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1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할 사람 요19:1~16
빌라도가 예수에게서 찾을 죄목이 없어 풀어주고자 하나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에 두려워하지만 로마의 왕을 두고 자신을 왕이라고 하는 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라고 압박을 하자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줍니다.
사도신경을 읊조리거나, 성경을 읽으면서 늘 궁금했던 것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의 이야기 입니다. 사도신경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 수 없으나 수 많은 기독교인에게 본디오 빌라도라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작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사람은 유대인이었으며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었는데 왜 빌라도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까? 그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나 그의 장인이며 실세였던 안나스에게 더 큰 책임이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의 이름은 본문의 짧은 기록으로 남아 있고 모든 성도들에게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야바의 이름 대신 빌라도가 기록된 이유가 잘 깨달아지지 않지만목사님 말씀대로 띵크를 하며 묵상을 하니 대표자의 역할과 책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이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밑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만드는 사람이 있는데 그 정책은 그걸 만든 사람의 이름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실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잘못을 따질 때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 땅에 기득권을 가진 공회와 유대인 지도자들 앞에서 대제국 로마의 분봉왕으로서 위엄은 상실하고 그들과 짝짝궁이 되어 어떻게든 잘 지내보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어제 큐티 설교를 듣다보니 빌라도는 예수님과 1:1의 말씀 공부를 놓친 사람이었다는 말씀을 들으며 이런 상황에서 그런 적용을 깨달게 되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저는 가정에서 이창수의 아내로 그리고 경환이와 영민 두 아들의 엄마로 나의 역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저를 김질배 황공순님의 딸로 이 땅에 두셨지만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딸의 역할을 잘 감당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오랜 시간 아내와 엄마의 역할도 잘 해왔다고 스스로 자부하며 살았습니다.
두 아들이 내 기준에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러나 두 아들은 내 기준을 한참 벗어났고 날마다 그 문제를 놓고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조금 들리고 이제는 매 시간을 우리들 공동체에서 주는 말씀을 먹고 마시니 내가 얼마나 가증한 사람이고 남을 의식하며 옳고 그름으로 기준도 방향도 없이 흔리리는 사람이었는지 깨달게 됩니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도 내가 100% 죄인임이 인정이 되니 누구에게도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자입니다.
내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역할을 잃고 세상의 종 노릇하며 물에 흘러가는 나뭇잎처럼 떠내려 가다보니 남편도 아이들도 함께 떠내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악한 도구로 빌라도를 사용하신 것처럼 저도 우리 가정에 빌라도처럼 세상에 사용된 악한 죄인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번주 고난주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유대인의 지도자이며 빌라도와 같은 자라라는 것을 인정하는 은혜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팔복 책방에 '선한 능력으로' 찬양을 만드신 본헤퍼 목사님의 책을 소개를 통해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읽으면 예수님의 피 값으로 주신 값비싼 은혜를 내 요구사라항을 채워주는싸구려 은혜로 만들어 버렸음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따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성취하는 나와 우리 가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저를 악의 도구가 아닌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사용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공동체 안에 머물며 주신 것을 먹고 마시는 은혜를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믿지 않는 부모님과 남편의 건강, 그리고 두 아들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는 사건이 저에게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은혜의 사건임에 감사드립니다. 잘 먹고 잘 사는 행복의 가치관을 넘어 세상의 기준과 구별된 거룩의 삶을 살아나내는 값비싼 은혜를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저 같은 죄인을 불러주시고 자녀 삼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 고통을 참고 견뎌주신 은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