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7 주일예배 '성령의 견고함' (사도행전 15:36-41) 김양재목사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기도: 주님! 우리가 얼마나 무너질때가 많은지 모릅니다. 정말 견고 했으면 좋겠는데 ...오늘 성령의 견고함을 주신다고 하오니 성령의 견고함을 알고 싶고, 받고 싶습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초대교회가 할례와 율법 문제로 유대인교회와 이방인교회 두개로 쪼개질뻔 했지만 성령의 결정으로 그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좋은 결정을 했으니까 룰루랄라하고 앞길이 뻥 뚫렸으면 좋겠는데...아~ 글쎄 오늘 본문을 보니까 그렇지가 않네요. 가장 큰 갈등 상황이 기다리고있습니다. 그러나 갈등 충만은 성령 충만이라고 한 것처럼 그 갈등은 우리성도를 또 견고케합니다. 찰싹거리는 파도를 지나야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깊은 바다로 들어갈수록 어떤 상황에도 요동함이 없게 됩니다. 오늘은 성령의 견고함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첫)끊임없는 형제의식의 돌봄입니다.(뭐가요?성령의 견고함이..)
35절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안디옥교회가 할례문제 때문에 흔들리고 있었잖아요. 많은 이방인들을 전도하고 세계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여러 교회를 세우기도 했는데... 율법주의자들의 거센 공격을 받아가지고 그 기초부터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지켜야할지, 아니면 이단될 것을 감수하고 무시해야 할지, 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지요.
지난주 32절과 오늘 41절의' 견고하게 하다'는 말랑말랑한 것을 딱딱하게 만들다는 의미가 아니라 흔들리는 것을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키다는 뜻이다. 기대거나 붙어 있을 지지대가 없어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을 튼튼한 지지대에 딱 붙이는 것이다.딱풀!! 그래서 이 흔들림을 멈추게 한 지지대가 바로31절부터에 그 유다와 실라가 전한 위로와 권면의 말씀이었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들리면 마구 흔들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치않고 중심을 잡을 수가 있어요. 돈과 환경이 아니고 말씀이 들리면...
그래서바울과 바나바도 유다와 실라가 말씀을 전한 그여세를 몰아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명의 자리를 찾아서 거기서 유하며 반짝반짝 사명의 자리를 닦아서 주의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했습니다.그러면 이렇게 말씀을 전할때, 말씀이 들릴때, 제대로 들릴 때, 나타나는 현상은 계속 강조하는 그 형제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36절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안디옥교회를 말씀 안에서 뿌리내리고 자라게 하는 일에 전념하던 중에 1차전도여행때 말씀을 전했던 형제들을 다시 가서 돌아보자고 바울이 제안을 했습니다. 여기서 며칠 후에는 길어야 2-3달 밖에 안되는 이기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이후 사도바울이 잠시도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보내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매진하였음을 보여주고자하는 이 의미도 지닙니다. 안디옥에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지요. 그때 성령이 강권적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1차선교여행을 보내셨었어요.
근데 이제 2차때는 뭐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냥 성령이 보내셨다기보다 자신이 전도한 형제들을 그냥 다시 돌아보자라는 소박한 생각으로 떠난 거에요. 이런 형제의식이 참으로 견고함인 것 같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성령의 역사이긴 하지만 소박하게 떠났던 형제의식이 대단한 유럽전도를 가져왔잖아요. 지나고보면 항상형제를 돌아보는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늘 계속해서 형제의식이 나옵니다!. 형제의식을 말하지만... 머리로는 알겠지만... 가슴으로 내려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형제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같아요. 설교를 아무리 해도 형제의식 때문에 하는것이고 교회나오는 목적이 형제의식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떨 때 가장 요동하나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요동하지요. 가족에도 그렇고 목장,회사,전부다... 그런데 그 관계가 편안해지는 것이에요. 성령의 결정을 하면은 주시는 축복이 바로 이 형제의식의 축복입니다.
왕왕~ 목사가 설교만 잘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요. 자~ 우리가 지나봤지만 유대인 회당장들 얼마나 설교 잘했겠어요!?. 그들도 자기들끼리의 형제의식은 대단합니다. 끼리끼리... 그런데 바울에게 항상 있는 형제의식은 이방인도 형제고, 유대인도 형제고, 전도한자도 형제입니다. 이런 형제의식이 참으로 진정한 형제의식이고 사람을 견고케 하는 것 같아요! 이 형제의식 때문에 그는 편지에서도 성도를 직접 방문하고싶은 마음을 종종 표현했어요. 로마서,고린도전서,데살로니가전서등에서... 이미 1차여행에서도 그는 성도들을 심방하기 위해 더 짧고, 편한 귀향길을 마다하고 토로스산백을 다시 돌아온, 그 온 길을 그대로 따라 돌아왔지요.
이방인 성도의 할례 논쟁으로 시작된 갈등이 성령의 결정으로 해소되었지만 실제로 이미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는 곳이니까~ 할례주의자들의 공격이 얼마나 큰 위협이 될지 뻔했기 때문에... 공격이 시작된 안디옥, 루스드라, 이고니온등의 상황을 매우 염려해서 예루살렘교회에서 보낸 편지를 빨리 갔다주고 싶은 것이에요. 그런 마음이 있지요. 그는 안디옥으로 돌아와서 아주 안정된 사역자가되었어요. 선교도 성공했고 ... 예루살렘교회에서.... 인정도 받았고... 이렇게 완전히 안정된 곳을 딱 내려놓고 이 형제들을 돌아보고자 한 것이죠. 저는 이것이 견고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제안하는 이 재방문은 15장 14절에 나왔던 그 돌보심이에요. ' 파카드'라고 그랬죠!제가...또 헬라어로는 '에피스케토마이'라고했어요. 성령의 결정에 따라 이방인을 괴롭히려 했던 죄에서 돌이켜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다시 이방인에게로 향하는 이 교회의 적용을 바울이 대표해서 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수 있습니다.여기 부정과거를 썼는데... 아주 결정에 단번에 따르기로 결단을 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항상 구원에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이게...구원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람은 형제의식이 있을수밖에 없어요. 형제의식이 없다면 돌봄이라는 것이 자기 의가 되고 맘니다.그러니까 돌봐도 형제의식이 없으면은 무섭잖아요. 유대인들 형제 잘 돌보겠죠!. 그런데 진짜 이런 형제의식이 없어요. 끼리끼리는 있어도... 형제의식하고 끼리끼리는 다른 것 같아요. 형제하면은 베드로와 야고보의 '형제들아!' 이 간증을 여러분들 늘 기억하시고 다시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적용:거친 파도가 와도 날 견고하게 하는 것은 형제 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정되세요?
이번 주간에는 형제의식이 안된다는 이 목자님들 나눔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물론 되는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지요.
자~ 어떤 평원님은 남편이 바람피우고 감옥갔을 때 가장 회개한 것이 공동체를 무시한 것이었다는... 이 간증에서 그때는 자기가 부자고 S대를 나왔기땜에 공동체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하셨어요. 또 어떤목자님은
목장을 오래하다보니까 이 반복되는 질문과 끝이없는 나눔이 힘들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지겹다. 그러니까 한 마음이 안된다 형제의식이 부족한거죠!
또 어떤 목자님은 제 입장에서보면 은혜를 주는 목원들은 같이가고싶다.그런데 세속적이고 이기적으로 잘나갈때는 안 나오다가, 발길을 끊다가 아쉬울땐 목장에 나와서 그것도 자기말만하고 목장지체들의 말은 듣지 않는 사람들과 형제의식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매주 목장예배드리지만 은혜도 안되고... 힘들기만하다. 목자들이 주로 이런 나눔 합니다.
그러니까 나눔중에 화가 치밀어 아내와 아이들을 힘들게한다. 합방은 했으나 부부관계가 안된다. 또 관계성이 떨어져 직장그만두고 혼자 일한다. 이런 나눔을 들을때 애통함과 정죄감으로 왜 그게 안될까?가되니까 그럼 나눔의 공감이 안된다는 뜻이잖아요. 이런분도 계시고... 또한 목자님은 목자부부가 싸우는 형제진행형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늘 해결 된 모습만 보여주고싶어한다.그러니까 아내가 자기를 고발하려고 할때 말하지 말라고 찍어누른다는거에요. 쫙~악~
또 어떤 목원이 우리목장은 재미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그러니 옆에서 권찰이 맞아요 우리목자님 재미없어요amprsquo 해서 약간 농담을 하니까 여기가 사회 계모임이에요? 농담을 하니까 왜 농담을 하시고 그래요.?! 이랬다는거죠!. 그러니까 평원도,목자도 목원도, 다들 힘이 듭니다. 이런 형제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돌보기가 쉽겠습니까? 그래서 성령의 견고함으로 나가지 않으면 그냥 말한마디에 우리가 무너집니다. 이세상 어떤 모임에서 밥해가며 듣기싫은 얘기를 들어주고 기다리겠습니까?. 서로가 다 돌봄의 대상이다. 먼저 와서 목자되셨지~ 이 형제의식이 없으면 하루도 힘든 것이 공동체인것이죠. 그러나 그럼 목장이 필요없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믿으면 가장 결론이 형제의식이기 때문에 형제의식이 가장 발표되는 곳이 목장이잖아요. 표현되고... 이 목장에 붙어있는 것 때문에 주시는 축복은 아주대대손손 내려갈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변소청소 외에( 고학력자가) 늘 구역예배를 드리면서 떡을 했어요.시루떡...그리고는 맨날 먹고, 싸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 당시는 떡이 대단해요.그죠!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니까 그리고는 남의집에 가서 빨래를 해주셨어요.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니..우리엄마가 당연히 무시가되죠. 그렇게 맨날 빨래나해주고 변소청소나 하니까 그것 때문에 제가 지금 여기 서 있다고 생각이 되네요. 그러겠죠?!.
그러나 여러분이 뚝 까놓고 세상모임에 가면 이런 영향가 있는 나눔을 어디서 하시겠습니까? 이 목장은 천국공동체이기 때문에 인내도 연습하고, 말하기도 연습하고, 듣는연습도하는, 최고의 훈련장소입니다. 그래서 사실 세상에서도 이런 훈련하면 축복받을수 밖에 없어요. 우리청년부에서 늘 나눔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 훈련을 했기 때문에 지금 결혼하고 아무도 이혼을 안 하는거에요!. 지금 18년이 되었는데 청년부가 이혼 하나도 안 한다는게 말이되요. 근데 청년부에서 늘 나누는 훈련을 하니까 한마디를 해도 잘 들어내요.
바람한번피면 이혼하고, 한번 시어머니하고 싸움하면 이혼하고... 이래요. 요새 햇가족시대가 되어서... 우리가 이렇게 목장이 축복의 근원입니다!. 어머니는 저를 못보고 가셨지만은 딸인 제가 사명자가되어서 지금 걸어가잖아요. 그러므로 이런
진정한 이런 형제의식은 당대라도, 후손으로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섬김을 손톰만한 것도 다 기억하십니다.그런데 이제 그렇게 지겨워하고 그러면 기억할 손톰이 없어지잖아요. 그러니까 반드시 하나님은 다 기억하세요. 생색내지마세요!. 하나님이 다 기억하세요!. 할렐루야!!
적용:여러분은 목장에서 어떤 목자이고 어떤 목원인지 서로서로 나눠보세요.
그런 이야기를 잘 드러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듣기 싫어하고 사랑이 없다고 이러시면 안되는데....그건 다른 이야기로하면 나는 늘 돌보고 있습니까? 돌봄을 받고만 있습니까?
그러니까 편한 이야기를 할수있어야 되잖아요.
제가 초원님이 어떤 나눔에... 있어서...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드렸는데... 초원님이 저에게 그렇게 답장을 보냈어요. '제가 편한 사람이 못되서 이렇게 좋은 이야기만 쓰셨나보다고'... '제가 편한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까.... 칭찬을 해 주면 우리는 다 불안한거에요.
그만큼 이제 양육이 되신거죠! 형제의식이 생겼어요. 아무이야기나 편하게 할수가 있어야되는데...' 와~ 수준이 되셨구나!!' 생각하는데...여러분들은 수준이 약해서...맨날 조끄만 이야기하면 어떻게 여기는 사랑이 없냐? ...그것은 조끔 편하면 이야기한다는거고, 맨날 좋은 이야기만 해 주면 불편하다 이 뜻이에요!!. 이걸 잘 기억 해 주시기 바람니다.
그럼 집에가서 생각 해 보세요. 나는.... 늘 나에게 칭찬만하나? 다다다다하면 수준이 된거고... 칭찬만하면 아직 멀었다는 이런 뜻이에요!. 그리고 회개하시기 바래요. 성령의 견고함은 끊임없는 형제의식의 돌봄이고....
둘)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37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가자고하니까 바나바도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가기로 했어요.근데 문제가 생겼어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는거에요.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 출신이에요 . 예수님도 보고, 열두사도를 보고,베드로도보고, 바울도보고, 영적육적으로 다이아몬드수저에요.게다가 그냥 바나바의 생질이라고도하고 사촌동생이라고도하고
조카... 그래서 바나바가 혈육이죠. 많이 아꼈겠죠! 그런데 마가를 잘 세워주는 것이 교회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 했을 거에요. 해서 1차여행때도 데리고갔었죠.
하지만 마가는 토로스 산맥을 앞에 두고 밤빌리아 버가에서 힘들다고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비시디아안디옥 이고니아, 루스드라, 더베등에 세운 교회는 구경도 못했어요. 돌아가는 순간에는 나 힘들어~ 못해 못해...한발자국도 못가~ 누가 뭐라고해도 난 돌아갈거야!! 그때 얼마나 바울이 치밀었겠어요. 근데 예루살렘에 가서는 좀 부끄러웠겠지요? 그래가지고 그게 걸림이 되었을 거에요. 이 마음을 충분히 헤아렸을 바나바는 바울의 제안을 받자마자 마가를 생각했에요. 야~ 마가를 데리고가서 이 수치를 빨리 다 씻어주자!! 그래서 마가를 데려가자고...그런데 바울이 반대하는거에요. .
38절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바울은 마가가 밤빌리아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일을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일,그래서 함께 일하러 가지 않은 일로 평가를 합니다. 바울이 판단하기에 마가의 중도포기는 자신들을 배신한것 뿐만 아니라 이방선교의 사명도 배신한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한 것이죠. 한번 배신한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바울에게는 옳지않은 일이라고 지금 언급을 하고 있지요.
단순히 옳고그름으로 판단했다기보다는 이번 여행을 아주 심각하고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인데요. 그 지역은 유대주의자들의 공격으로 얼마나 휘청거릴지 알기때문에 이때 언제든 포기하고 돌아갈 수 있는 마가를 데리고 갈 수 없는거에요. 그것도 많지도 않고 한명 데리고 가는데... 마가를 데리고 가면 되겠는가? 여러분은 이때 바울편을 들겠어요? 바나바편을 들겠어요? 바울손들어봐요?! 바나바 손들어봐요? 마가를 데리고가야 된다.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한번의 기회를 더 주어야한다. 바나바손들어요!?또 바울손들어봐요!?
바울의 가차없는 거절과 바나바의 맹목적인 애정이 충돌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하여튼 둘의 차이가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큰 차이인데... 이럴때는 원어로 살펴봐야해요. 왜냐하면 똑 같이 데리고 간다고하니까 바울도 똑 같이 데리고 간다는데.. 살펴보니까 누가의 뛰어난 문학적 자질을 발견할수 있었는데요. 37절에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가고는 부정과거 부정법이에요. 이것은 단회적으로 즉시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생각했고... 데리고 가고자 한 것은 미완료이기 때문에 그걸 바울에게 계속 지속적으로 말했다는 거에요.
전도여행을 끝까지 할 만한 사람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그 조카에게 한 번 더 기회 주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죠. 한번 기회주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다는거에요.
그런데 38절의 바울이 같이 데리고 가는 것은... 바나바는 과건데 여기는 현재부정법인거에요. 현재부정법은 지속적인 행위로 같이 데리고 다니는 것을 말하는데요. 한번 데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명의 일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다니는 것을 중요하게 보는 것이에요. 이것이 바나바와 바울의 큰 차이중에 하나이다. 바나바에게 있어서는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은 단지 한번 데리고 다닌다는 정도의 별수롭지 않은 문제였지만은 데리고 가는 것은 끈질기게 요구한 것이다.
그것은 사실은 마가보다는 자기의 체면이 더 중요하다고 할수 있지요. 근데 바울에게 있어서 마가를 데리고 가야하는 일은 끝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우리 지난번에 19절처럼 현재부정사가 괴롭히는 것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한 것처럼 신뢰감이 없는 사람과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부딪혀야한다는 이부담감을 안겨주는 문제라고 생각한 것을 시제의 차이를 통해서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을 져야하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사역을 해야하니까 그래서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정도가 아니고 절대로 안된다는 확고한 생각으로 표현을 했고요. 바나바는 한번 데리고 가보지뭐~ 그렇지만 데리고 가자고한거 이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한거에요.
제가 요즘 사도행전에 들어오니까 스토리가 쫙 있는 것도 아니고 신약이 어렵다고 했잖아요. 게서 원어를 많이 인용해서 죄송합니다만 저자의 뜻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할 때가 있어요. 똑 같이 데리고 갔는데.... 그래서 이럴때는 찾아 봐야 되잖아요.
그러나 제가 원어를 모를때도 사도행전 전체를 한절씩 묵상을 하니까 앞뒤문맥을 따라서 제가 묵상했던 것이 맞았다!!가 원어에 결론이에요.항상... 여러분 원어를 몰라도 옛날에 사도행전 큐티 했을때 똑 같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전에 들으신 분들은 기억이 나실거에요.제가 그냥 원어만 읊어대는거죠!
바나바의 원함과 바울의 판단의 충돌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마가의 행동에 대한 평가의 근거로 판단을 내렸지만 바나바는 이 조카라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원함을 말하고 있는거에요. 바나바는 감성으로... 바울은 이성으로...바나바는 정으로...바울은 구원의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니까 이게 좁혀질수가 없는거에요. 가족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고싶은 바나바는 이 마가의 객관적 행위에 대한 평가를 내놓으며 거절하는 바울이 너무 섭섭한 거에요. 반대로 이 구속사의 귀한 사역을 위해 최대한 믿을만한 사람을 데리고가야한다는 이 이성적 판단이 너무도 당연한 바울은 혈연에 얽매어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바나바에게 실망한 것 같아요!.그래서......
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갔네요. 이방인들의 눈에도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보일 정도로 환상의 팀 사역을 했고 단짝이었던 두 사람이 심히 다투어 결국 갈라섭니다. 사실 두사람의 갈등은 이미 유대인과 이방인사이에 생긴 갈등에서 시작되었다고 했어요. 7절에 베드로의 형제들아 간증에서 보았지만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은 안디옥에 온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다가 유대주의자들이 오자 그들을 두려워하여 이방인과 안 어울린 척 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 때 바나바도 그 외식에 유혹되었다고 했습니다.
..장11,13절이야기인데 ... 그래서 바울은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을 했습니다.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은사도 몰라보고 저럴수가 있나 이러겠지요?. 그런데 11절에 그렇게 책망하고 바로 이어지는 20절에 바울이 어떤 고백을 하냐하면 이 고백을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런 믿음과 주님께 대한 사랑이있었기 때문에 베드로를 책망 할수 있었던 것이고 오직 예수위해 사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런 혈연하면... 복음을 전파되는데 안되잖아요.그죠!! 이게 인본적으로 베드로를 책망한게 아니라는거에요. 그리고 그때도 바울이 바나바에 직접 뭐라고하지 않았어도 그 상황에서 바나바도 유혹되었느니라하니까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가졌겠지요.그죠? 베드로를 책망했으니까
그러니 바울이 보기에 바나바는 자기와 함께.. 아니~ 이방선교까지 같이 갔다 온 선교사인데 ... 어떻게 저렇게 베드로를 따라 외식을 하나? 마음이 안좋았겠지요. 그러나 바나바가 보기에 바울은 자신이 추천해서 교회로 데리고 온 사람인데 ... 아니 자기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했을터인데....어떻게 자신의 행위를 비판할 수 있나 원망스러웠을 것 같아요. 바울이 그럼 여기는 원칙주의자 같습니까? 바울이 정확한 성격이라서 이렇습니까? 복음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그에 비해 정이 중요한 바나바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안좋게 되었고 이러한 갈등이 있다가 마가를 두고 터~진 거죠.
인본적으로 생각하면 두 사람의 이런 갈라섬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죠!. 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목숨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한 두 사람이 결국 싸우고 갈라선 이 사건은요. 기복적인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해석이 안되는 일이에요.
여러분들은 아ㅜ 난 바나바가 마음에 들어~ 바울이 마음에 들어~ 이런 이야기 100번해도 이걸 구속사적으로 차례차례 읽어가야 되는거에요. 여러분의 이혼도, 아이들사건도, 회사도, 구속사적으로 읽지 않으면 해석이 안돼!! 억울하고 분해서 살수가 없어!! 그래서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잘 읽어야 하는거에요.
구속사적으로 본다면 이 갈라섬의 사건은 두 사람에게 특별히, 이제 이 이방선교를 이어가야하는 바울에게는 반드시 있어야만하는 사건입니다. 바울이 사람을 전혀 의지하지 않도록 일어난 사건이에요.
우리가 함께 살펴보았지만... 바울은 참 외로웠어요. 누구보다도 유대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유대교에 대한 열심이 있던 사람인데 ... 이제 그 유대인에게 시기와 미움을 온몸으로 받고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뻔하기까지했죠. 유대인들이 죽일려고 했잖아요.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바나바가 유일한 친구에요. 바나바가 있었기에 예루살렘 교회에 들어올수도 있었고 또 바나바가 있었기에 안디옥에서도 사역을 할수 있었고 또 바나바가 옆에서 편이되어주고 위로 해 주는 바나바가 없었다면 1차전도 여행도 할 수 없었을 거에요 그리고 이방인의 할례논쟁에서도 예루살렘교회에 호소할 수 있는 것은 바나바가 있기 때문에 .... 바나바없으면 이게 아무것도 안되는거잖아요.
그러니 아무리 강직한 바울이라도 저절로 바나바가 의지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뭘해도 나에게 돈주는 안 믿는 친정엄마, 시어머니 최고지! 그죠?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맨날 의지해요!! 때만되면... 못 내려놓죠! 근데 여기는 더군다나 같이 복음을 전하니까 그도 인간이기에 바나바에게 기대는 마음이 없을 수 없었을 거에요. 앞으로 구원사역을 통해서 바나바의 약점이 드러나는거에요.
그렇게 유대인, 이방인, 이 전쟁이 그렇게 치열한대도 외식을 했잖아요. 같이 밥 안 먹은 척했잖아요. 바나바가.... 게다가 또 이 마가 사건에서도 이렇게 인본적인 태도를 보이는 실수를 자꾸 하는거에요.바나바가...
저는 바나바의 성품의 크라이막스가 여기에서 이제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선 사건이 바나바나 사울이 사람을 의지하던 마음을 온전히 깨닫고 돌이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요. 이 갈라섬의 사건도 화가 아니라 복입니다.
이 갈라섬을 통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게 하셨어요. 따라서 사람을 의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성령께서 견고하게 하시는 성령의 견고입니다. 성령께서 가장 견고함하게하신... 이게 성령의 견고에요.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었다고하는데... 심히는 원문에 없고 그냥 결별했다는 뜻인데... 이 똑같은 단어가 히브리서 10장 24절에서는 사랑과 선행을 강하게 이르키는, 자극을 주는, 그말은 이렇게 다투고 헤어졌어도 결국은 사랑과 선행을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거에요. 심히다툼이...결국 그렇게되었지요.
이제 의도치 않았던 갈등으로 바나바는 정말 믿어지지도 않고 믿을수도 없지만은... 바울보다는 마가를 선택했어요.야~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 다음에는 아주 바나바가 딱 마가를 선택하자마자 자기 뜻대로...둘이 선교여행가야되는데... 조카 마가를 딱 데리고 자기 고향 구브로를 배를 타고 먼저 탁 떠납니다. 이방교회를 돌보자하는 사명대신 혈육과 고향 ...아~정말 지역감정이에요. 택했습니다.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고향이 있고 혈육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바나바가 이렇게 마가를 데리고 다니며 계속 양육했기때문에 그는 후에 다시 바울의 동역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마가복음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이렇게 배타고 떠나면서 사도행전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퇴장합니다. 예루살렘교회 초기에 밭을 팔아 헌금도하고, 좋은 성품으로 칭찬과 존경을 받으며 등장한 바나바가 아니에요~ 이어 안디옥 교회를 견고하게하는 일에도 크게 쓰임받았고 예루살렘,안디옥 500K,1000K 되는... 몇번이나 왔다갔다하면서 바울을 데리러가고... 야~ 그래서 바울과 함께 첫 이방선교 주역이었던 바나바가 이렇게 훌쩍 바울을 버리고 마가를 택했다는것이 이게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나 정말 별인생이 없다는겁니다. 이 세상은... 시종일관 인정받는 사역을 했다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정말 바나바는 하나님자리에 가지 않았을까싶어요. 왜냐하면 바울은 스데반을 죽인죄가 있잖아요!. 바나바는 아무리 생각해도 죄가 없어. 성품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ㅜ 인간성품의 최고의 크라이막스를 보여주었지만 역시 성품의 한계는 여기까지다.
적용:바나바처럼 바울처럼 내가 절대 의지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기준은 감정인가? 이성인가? 정입니까?구원입니까?
성령의 견고함은? 끊임없는 형제의식의 돌봄이고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하는 것이고
셋) 주의 은혜에 맡기는 것입니다.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이 견고하다는 이 단어는 신약에서 사도행전에서만 4번 나오는데... 그 중 지난주일에 32, 41절 두번이 15장에 나왔어요. 무얼생각했냐면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갈라선 이 일이 교회들을 견고케 하는 일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는데... 그런 것 같아요!. 과연 이 다툼은 세계적인 다툼이 되어서, 세계적인 견고함이 되어서, 세계적인 선교로 나가게 된것이죠!.
먼저 39절에 바나바가 그냥 마가를 데리고 떠났다. 갈라섰어요.! 갈라서자마자 그렇게 데리고 떠났어요. 그러니까 먼저 떠났으니까 바울도 40절에 사람이 없으니까 누군가를 택할 수 밖에 없는거잖아요. 누가가 썼지만은 ... 누가는 바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형제들이 주의 은혜에 부탁한 사람도 바나바가 아니고 바울이다.
바나바가 이 사건 이후에 누가의 기록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보아도 그렇지요. 그러니까 바울은 바나바가 떠났기 때문에 할수 없이 실라를 택하는거에요. 바울이 바나바와 갈라서는 사건을 통해서 사람을 의지하면은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선교의 사명은 홀로 감당할 순 없잖아요. 근데 하나님의 일이라면 사람을 준비시키세요. 바나바가 떠난 자리에 거기보니까 실라가 있는 거에요. 실라도 로마 시민이었는데요. 지난 주 성경에 34절 (없음)으로 되어있다.근데 그 밑에 난해주에보면 어떤 사본에는 실라는 그들과 함께 유하기로 작정하고amprsquo 가 있고 35절에는 바울과 바나바도 안디옥에서 유하였다... 같이 읽을 수가 있는거죠.
그러니까 아마도 유다와 실라가 같이 편지를 가지고 오는데... 이 실라는 바울에게 은혜를 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실라가 예루살렘 교회의 아주 인정받는 지도자잖아요. 그런데 그 자리를 딱 내려놓고 안디옥교회에 바울과 같이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유다는 돌아갔고요. 그러니까 이런 믿음이니까 바울의 짝으로 손색이 없어요. 그 당시 마가하고는 비교가 안되는거잖아요. 이 사람을 쓰겠다고 바울이 그런것이 아니잖아요. 바나바가 먼저 떠났기 때문에 ...그래서 실라를 택합니다.
야~ 주의 일은 하나님의뜻대로만하면 사람을 꼭 허락하시는구나~ 돈이 있고, 건물이 있어도 사람이 없으면 그냥 말짱 꽝~입니다. 우리들 교회 사람이 준비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 주의 은혜에 부탁하며 떠난 결과 바울은 여정에 있는 여러교회들을 심방하며 그들을 견고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1차선교여행이 구브로섬부터 출발했잖아요. 해서 거기로 출발해서 같이 돌아볼려고 했는데 바나바가 마음대로 먼저 떠났어요. 그래서 일정을 변경해서(지도보여줌) 바나바는 구브로로 떠났는데...바울은 안디옥교회에서 위에 길리기아와 수리아쪽 북쪽으로, 육로로 택해서 전도일정을 그쪽으로 간거에요. ... 구브로를 갔으니까 그러면서 일정을 변경해서 여러 교회들을 심방했습니다. 이걸찬찬히 읽어보니까 아~ 바나바가 완전히 감정적으로 움직였구나~ 이 생각이 드는거에요. 심히 다투자마자 마가를 데리고 쫙~ 떠나버렸잖아요. 마가 택한것도 그렇고 전도여행을 같이 가야 되잖아요. 그것도 안하고 자기가 물어보지도 않고...떠나고...
너무 착해보이지만 구원의 일은 이렇게 다른거에요. 정에 약하니까 감정적으로 이렇게 결정을 하는거죠. 너무 의지했던 바나바기때문에 이렇게까지나 해야 헤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정이 떨어져야 되잖아요. 바나바는 여기까지가 바울을 돕는 부르심의 사역으로 쓰임받았습니다. 은사인거에요. 그리고 바나바가 떠났다고 ... 바나바는 ...저기한사람입니까? 바나바와 베드로가 이 바울의 그릇을 못 담기때문에...그냥 저절로 하게 하신 것 같아요.
적용: 의지했던 사람과의 심한 다툼이 지나고 보니까 우리를 견고하게 한 일이 있습니까?
바울과 바나바 같은 사람도 다투는데 ... 내 다툼쯤이야하며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제가 원어를 이야기 해 주는 것은 그냥 우리가 읽어가는 묵상이 맞다!! 도장찍어주려고 한번씩 읽는 것이지 성경만 앞뒤로 차례,차례대로 다 읽으면 그냥 원어의 뜻이 다 들어와 있어요. 전체문맥을 통해서보면... 제가 그때 읽었던 것은 그 후에는 바나바가 등장하지 않기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은 바울의 사역을 이렇게 펼쳐지게 했기 때문에 이때 결정이 바울이 옳은 거다!! 그렇게 제가 그때 큐티강의를 했었죠! 그러므로 꼭 원어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일과, 인본적인 일은 정말 날마다 대결을 합니다. 근데 바울이 이렇게 열심히 구원의 일을 하는데 유대인들 중에 한명이 없는거에요. 그 한명이 바나바가 일당천을 해서 옆에 있었는데 드디어 바나바도 떠난것이잖아요. 복음을 전하는게 얼마나 외로운 길입니까? 바울이 전한 사람만 바울복음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럴때 좋은게 좋은거라고 그러면 안되는거에요. 이렇게 갔기 때문에 바울에게 엄청난 2차전도여행의 열매가 주렁주렁맺히게되는데 구원의 일에 자꾸나서서 인본적으로 이러고저로고 하면 될일도 안되잖아요.
이혼도 막아야 되겠는데... 전부 직분자들이 나서서 그~냥 이혼해도 된다. 불신결혼해도 된다. 동업해도 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대도 남녀가 차타는데 어떠냐? 요새가 어떤 시국인데... 그리고 술은 왜 먹지말라고 그러냐? 난 목장을 안 나가겠다. 뭐 이렇게 자꾸 그러면은 너무 뭐라 그러면은 그러시면 안되는데... 목장나간다고하면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되나? 이러잖아요. 목장을 나간다고하니 ...그럼 조끄만 잡수세요. 이렇게 되는거죠.그죠!? 그리고 어쩔수 없을 때는 차도 타세요. 이렇게되는거죠.
근데 요새 우리들교회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설교를 더 강력하게하는거지...그래도 우리들교회사람들은 그런 일 땜에 교회를 떠나고 그러시면 안되는거에요. 그냥 미리 보호하는 차원에서 그런 것을 지키라고하는데...바울과 바나바 성품이... 여기까지 올 정도로 그 성품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늘 이야기 했잖아요. 바나바는 고난이 없잖아요.고난이 늘...그러면 꼭 뽀록이 터지는 것이 아닌가 이것도 못 알아듣겠죠?
이번주일에는 아주 다툼을 계속한 나눔을 들려드리겠어요. 카톡나눔에 올라온 큐티나눔입니다. 여러분 목장에서 날마다 큐티나눔올리세요. 이게 너무 도움이 되요. 이거는 일반목장에 큐티나눔인데...
디모데전서 5장 오늘 말씀을 통해 천국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청년시절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서 신앙생활하게 된후 열심을 가지고 선교단체,유명교회에서 말씀 훈련도 받고 전도활동도 했습니다. 그러나 직업군인으로써 임관한후에(육사출신이에요.) 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교회를 전전했기 때문에 영적공급을 받지 못해가지고 영육간에 타락의 길을 걷게되었습니다. 결국 결혼 13년만에 아내가 우울증으로 투신자살해 가지고 해달별이 떨어지는 심판의 철퇴를 맞게되어가지고 다시 회복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 후 재혼하고 우리들교회 정착하게되어 천국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아내 자녀 모두 목자가 되는 상급도 주셨는데요. 군대 전역 후에 이 군인들이 할 것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교회에서 성전 문지기 경비직을 하게 될 기회를 주었는데... 6개월간 일을 하다가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던 저는 교회에 대하여 불평불만하며 교만을 떨어 교회에서 짤리게 되었습니다(우리들교회). 그래서 목자직에서도 치리받게되어 부목자로 강등되었습니다.
교회 경비직에서 짤리면서 마음속에 쓴뿌리가 생겨 교회에 대한 원한과 미움으로 목사님과 운영위원들에대한 저주를 퍼부으며 불평불만을 하였고 다른교회로 가고자 했습니다. 초원지기와도 싸우고 마을지기와도 싸우고 여러 갈등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떠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붙어만 있어도 은혜라더니 그렇게 교회와 목사님을 욕하고 독설을 퍼부었음에도 떠나지 않고 있고 천국공동체에 속해 있으니 아~드디어 불평불만이 사그러들고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배우는 기회가 되었고 이제는 내 죄를 먼저 보게되는 하나님의 할량없는 많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많은 정욕의 죄와 유부녀와의 불륜의 죄를 지었지만 다른 성도님들의 간증과 하나님의 사랑의 매를 맞으며 다시 회복되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얼마나 이 천국공동체가 중요한지 깨닫게 되고 축복의 통로인 것을 아주 깊이 깨닫고 끝까지 남아 있으면서 하나님 사명을 조금이나마 감당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온라인예배를 핑계대고 골프를 치러다니는 것이 마음에 찔리기는 합니다.아니~ 무슨 돈이 있어서 ...골프치러다니시나요? 그것이 알고 싶어요.!?
이 집사님은 청년부 때 육사를 다니면서 제 큐티모임에 왔다고요.그런데 선교단체 어쩌고 저쩌구하는데 큐티하고 적용하라고하면 완전히 삼천포같은 소리를 하면서 ... 아프리카 선교가야지 적용이 무슨적용입니까하면서 굉장히 경건하게 맨날 ...부모님 효도하고 ...그날 본문하고 상관없는 말만해서 절벽같더라고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파도를 많이 넘고, 넘어야 견고하게되는거에요.
아프리카선교 부르짖는 사람이 지금보니 문란하지 않아요?! 죄짓는 사람들이 더 경건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랬는데도 그때 왔기 땜에 안 떠난것 같아요. 얼마나 나를 좋아했는지 육사 졸업 반지를 저에게 주셨어요. 은반지에다가 빨강루비... 나 지금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대도 돌고 돌고 돌아가지고 이러더니 그래서 그나마 그 때 왔기 때문에 안 떠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금은 목자도 아니고 부목자,목원~ 다음주일에 얼굴을 뵙겠습니다.
=========================================================================================
말씀맺음: 성령의 견고함은 끊임없는 형제의식의 돌봄이 있어야한다고하죠.그리고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시는게 견고함이에요. 그래서 주의 은혜에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의 그 고백, 이 고백을 하면서 그 베드로를 책망을 했을 그 바울을 생각하니까 제가 막~ 주중에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게 사랑인데... 다들 욕할거 아니에요~ 어떻게 은사도,은인도 몰라보고 저럴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 바울의 고백을 찬양으로 불러보겠습니다.
찬양: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기도제목: 우리가 이 견고함이라는 것이 목에다 힘주는 것이 아니고요. 끊임없는 형제의식의 돌봄, 이게 가장 견고함, 그런 견고함이 있으면 어떤 사건이왔어도 여러분들이 요동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걸 위해 기도하시고~ 나는 돌봄을 받기보다 돌보는 사람이 되도록 ~ 어떤 이야기도 잘 들어내는 사람이 될수 있도록~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해 달라고~ 우리의 많은 다툼과 갈라섬이 우리를 견고케 해 달라고기도~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고 평등법이 통과되지 않기를~
기도: 주님! 성령의 견고함을 알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냥 누가 뭐라해도 날마다 우뚝 서 있는 것이 견고함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갈라서고 심히 다투고 하는 가운데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시고 형제의식이 굳건하게 자리잡는 것인것을 다시한번 알게 하십니다. 그러니 날마다 갈대같이 흔들리고 사람을 의지하며 형제의식이 부족한... 견고하지를 못합니다. 주님!! 저는 제가 정말 견고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오늘 우리 바나바가 평생의 주의 일을 했어도 견고하지 못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 위로가되지만 바울의 또 외로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주님이 부르셔서 그 길을 가는데... 참으로 자기고향사람 ...은 같이 주의 일을 했어도 자기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바울은 돌아갈 고향이 없습니다. 아무도 바울편에 서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같이 주의 일을하는데 갈곳이 다릅니다. 주님 참으로 바울과 바나바의 이 갈라섬이 세계선교를 가져왔듯이 내 옆에 바나바가 떠나도 옆에 실라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실라를 분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대단한거 비교하지 않게 도와주시고 형편없어 보이는 실라를 이제 견고함으로 분별하게 도와주시옵시고 그래서 우리들교회 우리들의 많은 적용들이 우리모든 교회들을 수리아와 길리기아의 교회들을 견고케한 것처럼 모두를, 모든교회들을 견고케하는 적용들이 될수있도록 주님 은혜내려주시옵소서 태아생명보호법과 평등법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아멘!!!
**********************************************************************************************************
느낀점: 1]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하는 것과 바울이 데리고 가는 것을 거절하는 차이를 알수가 없었는데... 원어를 가지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시니...... 스처지나가는 것이 있었지만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듣고 쓰고 듣고 쓰다보니........감이 와서 적어본다,
아들들이 결혼을 해서 방이 두개나 비어 있으니 환경적으로 예수 믿기 힘든늙으신 친정 부모님 서울 올라오시라고 바나바처럼 했다. 남편은 올라오셔도 2~3일이지 끝까지 모실의향이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바나바처럼 계속 지속적으로 올라오시기를 권하게되었다.
장애인 막내동생은 사랑부에 보내면 되고....... 친정부모님은 내가 시간여유도 있고 방도 있으니 얼마든지 모실수 있겠다 생각해서..... 재촉하게되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고......아버지가 하시는 말이 내가 가진것이있어서 그러냐? 여기 아들들이 있는데 내가 왜 가냐? 하시는데.....외딴 곳에서외롭게 살고 여러가지로 불편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또 재촉을 하게되었다. 설교말씀 들으면서..... 정에 약해서 감정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설교 말씀 중에서도, 공동체에서 들은 말씀이 있음에도....너무괴로워서...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이 생각이 없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까지했다. 그래도 맹목적인 애정 , 감정적인 것이 없어지지 않았는데... 며느리 암사건이 오니 몇년동안 해결이 안되었던 문제가딱해결이되었다.
2] 한 지체가 이혼 하겠다고 해서.... 그건안된다고 이야기를했는데...그러면 죽어버리겠다고 해서... 생명이 우선이라.....그럼 그렇게 하라고 한 적이 있는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준비가되지 않아서.... 부족함을 느끼고 회개가됩니다.
3]삼천포같은 소리를 하고... 그날 큐티본문하고 상관없는 말만하고.... 절벽같다 하셨는데...주님! 그게 바로 접니다. 그래서 남편 고난,(남편은 한갑이 되니 그렇게 기뻐 했다. 그 동안 직장문제로 짓눌렸는지...... 한갑이 되니... 이 나이에 누가 나를 써 주겠냐! 큰 소리치는 남편)돈 고난, 비천한환경,부끄러운환경으로 돌고,돌고, 파도를 넘고,넘고 넘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