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자와 순교자/딤후1:9~18 사디스트는 때리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메조키스트는 맞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요샌 알 권리라는 무기를 이용해서 자기네들 원하는 상대를 때리는 쪽이 언론이라면
동네 북 신세인 대중은 메조키스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로마시대의 원형 경기장도 검투사끼리 싸우게 한다거나 살아있는 사람을 사잣밥이 되게
해놓고 그것을 즐겼던 대표적인 사디즘(sadism)의 예가 아닙니까,
뭐,지옥 갈 각오로 즐기는 사디스트들이야 자기네들 유희라지만 이들에 의해 희생된
기독교인들은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운 부분입니다.
그런데 여기 세기의 메조키스트 바울이 차가운 로마 감옥에서 관제가 된 마당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복음은 생명의 약속이고 이 생명은 고난을 통해서만 잉태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고난을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부활)이 아니면 절대로 고난을 감당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나도 이제는 정녕 고난을 즐기는 메조키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 가게 하시는 일에 예수를 고난으로 온전케 하셨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대부분의 사람들은 넓은 길을 가기 때문에 오네시보로의 길을 가는 사람은 늘
소수이지만 그러나 그 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인식하며 살겠습니다.
내가 생명의 약속 가운데 분명히 서 있지 않으면 직장 속에서 상사들과 부딪힐 힘도,
가정 가운데 선한 싸움을 싸울 명분도 없사오니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 생명의 약속을 붙잡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기꺼이 고난을 받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생명에 이르는 길이 죽음이며 영광에 이르는 길이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2005.9.2/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