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4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요16:16~24
16 조금 있으며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나를 보시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도저히 알아 듣지 못하는 제자의 마음이 완전 공감이 됩니다. 나를 보지 못하고 또 나를 본다는 말을 이 상황에서 이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뛰어 넘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나에게 유효한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말씀하시지만 이 시대 제자들은 도무지 그 의미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그때의 기록을 말씀을 통해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내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보면서 근심하기도 하고 또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어제 늦은 시간 잠이 들었음에도 오늘 새벽 알람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습니다. 전날 아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잠이 들었는데 아들의 염려를 한 탓인지 이른 시간 눈이 떠졌습니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일찍 자는 것과 잘 자는 것을 적용하고 있음에도 걱정을 하다보면 잠을 설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잠에서 깬 후 여유있는 시간에 아들에게 제빵이나 바리스타를 준비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들 방에 들어가 기도를 하려고 보니 날을 꼬박 샌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들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나와서 목사님의 365일 기도문을 적은 뒤 학원을 알아보려고 폰을 들었다가 다시 뉴스 기사에 눈을 돌렸습니다.
30분을 훌쩍 지나서여 나의 세상 중독에서 눈을 떼고 다시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되리라' 는 말씀이 오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왔습니다.
뭐 하나 부족할 것 없는 나는 자녀 고난이 아니면 세상에 떠내려가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인데 두 아들이 여전히 수고해 주고 있어서 날마다 말씀 안에 거하는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루 속히 정신을 차리고 오직 예수, 오직 주님께 맡기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내가 너무 더디 가니 아이들이 그만큼 수고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듣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고난 뒤에 다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기쁨을 주시면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또 그 영광을 받아 지금까지도 예수님의 제자의 이름이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다.
겨우 묵상을 하고 나를 위한 기도만 했던 내가 교회 안에서 들려주는 말씀을 주야로 듣기를 원하고, 말씀 묵상을 나누고, 남편과 저녁 예배를 드리며 부족한 모습으로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짧은 시간 몇 단계를 상승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더 빨리 더 껑충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니 기쁨과 감사보다 불안과 염려가 올라오는 나의 성품을 보고 있습니다.
언제나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소유하기 위해 달려온 나의 성품이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며 그 성품은 나를 불안하게 하는 사탄에 먹잇감으로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알아 듣지 못한 제자들에게 십자가 부활 승천을 말씀 해주시고 또 예수 이름으로 구하는 것에 대한 응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고 지금은 너희가 알지 못하나 내가 부활, 승천한 이후에는 나의 이름으로 구하면 응답을 주시고 온갖 고난과 핍박에도 두려움보다 기쁨으로 충만하기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그 헌신으로 말미암아 바울과 같은 사람이 태어났고 또 바울에 의해서 유럽과 소아시아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때의 모습으로 지금 우리 가정에도 방문하고 계십니다. 무기력으로 각종 미디어에 묶인자로 살아가는 아들 고난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비하면 견줄바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작은 근심조차도 도리어 기쁨이 되신다고 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날마다내 인생이 줄 것만 있는 인생으로 채워져서 누워만 있는 아들을 일어나 걸을 수 있게 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와 사망의 늪에서 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소망을 바라보며 먼저 말씀을 듣는 내가 모든 시험과 악을 이겨내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적용)
나의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겠습니다.
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수일을 유하는 적용을 하며 성령의 찬송을 부르며 나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