대답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아내가 갑자기 저를 새치기하더니 눈이 반짝반짝 신이나 가지고 갑자기 입이 열려서 말을 쏟아놓은 것입니다. 하는 말이 아~이 사람은 자기 판단만 정답이라고 한다고, 교만하기 짝이 없다고... 자기의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은 사람이고 막~ 쏟아놓는 것이에요. 그러더니 결정적으로 딱 단어를 써서 이야기 하는게 뭔지 아세요? 이 사람은 학벌귀신이라고... ㅎㅎ 이 사람은 박사귀신이라고... 이렇게 저를 대신해서 저의 죄패를 외쳐주더라고요. 제가 진짜 인정을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없고요. 100% 인정을 합니다. 이제 이 죄패가 호패가 되고 마패가 되어서 구원의 사명을 위해 쓰여야 되는데 갈길이 먼것 같습니다.
적용질문:배우자, 자녀, 부모를 향해서 여전히 탓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내 성전을 위한 회개의 터를 닦기 위해 인정해야 할 내 죄는 무엇입니까? 성전의 터 세번째는?
3. 값을 치르는 적용의 터입니다.
1절 마지막구절 여부스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나타나 회개를 받으신 그 장소는 모리아 산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습니다. 여기 나타나신 하나님께 자기 죄를 회개한 다윗은 선지자 갓이 전한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자리에서 예배드리려고 하죠. 그래서 땅 주인 오르난에게 이 사정을 이야기 합니다. 그랬더니 이 여부스사람 오르난은 예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이 왕께 드리겠다고해요.기꺼이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오르난의 선물을 거저받기를 거절하고 값을 지불하고 돈을 주고 그 산 전체를 구입합니다. 거기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니 재앙이 그칩니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오르난과 다윗 모두 자기자리에서 값을 지불합니다.오르난은 여부스 사람인데... 여부스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몰아내야 할 일곱 족속 중에 맨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저항했던 족속입니다.
여호수아때부터 사울 왕까지 300년가까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여부스사람을 정복하지 못했어요 다윗 때 비로서 다윗이 그들을 점령하고 시온성을 세웠다고 했습니다.그러니까 오르난 또한 다윗에 의해 정복당한 사람 중 한 명이에요. 다윗의 적군중 한명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이 최후의 적이 다윗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드디어 인정하고 이제 예배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고자하는 최고의 예배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대적의 자리를 떠나서 예배자의 자리에 서기 위한 값을 아낌없이 치르는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미 백성의 죄를 자기 죄로 인정하고 회개 했으므로 자신이 지불해야 할 대가를 또한 모두 지불 합니다. 당시로써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빼앗을 힘과 권한을 지닌 왕이잖아요. 그러나 다윗이 진정한 분수령적인 회개를 했기때문에 그런 특권을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값을 치르는 적용을 합니다. 이렇게 오르난이나 다윗이나 각자 자기자리에서 구원을 위한 그 댓가를 치르는 적용을 하니까 그 자리가 어떻게 됩니까? 예배의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에 응답하세요.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재앙을 그치게하십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강이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평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놓임을 경험하는 샬롬이 되는 것이지요.이렇게 값을 치르는 이 적용의 터 위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집니다.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삶에도 십자가 지는 그 적용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회개는 결국 적용으로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적용이 믿음과 회개의 증거입니다.큐티의 꽃은 적용이라고 하셨어요. 우리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따라서 날마다 십자가 지는 적용할 때 우리의 모든 일이 우리 모든 환경과 조건이 영혼구원으로 이어집니다.
제가 목사안수 받은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는데요. 제 목사 안수식때에 보통 아내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는데요. 제 아내는 미니스커트에 가죽잠바 입고 등장했다는거 여러분 다 기억하실 줄 압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그렇게 철없어보이는 아내가 어이없다 여기시며 저를 지지해주실줄로 믿고 이번주 이 설교 준비하면서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아내에게 갔어요. 왜 갔느냐? 교육을 좀 시키려고 갔습니다. 이거 봐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안수식에 미니스커트와 가죽잠바를 입고 올수가 있느냐? 앞으로 내가 이렇게 사역을 계속 할거니까 앞으로는 좀 장소에 맞는 상황에 맞는 격에 맞는 옷을 입어라amprsquo 그것부터 적용을 해라~ 제가 교육을 시키려고 딱 그랬단 말이죠! 그런데 아내가 가만히 그 말을 다 듣고 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솔직히 안수식에는 가지도 않으려고 했다. 당신이 크리스찬인것도 내가 의심스러운 마당에 ㅎㅎㅎ 목사안수를 받는다니 내가 정말 뜬눈으로 그 현장을 볼 수가 없어서 진짜 내가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싸움을 한 의리가 있기 때문에 그 의리로 옷장에서 가장 예쁘고 가장 좋은 옷을 나름대로 골라서 입고 갔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가 있느냐? 내가 안수식에 가서 사진찍어 준것이나 좀~고마워할줄 알아라amprsquoㅎㅎ
*저는 아내를 교육시킬 그 기대에 부풀어서... 성도님들의 모든 응원을 (머리속으로 다 끌어서) 등에 업고 ...아내에게 갔지만 결국은 제가 이렇게 전세가 역전되는 듯한 상황이 되면서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아내에게 그래 고마워~라고 하면서 끝났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내의 이런 말을 듣고도 바로 인정이 되니까 또 역시 내가 머리가 좋으니까 죄도 빨리 인정하는구나 그런 생각에 정말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ㅎㅎ 죄송합니다.제가 오픈할 것이라고는 이렇게 재수없는것밖에 없으니까요. 저렇게 재수없는 사람도 우리들교회에서 사역을 할 수가 있구나amprsquo 사역자로 살아갈수가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시고 우리 수준 높으신 여러분께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했어도 제가 목사니까 이런 것을 다 나누니까 제가 아내보다는 제 죄를 더 빨리 인정하는 것 같지 않나요? 말씀도 더 잘 깨닫는것같잖아요? 제가 다 나누잖아요. 그렇죠!? ㅎㅎ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게 끝이 아니였어요. 지난 주일에 바로 전 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주일 저녁에 집에 와서 월요일 새벽에 발인예배가 있었거든요. 발인예배 준비를 다 해놓고 새벽에 나가야 되니까 좀 일찍 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초원 목자님께 전화가 걸려 온 것이에요. 제가 예상했던대로 목자님 아버님께서 위중하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때가 시간이 밤 10시 반이 넘은 시간인데요. 목자님께 제가 빨리 가겠다고 조끔만 기다리시라고하고 ...거리가 꽤 되는 곳이었어요. 얼른 옷을 바꿔입고 떠나려고하는 그~ 순간에 아내가 갑자기 제 앞에 오는거에요. 그러더니 내가 운전 대신 해주겠다amprsquo.
갑작스런 제안에 저는 너무 당황이 되어가지고 아니 괜찮다 나 혼자 편하게 갔다 올테니까 나 안 피곤하다 또 거기가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많이 기다려야 될 수도 있으니까 그냥 집에있어라 나 혼자갔다오겠다. 말렸는데 아내는 굳이 자기가 운전해주겠다는거에요. 아~내일 새벽에 일찍 나가야 되지 않느냐? 내가 운전 해 줄터이니까 차 오가는 길에 조끔이라도 쉬어라~ 저는 몇번 더 사양하다가 시간만 지체될 것 같아서 알겠다고 고맙다고하고서 아내가 운전해주는 차에 아주 편하게 타고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정말 날이새매입니다.
제가 조끔전에 아내보다도 죄를 더 잘 보고 말씀도 더 잘 깨닫는다고 드렸던 말씀은 이 자리에서 취소합니다. 이렇게 제 아내는 가죽잠바 입었던 여자에서 운전대를 잡는 여자로 바뀌었습니다. 놀렐루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제가 한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구요. 뭘 해도 이렇게 어설픈 제가 어떻게 아내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전적으로 우리 공동체의 덕입니다. 지금까지 아내를 성령의 돌보심으로 돌봐주신우리모든 여러 목자님들 진심으로 제가 감사드린다. 감사합니다! 꾸벅~~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제 아내를 그리고 저를, 저희 가정을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갚을 수 없는 은혜 위에 또그 은혜위에 은혜를 제가 받은자가되었습니다. 목사님과 우리들교회에 전적으로 진 사랑의 빚입니다. 이 빚은 제가 사는 동안 평생 지고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공동체가 없으면 바로 원위치 되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들교회 사역자라는것도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저를 우리들교회 성도로 불러주신것이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공동체에서 한 사람의 성도로써 여기 계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받고 가는 것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심방을 해보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배우자가 변하지 않는다고 낙심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에게 제가 경험자로써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교회에 믿음의 터가 있고 회개의 터가 있고 적용의 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우리가 붙어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살려주실 날이 반드시 옵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시면서 목장에 꼭 붙어 가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잘 매여있어야만 우리가 이 공동체에 잘 매어 있어야만 우리가 말씀의 잘 매어 있어야만 놓이는 날이 옵니다. 내가 먼저 예배회복하여 주님의 성전으로 조끔씩 조끔씩 세워져 간다면 주님의 날이 되어 성령의 놓임이 있을 줄 믿습니다. 공동체에 붙어만 있었더니 서로를 무시하고 비난하며
너는 너, 나는 나 하던 저희 부부가 조금씩 성령의 동역자로 바뀌어가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높고 험한 토로스 산맥들이 많이 있고 옥에 갇히는 상황들도 앞으로 많이 있겠지만 이제는 주님의 말씀과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두렵지 않습니다. 같이 이 길을 걸어갈수 있으리라고 믿음이 생깁니다.
적용질문
여부스 사람처럼 끈질기게 날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와 함께 예배자로 서기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할 값, 해야 할 적용은 무엇입니까?
붙어만 있었더니 누리게 된 평강이 이 있습니까?
말씀맺음: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은 다 무너졌어요. 더 크고 아름다웠던 이 헤롯의 성전도 결국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졌습니다. 그러나 그 터는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다윗의 회개와 적용은 성경에 기록되어서 영원히 기억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외적인 것이 우리 삶을 성전되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상급이심을 믿는 그 믿음의 터 어떤 경우든 내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터 값을 치르는 적용의 터위에 서 있어야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집니다. 날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대로 믿고 회개하고 적용하시면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으로 조끔씩 지어져가시는 우리모두가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 오실때까지 우리교회가 주님의 성전으로써 이렇게 귀한 사명으로 쓰임받기를 소원합니다.
찬양: 우리에게 소원이 하나 있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 가슴에 세긴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하네
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마음 희생과 포기와 가난과 고난 하물며 죽음조차 우릴 막을 수 없네 우리교회는 이땅의 희망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성령 안에 예배하리라 자유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사역하리라 교회는 생명이니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기도제목: 주님 만을 상급으로 믿지 못했던 일들을 회개하십시다. 주님은 저희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저희는 주님보다 좋은게 너무도 많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기도~ 어떤 경우든 내 죄를 고백하는 회개를 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 회개가 주는 기쁨을 좀 느끼게 해 주시기를~ 그 자유를 좀 누리게 해 주시기를~ 가정에서 맡기신 또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구원을 위해 값을 치루는 적용을 할수 있도록 ~ 성령님께서 연약한 저희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기를~ 우리들 교회가 말씀묵상과 가정중수의 이 귀한 사명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잘 감당할수 있도록~ 우리 담임목사님을 또한 지켜주시고 섬기시는 모든 분들에게 은혜주시고 공동체의 모든 어려움에 처한 모든 지체들의 기도제목을 주님께서 응답 해 주시기를 간절히기도하시겠습니다. 태아생명 보호법이 제정되고 평등법이 막아지도록~ 우리 나라를 위해서 기도~
기도: 하나님아버지 제가 주님을 최고의 상급으로 믿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 못한 일임에도 죄를 인정하지 않고 남탓만 하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보는 손해가 두려워서 또제 이 알량한 특권을 잃을까봐 무서워서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성전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믿음과 회개와 적용의 터 위에 서 있어야 함을 저희에게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이 말씀대로 믿고 회개하고 적용하는 삶,교회의 머리시며 모든 우리구원의 기초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연약하고 부족한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저희가운데 크고 작은 여러고난가운데 신음하고 계신 분들 많이 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가정불화로 부부간에 싸움이 너무도 심하여서 더 이상 살기 싫다고 공동체를 떠나고 싶다고 울부짖는 분들이 제 주변에도 계십니다. 아버지 심한 육체적 고통 가운데아파하시는 분 또한 계십니다. 하나님아버지 마음의 병으로 살 소망을 잃어버린 것 같은 분들이 너무도 많이 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사업이 어려워지고 일이 어려워져서 살길이 막힌 것 같은 그런 장애물 가운데 낙심하시는 분들 너무도 많이 계십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모든 환경들이 성령의 열림으로 열리게하시고 성령의 놓임으로 놓이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우리교회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말씀이 들리는 은혜를 통해서 우리 한분 한분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경험하실 수 있도록 주님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하나님 담임목사님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모든 사역을 성령의 권능으로 붙들어주시옵소서 우리교회 모든 부서와 목장마다 말씀이 흥왕하여 큰 기쁨이 넘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나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코로나 재앙이 너무도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님 이제는 그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아버지 이 나라의 잘못된 가치관이 막아지게 하여 주시고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고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지켜주시옵소서 땅끝에서 또한 말씀전하시는 우리선교사님들 한분한분 주님께서 돌보아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옵나이다 아멘!!
************느낀점**********
**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조마조마~ 여기게하시고 ,말씀을 더듬 더듬거리면서도 설교하실 때마다 더욱더 마음속 이야기를 과감하게용기를 내어서 하시니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쌓아놓은 것이 많으면 스스로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은데....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있어서 배설물로 여기고 드러내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특히 사모님 이야기는 와~ 천생연분이세요.!!
1] 죄인된 인간은 보이는 것만 치중 할수밖에 없는데......언젠가 무너질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귀한 예수 믿는 그 한 사람 성령님께서 거하시는하나님의 성전, 귀함을 절절히 느끼게 하는 말씀입니다.우리들 교회는 믿음의 터 회개의 터 적용의 터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고 믿음의 길을 잘 가고 있는지 검증할수 있는공동체를 주시고 모델을 세워주시고날마다 말씀으로구체적으로 알려주시고 어록으로길잡이가되어 인도 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2] 하나님의 상급이시라는 믿음의 터, 우리의 삶의 현장이 모리아 산이고 시기마다 날이 새매처럼 모리아산이 달라지고....노년에는 주방이모리아산이 되어 날마다 제물로 바쳐지는 치열한 장소라는 것을 깨닫게됩니다.
돈도 안 벌어온 사람에게 본인이 원하는 음식을, 그것도 하루 3끼를 맛있게 해 올린다는 것은.... 과연 모리아산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수준을 테스트 해 사람들에게 자랑하시려는 하나님의 시험에 아브라함이 합격했다.
말씀이 없으면 매일 주방에서 하는 일이 특히 음식을 잘 못 만드는 나로써는 울화통터지고,신세한탄하고, 지겨울터인데...아브라함이믿음으로 응답한 장소 ,약속을 믿은 곳,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을 믿은 곳, 아브라함이 가장 간절히 예배드린 곳, 모리아 산은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하나님을 선택한 믿음의 터 ...
말씀을 들으면서 응답,약속,책임,예배, 선택, 믿음 단어들을 떠 올리면서 주방에서 하는 모든 일에 내욕심을 제거하고나니
말씀 하나만으로도날이 새매 새로운의미로 다가옴을느끼게됩니다.
3] 사건이 있을때마다 남편은 불같은 화와 욕은 기본이고 ... 왜 속에 화가 잔뜩 들어 있는 사람처럼 저러나~ 화산이 폭발직전의 사람처럼~ 생각했는데... 그것 또한 제 욕심임을 깨닫고 오늘 말씀처럼 분노을 쏟아놓을때나 좀 살려줘!! 나 좀 살려줘!를 믿음으로 알아 듣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4] 어떤 경우에도내가 죄인입니다. 고백하는 것이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과 같은 편에 서 있는 것이고 동역자가되는 것이고 예수님의 일에 동참하는 영광된 일이다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죄패가 호패가되고 마패가되어야되는데 사건이 오면 생각이 안 나는 것이 문제인데 ...그래도 잠시 후엔 공동체에서 양육과 훈련이 있어서 제 자리인 100% 죄인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5] 사건이 오면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데 ....내 죄를 고백하는, 회개가 주는 기쁨을 좀느끼게 해 달라고 기도제목으로 내 놓으셨는데 ....사건이 점점 작아지고 죄를 보게된기쁨,용서의 기쁨은 점점 커지기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잔잔하게 울림이 되면서 은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