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인생
작성자명 [이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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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9.01
얼마 전, 효석 집사님께서 저희 집을 문병차 오셨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건강했다면 불같은 열정에 사로잡혀 입에 담기도 어려운 신학적 여러 이야기들을
나열하며 열띤 토론의 장을 벌였을 집사님의 방문이, 아주 다행히도 제가 많이 힘들고
아픈고로 그냥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럴 땐 아픈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한 일인지..
왜냐면 말 한마디 했다간 저의 얄팍한 신앙의 껍질이 메마른 밭이 뜨거운 볕에
짜~~악 갈라지듯이 사방팔방으로 갈라져 하마트면 조금이나마 저에 대해 갖고 있는
좋은 감정들이 우르르르 벗겨질 뻔 했으니까요.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다 함께 오신 정아 집사님과 서로 돌아가며 인도함 받는 대로
기도하자는 아주 창조적인 제안을 하셔서 우리는 한마디씩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기도하며 서로를 축복하였습니다.
마직막 부분, 저를 방문하여 주신 두 분 집사님을 축복하면서 유언아닌 유언과 같은
당부의 기도를 하였는데. 제 기도를 받은 효석 집사님은 기도 중에 저의 기도를 마치
노사도의 유언을 듣는 듯하다는 표현을 하셨는데 얼마나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는지 모릅니다.
저를 높이 봐주셔서 아무 보잘 것 없는 기도에도 가슴 깊은 성도의 사랑의 교감을 느끼게
해 주신 성령님은 우리의 지식 있다고 하는 어떤 자랑거리도 초월하여, 하나님의 세계는
생명의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어떤 신학적 이론과 지식,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모든 것을 넘어서서,
생명의 희열과 기쁨 앞에 우리의 무릎을 꿇게 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지.
마직막 옥중 서신이지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정리하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제 걸어가는
복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생의 끄트머리에서 가장 말하고 싶고 남기고 싶은 속 깊은
이야기들을 유언하고 있는 노 사도 바울을 만납니다.
히스기야도 그랬고, 바울도 항상 제가 위기에 있을 때마다 하나님은 만나게 하여 주십니다.
그들을 통하여 위로도 하여 주시고 도전도 하여 주시고, 다시 한번 긴장하게 하십니다.
어떤 분은 요즘의 저를 보시고 어쩌면 마지막 고비가 아닐까 하신답니다.
맞습니다. 고비이긴 틀림없는 고비입니다.
좋아졌다 해서 마음 놓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벌어지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며 살아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제 모습이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죽어가는 주제에 무슨 말이 그렇게 구구절절
많냐고 타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래서 널 사랑하는 하나님이 그렇게 널 사랑해서 암으로 죽게 하냐?
실제로, 복내에서 함께 생활 한 어떤 권사님은 남편 되시는 장로님이 동네 면장님까지 하시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는데 결국 암으로 죽는다는 말을 들을까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도 싫다고 하셨습니다.
남편이 죽는 것 보다도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부끄럽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 좋다고 자부하는 권사님이신데, 전 그 얘기를 듣고 야, 저것이 우리 모두의
믿음의 현주소일까 제 자신을 돌아봐야 했습니다.
저는 끝까지 제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질그릇과 같은 제 속에 계셔서 날마다 부족한 저를 통하여 자신의 살아계심을 계시해 주시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시는 주님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랑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암때문에 고난 받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 이런 암도 쓰임 받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 안의 바울이 다시 살아나기를..그래서 디모데와 같은 생명을 꽃 피우는 자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