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9 계명을 지키는 사랑 요14:15~24
예수님은 떠나신 후 보혜사 성령님이 제자들과 함께 한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면서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신 다(23절)는 말씀을 주십니다.
제자들은 이후 예수님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누군가 나를 책임져준다는 말에 위로와 안심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보혜사 = 바로 곁에서 도움을 주고자 부름 받은자라고 합니다. 내가 날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길 소망하는 것은 인간인 나의 모습은 너무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이기에 그렇습니다. 며칠 간 개인적인 욕심이 성령님의 마음보다 앞서는 시가을 보내면서 아직도 내 안에 나를 내려놓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보고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이 강해지면 성령님보다 내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고 그렇게 되는 경우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내기보다 탐욕과 자기 의가 충만한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질을 깨달고 욕심을 정리한 후에 얻는 자유함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평안과 사랑입니다. 이런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삶이 진정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정치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초등학교 시절 한반에 23명 밖에 없었지만, 선생님과 친구들과 많은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그때 서로 열띤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선생님과 친구들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선생님은 어디서든 당당하게 발표할 수 있도록 발표를 많이 시켰고 학급 임원을 뽑을 때도 설득과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저는 그때도 내 열심으로 또 나보다 얼굴이 예쁘고 말도잘하는 친구를 엄청 부러워하기도 시기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시절 나는 검판사가 되는게 꿈이었고, 한 친구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는데 선생님께서 정치인은 바람을 많이 타니 하면 안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이후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큰오빠와 시사저널을 보면서 정치 이슈등을 이야기 하였으니 나름 정치 분야에 참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 된 이후로는 정치가 곧 삶과도 연결이 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여전히 정치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다음세대를 기도할 때마다 나라에 대한 기도를 하게되고 또 그 기도 가운데 정치 분야는 빠지지 않는 기도제목입니다.
나의 기도와는 너무 다른 작금의 현실 속에서 저는 지속적으로 그 이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꼭 이렇게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왜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지 답답하다고면 느끼며 많은 시간을 뉴스에 관심을 보이며 그 시간에 기도를 더 해야 하는데 그 또한 잘 안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성령님은 뒷전이고 내 생각이 앞서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남편과 예배시간에 이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힘들어 하는 나에게 '가롯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도 그러 상황이다 당신이 그렇게 힘들어 한들 아무 유익이 되지않다'며 구속사적 해석을 해 주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 어느 때까지 입니까?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하실 겁니까? 부르짖고 있지만 성령님의 뜻과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아직도 내 감정에 너무 충실한 나에게 '나의 바로 곁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고자 기다리시는 성령님'을 생각하며 내 감정보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실 일을 기대하며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원하는 시는 것이 무엇인지? 성령님은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예수님은 부활 승천으로 본을 보이시며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는데 아직도 성령님은 모르고 예수님이 내 곁에서 기적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죄를 회개합니다.
내 감정 내 생각보다 앞서 가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며 잠잠히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지금 성령님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잠잠히 묻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적용)오늘은뉴스를 보지 않고 말씀과 기도에 더 집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