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7 ampldquo성령의 돌보심amprdquo (행15:12-18)김양재목사 [목자선서]
2021년 목자로 부름받은 나는 영혼구원과 가정중수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 목원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으로 살피며 목원의 삶과 그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더하도록 섬기겠습니다.!!
목장에서 먼저 나의죄와 수치를 오픈하며 조롱받을지라도 분을 내지 않고 내 죄부터 보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목장이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의논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그 어떤 목원과의 만남도 최고의 만남으로 여기고 목장이 천국공동체 만남이 되도록 배려하며 모든 공예배 목장예배 여전한 방식의 생활예배를 잘 드리겠습니다.!!
형제의식을 가지고 목원들의 죄와 중독의 문제에 함께 아파하며 기도하고 목원들의 삶이 말씀이 두루퍼지도록 목자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겠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건강한 두려움과 십일조 신앙으로 본을 보이며 내가 먼저 망가지는 적용으로 목원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서 은혜와 웃음이 넘치는 매력만점 목장을 만들겠습니다.!!
2021년 1월17일 목자:강성아
기도: 아버지 하나님 맡은자에게 구할것은 충성이라고 했는데 2021년도에 부르심받은 목자직분에 충성하기위해서 내 열심이 아니고 하나님의 열심을 앞서지 않게 도와주시옵시고 성령의 의논을 통하여서 성령의 돌보심을 받는 목자여러분들 될수 있도록 그래서 늘 눈높이를 맞추며 하나님이 심방하시고 말씀이 일치가되는 삶이 될수 있도록 그런 목장을 인도하시고 목자를 할때 하나님은 수천대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고 구원의 선물로 갚아 주실줄을 믿습니다. 아무조록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한해가 될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삼위일체 하나님도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서로 의논하셨겠지요? 그러면 의논대로 무엇을 하셨을까요? 역할대로 돌보셨겠지요.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돌봄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기를 원하죠. 14절에 돌보심의 뜻은? 슬픔이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병문안하고 방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돌봄을 하고, 잘 받는 사람은 또 다른 사람들을 잘 돌보게 되어있어요. 목자들이 잘 돌보면 다음에 목자가 되었을 때 그 분이 롤모델이 되어서 잘 돌보더라고요. 오늘은 성령의 돌보심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성령의 돌보심은?
첫)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12절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지난 주 베드로의 형제의식의 관한 장렬한 변론은 온 무리를 침묵에 빠트릴 정도로 확신있고 분명한 것이였기 때문에 모두가 다 입을 다물어졌어요.조용해졌습니다!!. 온 무리가 잠잠해지자 사도들은 바나바와 바울에게 다시 발언할 기회를 주었어요. 바울과 바나바가 4절에서 처음 보고했을 때는 바리새인들이 막~ 벌떡 일어나서 비난을 했다. 두번째 보고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해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딱 표적과 기사를 콕 찝어 말했을까요? 그 믿음이 연약한 유대인들은 너무나 표적과 기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눈높이에 맞춘것이죠. 그래서 요한복음 4:48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물론 그들이 표적과 기사를 본다고 또 잘 믿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표적과 기사가 있으니까 그 정도라도 믿는거죠.
그래서 고린도전서 1:22절에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니 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표적과 기사를 좋아했어요. 이거 남 얘기가 아니죠? 우리도 짠~하고 나타나는 기적이 너무 좋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런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이 표적과 기사에 열광하겠지만은 진짜 표적은 십자가잖아요. 그러니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의 박해로 쫓겨났고, 이고니온에서는 돌로 침을 당했고.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도 죽을 만큼 돌로 침을 당하고도 복음이 전해진거 이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수리아 안디옥에서 돌아오는 지름길을 놔두고 곳곳에 죽이려는 유대인들이 있었지만은 그 복음을 전했던 루스드라, 이고니온,비시디아, 안디옥을 도로 돌아서 굳게 세우고자 돌아보며 돌아온 선교보고 그것 자체가 표적과 기사 아니었겠습니까? 주님은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 하셨기 땜에 바로 이것이 진짜 표적인 것이죠. 그러니 유대인들에게는 기복적 관점으로 보고를 했지만은 진짜 영이 통하는 사도들에게는 이 팔복의 관점으로 균형있게 눈높이에 맞춰서 보고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대단한 보고도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역할분담은 성령의 조직 맞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된다는 이 정통교리에 가장 강력한 주창자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바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공의회에서 조용한거에요. 객관적 증인의 역할만 했습니다. 나서지 않았어요!!. 그것은 공의회를 개최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몫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주된 증인의 역할마저 바나바에게 양보를 했습니다. 오늘 12절을 보면은 뭐가 보이나요? 바나바와 바울이라고amphellip. 바나바를 앞서 표기했잖아요. 그죠!!
왜냐하면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아직도 바울은 예전에 교회를 잔멸하던 대상으로 기피대상이었고 ...바나바는 사도들의 발 앞에 밭을 팔아 두었던 예루살렘교회의 인기스타입니다. 이걸 관과 하면 안되지요.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칭하며 그때는 늘 바나바가 리더였습니다. 선교여행을 시작하고보니까 구브로에서부터 바울에게... 탁월한 복음 실력이 저절로amphellip13장에 안디옥교회가 시작해서 파송하는데 얼마 안 가서 13절에 바울이 리더가 되었어요.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라고 언급했는데....... 그러다 앉은뱅이 고친 루스드라에서는 그 사람들이 인물 좋은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칭했죠. 그래서 거기 먼저 바나바가 나왔는데....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바나바가 앞서 나오는거에요. 이걸 왜 언급하냐면 성경에 한구절, 한글자에 이렇게 숨결이 있다는 거에요. 이게 다 큐티하는데 하나하나 다 히스토리가 있다는거죠. 이것은 하나님의 연애편지 맞습니다.! 정말 놀랍지요!!.
여러분 바울이 얼마나 스스로를 절제하고 있는 모습인지 보이십니까? 구원을 위해서 이렇게 자랑질을 하면 안되는거죠. 우리 자신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의 직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황속에서 주어진 역활이 바뀔수도 있고 거기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해요. 창조주 주님도 이땅에 와서 하나님께 죽기까지 십자가에서 순종하는 역할을 맡으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중요하기때문에 질서와 상황이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순종이 안돼요.!!
우리가 항상 가장 많이 하는게 돈 이야기에요. 교회에서 돈거래 하지 말라 목장초원등에서 늘 처방을 합니다.그런데 이것도 눈높이에 맞춰서 해 주어야 되요. 저 사람 언제왔나? 새신자인가? 양육은 받았나? 처방은 들을 만 한가? 그래서 바울은 얼마든지 예수 믿어야 의롭게 됩니다!! 말할 수 있지만 이렇게 조심조심 하는 것이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에요. 목장만 그러겠습니까? 다 마찬가지죠. 회사나, 가정도 ,이것이 효과적인 최고의 성령의 돌보심 같아요. 성령이 바울을 돌보셔야지 바울이 다른 사람들을 똑 같이 돌보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눈높이의 절제를 할 수 있는 비결은 구원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그냥~팩트야 이러면서 나는 할 말은 하겠어~ 할말 다하고 앞으로는 남고 뒤로는 밑져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런 성령의 돌보심으로 나를 돌보면 가정을 돌보고, 교회를 돌보고, 사회를 돌보고, 나라를 돌보는것 같아요. 눈높이에 맞추는 것은 십자가 짐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늘 밑지지만 뒤로는 남는 장사고 구원이 이루어 집니다. 이렇게 한해동안 성령의 의논을 하면서 목장에나 여러곳에서 각자의 눈높이에서 돌보심을 받고 돌보는 진정한 성령의 돌보심의 역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입덧으로 힘든 딸에게 하나도 돌봐주지는 않고 아ㅠ~ 입덧도 예민한 애들이 하는데ㅎㅎ... 이렇게 했다고 그래요. 전 그것도 모르죠. 근데 사실 입덧을 세게 할수록 아이가 건강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말을 그렇게 바꿨으면 좋았을 것인데 amphellip 제가 돌봄이 꽝인것이죠. 제가 돌보지 못하니까 큐티를 시켜서 자신이 자신을 돌보도록 한 것 같아요. 이 말도 제 위주로 하는 말 맞죠? 늘 이렇게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요!.
적용: 가정이나, 회사에서, 목장에서, 눈치를 보십니까? 무시를 하십니까? 눈높이를 맞추십니까?또 눈높이를 맞춘다면 구원때문입니까? 열등감 때문입니까? 성령의 돌보심은?
둘) 하나님의 심방입니다.(하나님의 심방처럼 받고 해야합니다) 두 심방이 있는데 야고보 심방이 있고 이방인 심방이 있습니다.
1)야고보를 심방하십니다.
13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바나바와 바울이 보고를 한 다음에 예기치 못한 한 인물 야고보를 만납니다. 그리고 형제들아~amprsquo 합니다. 베드로는 너희도 알거니와 그랬는데 야고보는 내 말을 들으라amprsquo합니다. 더 자신이 있는 것 같아요. 베드로도 자신도 어찌할수 없는 자신의 외식에 대해 애통하며 외식하는 유대주의자들을 형제들아'하고 불렀는데... 야고보는 또 무슨 죄와 수치가 있어서 애통하며 형제의식을 가지고 형제들아amprsquo 라고 했을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항상 우리의 구속사는 예수님 없는 한 개인은 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하다는것을 늘 생각을 해야되는거에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하지만 그러나 사람은 대충 알수 있어요. 왜냐하면 사람은 전적으로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100번 맞아요. 대게 인간이란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가게되어 있습니다.
정신의학자 프로이드는 그래서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나타내주는 바로메타라고 하지요. 그래서 범죄심리학에서 사람을 연구하면 답이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국내의 혐오차별 문제를 깊게 연구하는 김지혜교수가 쓴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는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거이 없답니다. 이것을 자꾸 간과하고 자꾸 사람을 칭찬하고 사람을 욕하고 이러는거에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서로가 기막힌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상상을 불허하는 고정관념을 가진 것이에요. 그러니 그 지독한 선민의식으로는 이 이방선교가 퍼져 나갈 수 없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식구인 동생이 역할을 해주어야 했나봐요.
그러면은 야고보가 어떤 사람인가?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기둥같은 사람이었다고 하잖아요.그런데 처음에는 그 유대인과 같이 예수님의 형제들은 아무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식구들이 왜 모두 안 믿었을까를 제가 참~생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인간이 100프로 죄인이다. 이건 큐티의 아주 기본이다. 우선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사생아로 볼 것 아닙니까? 그러면은 돌로 쳐 죽여야 될 엄마하고 그형을 보면서 살 때 말할 수 없는 수치심으로 ampldquo저 형때문에amphellip 형때문에amphellipamprdquo 하며 예수님을 비난하고 무시했겠지요. 게다가 배움도 없고 목수인 예수 형이 자기를 메시아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어요.
마태복음3:21절에....
그러니 형제들이 미친 형을 붙들러 다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33절에는 또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이냐amprsquo 하시면서 35절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내 형제요 재매요. 어머니라amprsquo하니 이거 완전히 미친 사람이 아닙니까? 좀 생각을 해 보세요. 그러니까 이 예수님은 성령받지 않고는 알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집집마다 말씀을 못 알아들으면 똑같습니다. 이 식구들은 예수님과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을 것이기때문에 생전에 믿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예수님도 살아서 식구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미쳤다는 말만 듣고 사셨어요. 그것이 그런데 지나고보니까 하나님의 경륜이었고 점처럼 와서 식구들에게 조차도 인정받지 못했던 성자 예수님인데 이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돌보신거죠. 예수님을...
예수님도...동생들이 뭐라고 했겠습니까? 형이 한게 뭐가있어?.우리 좀 조용히살게 내버려둬 응. 집에서 부모님이나 잘 돌봐~ 형이란 인간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상처입고 사는줄 알아?amprsquo 형만 메시야면 다야~? 그러면서도 초막절에는 이왕 그렇게 하려면 왜 숨어서 해? 나타내고 하지...amprsquo 이러고 굉장히 기복적으로 자기 형이 짠~하고 나타내주는 것을바랐어요.
이형을 보니까 언제는 메시아라고 하고, 언제는 숨어야된다고하고 이러니까 야~ 위선자, 이기주의자 따로 없네 이러면서 별소리 다 들었을 것 같아요. 악순환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미쳤다고 한 한마디로 식구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괴롭혔을까를 생각해보았어요. 그런데 예수님도 살았을 때 형제들이 잘 믿었으면 좋았겠으나 하나님의 경륜는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도 생각해 보았어요. 식구들끼리 너무 좋아하고 잘 살았으면 인류가 이렇게 구원받도록 지경이 넓어지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해보는데요. 그러나 히브리서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모델이 되셨다 하잖아요. 예수님도 고난을 받아서 순종을 배웠다고 하세요. 바로 이것이 삼위하나님의 사역이다. 성자하나님이 이렇게 점처럼 오셔서 결국 그 고난을 받아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셨고 이것을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돌보신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예수님의 역할을 보면서 지금 형제들이, 식구들이 여러분을 미쳤다고 해도 슬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정인이 엄마의 부모들이 다 목사님가정이라고 하는데.... 예수님 가정도 이랬는데 우리가 어떻게 목사 아들,딸이 그러냐? 그런 말 함부로 하시면 안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미쳤다고 하는데amphellip 식구들이... 마음대로 못하는거에요. 저는 예수님도 아닌데 제 설교를 듣고도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은 그렇게 제 욕을 하는거에요.
베드로가 대단한 변론을 해도... 그럼 왜 여기서 야고보가 등장했나 생각해봐야되는데.... 베드로가 대단한 변론을 해도 최후 판결은 수석사도 베드로가지고는 안되는 것이에요. 이때를 위해 주님은 부활하시고 고린도전서 15:7절에 주님이 탁, 콕 집어서 개인적으로 야고보를 찾아가시니까 주님이 찾아가시니까 단번에 변했어요.!! 부활의 주님이...찾아가시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심방입니다.
그러니까 심방도 때가 있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메시아로 밝혀지고 나서는 예수님의 식구가 메시아의 식구잖아요. 로열패밀리가 되었습니다. 로열페밀리로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야고보를 심방하신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것이죠.
온 인류의 이방선교를 위한 법적 판결을 위해서 야고보에게 이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야고보가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예수님과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내고 모든 것을 옆에서 보았다는 것은 막 상상할 수 없는 특권이었어요!. 유대인들이 그것을 부적처럼 여기기 때문에, 보이는 표적과 기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이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이라는것이 효력을 발휘했어요. 그만큼 유대인의 선민의식은 때마다 무너지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그 때는 야고보가 그렇게 쓰임을 받았어요. 그리고 야고보가 똑똑해요. 야고보서도 썼잖아요. 사도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아니죠. 야고보는 순교했잖아요. 이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죠. 그러니 야고보가 그 때는 쓰였는데 이 후의 세대는 여전히 베드로를 수제자로 우리는 칭하고있어요. 그때 그때 맡겨지는 역할에 순종하면은 그냥 이것이 눈높이에 늘 맞추는 거죠.
이렇게 야고보도 내가 지난 날을 생각할 때 너희와 형제가 될 수 없었는데amphellip. 나도 너희들과 똑같이 예수님을 비난했다, 미쳤다!! 그랬다.그 이야기를 한 것이에요. 주님이 만나주셔서 심방 한번 하시면 그 누구도 가능합니다. 야고보의 역활은 어떤 회의가 생산적인 결론에 이르려면 구성원 모두에게 공증된 의장격인 지도자가 반드시 있어야함을 보여줍니다.
야고보가 이런 마음으로 나도 너희와 같았다amprsquo고 형제들아~ 하니까 이해가되시죠? 베드로도 야고보도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요. 다들 이 세상에서 죄인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인식했기때문에 지금 형제들아~amprsquo 이게 공감이 되는거에요. 형제들아가 나오는거에요.
지난 주에 정인이엄마가 온다면 어떨까 나눠보라고 했었잖아요. 우리들교회 성도들 중에서도 너무나 싫다! 그래도 뭐~어쩔 수 없지 않냐? 이런 분도 많지만, 나는 목장에 안나오겠다! 아ㅜ나는 생각하기도 싫어!. ....그러나 자녀땜에, 식구들때문에 힘들었던 분들은 다들 보내달라고.... 보내달라고amphellip. 나는 하겠다고... 아ㅜ 저는 그런 분이 있다는게 너~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바로 이것이 형제의식 아니겠습니까? 성 어거스틴도, 인육 먹었던 지존파도, 다들 믿기전에는 그야말로 개차반인 인생 아니었습니까? 고재봉은 막~일가족을 도끼로 살해한 사람이었는데.... 다 예수 믿고 수많은 사람을 주께 인도하고 천국갔습니다. 우리들교회는 옳고그름으로 좀 안 했으면 좋겠는데..여전히 여러분들이 옳고 그름이 많더라고요.
한 엄마가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는데....그 천사같은 아이가 성병에 감염되었답니다. 그러니까 이 엄마는 낳아놓고 병원에서 사라졌대요. 근데 이 아이가 후에 고아원에서 너무 건강해졌답니다. 근데 이 아이 엄마보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하지만는 아ㅜ 저는 그걸 보면서 그 엄마가 낙태하지 않고 10달동안 배 아파서 품어가지고 낳아준게 얼마나 고마운지...왜냐하면 성병에 감염되었다면 자기도 성병이었을 것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면 너무나 쉽게 낙태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이를 낳아도 그렇지요. 이렇게 죽일 수도 있고 때릴 수도 있지만 최고의 선택은 생명을 낳는 것이에요. 이것은 결혼과는 별개의 문제에요. 아이를 낳는 엄마에게는 하나님이 축복을 하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보이는 것으로 옳고그름을 열렬히 논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는 것과 같죠. 예수님은 미친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해가 안되니까 보이는 것으로 예수님이 메시야인데...지금 미쳤다고 하는 것이잖아요. 그 예수님을 가만히 끊고자 해서 낙태할뻔 했잖아요. 그러니까 눈앞에 바라다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뱃속에 정인이처럼 예쁜 아이가 수도 없이 많이 죽어갔고 또 앞으로도 죽을 예정이에요.
낳아놓으면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잘먹고 잘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에요. 우리들교회도 생후 2개월때 고아원앞에 버려진 집사님이 고아원에서 돌고,돌고, 돌아서 우리들교회에 왔어요. 이 분은 표적과 기사로 50이 넘어서 서울법대를 들어갔고 졸업했고... 근데 많이 아파요. 고아원에 갔는데 너무 똑똑하니까 이게 굉장히 많이 아플수 밖에 없어요. 어떻게 그런 사람이 막 ... 돌보는 사람....사회에 대해서 적개심이 많을 수 밖에 없어서 왔는데 나는 그 분이 주님을 만나면 우리들교회에선 변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10년이 넘었는데 드디어 주님을 만났어요!!. 그 분도 육이 무너지니까 만나게 되더라고요. 우린 선한 사람이 없어요. 결국 우리는 천국에서 만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엄마가 내가 못 키우겠다고 안 낳았으면 어찌 될 뻔 했어요. 생명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하나님이 심방 한번 해주시면 구원으로 연결되어서 이렇게 돌봄을 받고 돌보는 것들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에요. 성령의 돌보심이 나에게 느껴지면 나도 남을 돌보게되어 있거든요. 야고보를 심방하신 주님은
2) 이방인을 심방하십니다.
14절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베드로도 그렇고 야고보 나도 그렇지만 절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방인들도 (저주 받은 이방인)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심방 한번 하시니까 구원받았다 이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돌보신 것이라고 한마디로 야고보가 정리를 합니다. 여기서 돌보셨다는 단어의 원형 헬라어 '에피스케토마이'는 히브리어로 ampldquo파카드amprdquo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너무 중요한 단어가되어서 제가 알려드려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보시고, 방문하셔서,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이 구원을 나타내는 전문용어가 바로 이'파카드'입니다. 저의 간증 룻기 1:6절에도 여호와께서 모압 땅에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같은 단어를 썼어요. 창세기 21장에도 경수가 끊긴 사라를 돌보셔서 이삭을 낳게 하셨고 또 출애굽에도 4장 애굽에서 탄식하던 백성을 돌보셔서 찾아가셨어요. 흑암중에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어요. 다 같은 단어다. 절망에서 하나님이 심방 한번 해주시면 그냥 구원해주시는 이 엄청난 표적과 기사잖아요. 근데 이 돌아보신다는게 너무 따뜻한 주님의 돌보심의 심방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거죠. 아프고 힘들 때 돌보셨다는 에피스케토마이와 히브리어 파카드다. 에피스케토마이의 기본 의미는 인지, 아닌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다에요. 쉽게 말해 출석체크가 기본 뜻인데.... 이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관심의 표현입니다. 관심이 있으니까 살펴보는 것이고 가장 확실한 관심의 표현은 직접 찾아가서 함께 있는 것이므로 방문하다의 뜻으로 교회의 심방이 이런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우리의 목장은 기본이 출석체크인 것이에요. 그리고 방문해야해요. 여러분 카톡으로 하시면 안되요. 줌으로 하셔야해요. 얼굴과 얼굴을 대면해서 봐야해요. 아무 말 안해도 되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목장에 그냥 출석첵크, 출석하시면, 출석하시고, 출석체크하시는거 이것이 목장의 큰 의미에요. 그럼 그 목장에 하나님이 심방하십니다. 늘 출석만해도 여러분 심방하십니다. 수많은 문제가 해결되요. 구속사적인 구원을 해주십니다.
즉 야고보는 베드로가 고넬료 집을 방문한 사건을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방문하신 일의 시작으로 해석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돌봄은 하나님의 심방으로 찾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구원을 위한 돌봄이에요.
창세기 59: 25절에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파카드)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매고 올라가겠다 하라. 그러니까 내 자녀가 지금은 안 믿어도, 내가 죽은 뒤라도, 하나님이 반드시 방문해주신다는 것을 믿고 요셉이 유언했어요. 창세기 마지막에amphellip 그리고 올라가는데 400년 걸렸어요. 그러니까 돌보신다는 것은 시공을 초월해서 구원의 심방이고, 약속의 심방이고, 그래서 권고하고, 돌아보고, 방문하셨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로 불임에서, 홍해바다에서, 흉년에서 우리를 심방하십니다. 그래서 돌봄은 심방이에요. 야고보도 이방인도 하나님이 심방한번 하시면 기둥같은 사람이 될줄을 믿습니다.
올해엔 심방계획을 많이 잡으시길 바랍니다. SG목자님이 거기 평균나이가 80세니까 왜 나에게 이렇게 이분들을 심방하라고 붙여주셨나?amprsquo 했는데 자기가 그래도 심방해야되겠다 생각하니까 80이 넘으시고 몸도 많이 불편하신 오의희 집사님 내외분이 차를 직접 운전해주셔서 원주로... 원주로... 심방 고~고~ 이렇게 된거에요. 부목사님모시고...그랬더니 그냥 원주에 사시는 집사님이 목장에 한번 참석하시고 비대면으로 했기 때문에 얘기할 시간이 없었는데amphellip 심방한번가서 마음을 열게되셨대요.
또 청주에 계시는 정집사님도 80세셔서 온라인에배를 못드렸는데 따님께 부탁해서 함께 드리도록 도와드리라고 했더니 심방갔던 부목사님을 알아보고는 아~저분이 심방오셨다고 좋아하셨다는거에요. 사람이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의 심방이 되야 돌봄이 되어 구원으로 연결되는 것이죠. (여기에 참고로 이 부목사는 김태현 목사에요. 얼굴이 보이니까 내가 이름을 언급이 되네... ) 전부 80이 넘으셨는데 정말 이거 하나님의 심방 아닌가요? 하나님의 방문 아닌가요? 사역자도 아닌 목자님이 원주로, 청주로 심방가겠다고 하니까 목원이 차를...80세가 넘으신 목원부부가 같이 동승하시고....진짜 성령의 돌보심 맞습니다. 구광광목자님...
적용: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방이 따뜻하게 느껴집니까? 귀찮습니까? 목자의 심방이 즐거우세요? 부담되세요? 마음에 안 든다고 톡방에서 나간 적은 없나요? 진짜 올해는 그런 유치한 일은 하지 마시기 바래요. 톡방에서 나가지 좀 마세요. 하나님의 심방으로 생각하고, 톡방이 하나님의 심방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돌보심?
셋)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15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하지만 주님은 다른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우리를 심방하는 것에 일치해야합니다. 베드로의 간증과 바울과 바나바의 말이나 즉 선지자의 말씀이 다 일치한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아무리 돌본다고 해도, 찾아간다고 해도, 하나님이 심방하신다고 해도, 최종은 말씀과 일치해야합니다. 돌보심의 결론은 말씀과 일치하는가에요. 내가 아무리 도와줘도 말씀과 일치하지 않으면 꽝~이에요. 아무리 욕을 해도 말씀과 일치하면 오케이다!. 말씀!! 말씀이 잣대가 된다. 이론적으로 내가 성경을 인정해도 삶에서는 말씀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그건 또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일치했는가? 16-18절까지를 야고보는 아모스 9:11-12를 인용하면서 그걸 얘기합니다.
16절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바벨론 포로 시대 때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는데 다시 지을 사람은 다윗의 후손 예수님인 거죠. 그래서 예수님만이 이 퇴락한 성을 다 지을 수 있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왜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겠다고 했을까요?
17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다윗의 후손 예수그리스도 메시야를 통하여서 선택된 유대의 남은 자와 또 모든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라고 하셨죠. 그런데아모스하고 야고보는 논점이 좀 달라요. 그런데 언어가 몇개 다릅니다. 아모스 9:11-12에서는 유대인들이 저주받아 마땅한 에돔의 남은 자들까지 (에돔은 최고로 약속의 민족에서 벗어난 사람들이잖아요)즉 불구대천원수까지도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으로 기업을 얻게 하신다고 되어있어요. 아모스에서는... 그런데 야고보는 그 본문을 좀 영적으로 해석해서 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확장될 것을 말하는 70인역 구약성경의 헬라어 역본을 인정해서 야고보는 구약 히브리성경이 아니고 헬라어성경을 인용했어요.
인류의 남은자 즉 이방인들이 주를 찾게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요. 이 얘기는 다윗 시대보다 훨씬 많은 민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고 있는것이 이 퇴락한 장막을 다시 일으키시겠다는 예언이고 지금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 이방선교고 이것이 말씀의 일치라는 것이죠.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이 주를 찾게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이것이 주의 말씀이라고 분명히 밝히시는데....
18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이것이 아모스는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셨고 야고보는 주의 말씀이라고 썼어요. 주의 말씀이라는 주께서 말씀하신다는 현재 직설법 동사로 하나님이 항상 현재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다는 의미에요. 야고보는 이방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진리라는 거에요.
아모스는 지금 이시대부터 한 750년 전 얘기이다. 아모스이야기나 ,바울과 바나바의 얘기나, 다 똑 같다는 것이다. 현재에도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진리라는거죠. 출애굽기 12장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올 때 12:37~38절에 허다한 잡족이 섞여 나왔다고 그랬는데 이것이 바로 그 예전부터 이방인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주죠. 허다한 잡족이라고....그렇게 표현이 되어 있어요. 어렵죠? 다시 좀 쉽게 설명 해 드리겠습니다.
남과 북이 망했어요. 북이스라엘은 722년에amphellip 남유다는 586년 망해고 이스라엘 백성이 흩어졌잖아요. 그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우리가 보다시피 지중해연안으로 다 흩어졌어요. 근데 시간이 갈수록 다 모국어를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각자 자기지방의 언어를 모국어로 쓰고있는데 ...그러다보니 히브리어 성경을 모르는 것이에요. 그랬는데 지중해 연안을 로마가 재패하고나서 헬라어라는 공용어가 생겼어요. 그래서 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해서 읽게 하고자 한 것이 70인역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이방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이라는 것이죠. 야고보는 바로 이 아모스를 히브리어 성경을 인용하지 않고 이 70인역을 인용했는데 바로 이것이 야고보가 눈높이를 맞춘거라는 거죠. 눈높이를 맞춘거에요.!! 유대인들에게도 구약성경 아모스를 인용했기때문에 예언이 이루어졌다. 이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고, 이방인들에게는 헬라어 성경을 써가지고.... 아모스에는 유대인을 주인공으로 인류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이 헬라어 성경에는 이방인을 중심으로 전부 다 이루어진다. 비슷한 얘기 같지만은 앞으로 유대인 시대에서 다 흩어져서 나가야 될 것이니까.
우리가 표적과 기사를 보아도, 돌봐줘도, 돌봄받아도, 중요한 것은 성경대로인거에요. 성경대로 일치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의 돌봄은 다 꽝이다. 돈을 줘도 꽝이고, 꿔줘도 꽝이고, 안 꾸어주어도 성경대로면 오케이다.
그러니까 성경대로 하지 않는 나의 열심은 이단인거에요. 이단... 우리 간증, 체험 다 놀랍지만 성경대로... 베드로, 바나바와 바울, 야고보가 바로 이 말을 한 것이고, 이것을 야고보가 아모스 성경과 연결시켰다는 것이에요. 항상 우리는 성경으로 얘기해요. 성경대로 이야기하고 나누는데 ..우리목장같은 공동체가 없잖아요.그죠? 우리 자기 이야기, 썰풀고,고난이야기, 자랑이야기 이거 안 하잖아요. 늘 말씀에 의거해서. 그런데 그것이 어제도, 오늘도, 동일다하는 뜻이죠.
적용: 말씀과 일치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를 잘 드리고 있나요?
온라인 예배 때 모니터에 열려있는 화면이 몇 개인가요? 꼭 전체화면 확대해서 가능하면 TV연결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예배의 집중해서 들으시기를 바래요. 그 화면이 켜져 있으면 ...이거하다, 저거들어가고... 저거하다 이거 들어가고 이러시더라구~... 내가 몰랐어요. 설교하느라고... 모든 것의 결론은 말씀입니다.!! 성령의 돌보심의 결론도 말씀입니다.!! 말씀의 결론은 인내입니다.! 맨날 같은 결론이에요.
공동체고백: 늘 간증들었죠. 부모님이 목사님인데 군대갔을 때 두분 다 이혼하고 제대하기전에 두분 다 재혼하신 목사님의 가정 나눔이에요. 얼마전 오후에 새어머니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수화기 넘어 새어머니가 오열을 하셨다는거에요. 아니 글쎄 재혼까지 해놓고 왜 또 이러시나? 그랬더니만 새어머니의 첫 마디가 '미안해요!! 아버지랑 재혼해서...'그랬다는거에요. 그랬는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까 아버지 목사님께서 이 딸이 너무 보고싶고 손주들도 너무 보고싶은데... 연락은 안되고 그리고 새어머니의 자녀들도 자신과 왠지 모를 벽이 있어, 거리감이 있고 그렇게 요~근래 공허함과, 외로움으로 많이 우울 해 하셨다고.... 이야기를 해 주셨다는거죠.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새어머니께 내가 노년의 때에 조강지처를 버린 죄값을 받고 있는 것 같다amprsquo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새어머니가 억장이 무너지고 도대체 나에게 어떻게 조강지처 버린 죄값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를 할수있냐?. 그럼 내가 당신에게 형벌인거냐?. 너무 비참하고, 서글프고, 억울하고, 괴로워서 집을 나와 차 안에서 너무 울다가 하소연할곳이 없어서 이 아들 목사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에요.
위로하고, 성령의 돌보심으로, 기도해드린 후 전화를 끊었는데.... 늦은 밤 새어머니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고맙고 미안해요'. 그 사이에 또 무슨일이 있었나~ 했더니 amphellip새어머니가 제가 감히 상상도 못했던 얘기를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전 유튜브로 김양재목사님 설교를 들었는데... 가정은 지켜야하는것이 맞고, 이혼과 재혼에 대한 값지불이 있는 것이 당연한것인데... 그리고 재혼가정으로 내가 마땅히 들어야 할 말들이었는데 amphellip아버지 말이 사실 틀린말이 하나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내 얘기를 잘들어줘서 고맙고, 내가 참 믿음이 없어 미안하다!'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다는겁니다.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 예수님의...신기하고 놀라워~ ... 새어머니의 이 말씀이 굉장한 구원의 고백, 믿음의 고백으로 들려졌습니다.
아버지도 새어머니도 각자의 자리에서 죄인임을 인정하고 시인하고 가시는구나라는 생각에 너무나 감격이 되었습니다. 근데 이 새어머니는 집사님이었는데 재혼을 하신것인데.... 너무 순종적이고 사실은 재혼하셨지만 잘 하셨고 그리고 친어머니는 재혼 후 교회를 지금 안나가신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amphellip.그래도 순종적이고 이렇게 자기 일을 열심히 하셨기 때문에 amphellip. 저는 제 설교가 들렸다고 생각이되는거에요!. 역할이 각자 다르겠지만은 어떤 역할이 있을지라도 여러분들은 성령의 돌보심으로 심방하셔야되는거에요. 찾아가셔야되는거에요.! 방문하셔야되는거에요!.권고하셔야되는거에요!. 고난이 축복인거에요.!! 그런데 친엄마는 잘 사니까 나는 재혼하고 잘 사는게 참~안 좋은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힘들어야 예수님을 찾게 되는데....우리는 올해 아픈 사람들, 다 미운 부모들 많지만은 다 성령의 돌보심으로 가지각종 방법으로 심방하시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맺음: 성령의 돌보심은 그래서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영육간의 눈높이를 맞추어야 해요. 그리고 하나님의 심방인데요. 방문하고, 권고하시고, 위로하시고, 찾아보시고, 100번 나눔해도 한번 얼굴과 얼굴을 맞대면하는거 따라갈수가 없어요. 진짜 힘들때 주님은 찾아가셔서, 방문하셔서 .... 이스라엘이 어려울때... 구속사의 주인공 사라가 아이가 못 낳을때... 학대 받을때 ...그때 주님이 찾아가신 것처럼 우리도 힘든 사람은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그 말도 못하는 죄인 야고보를 주님이 심방하시니까 심방도 내가 한번 찾아가면 되겠어요? 예수님의 가족들도 아무도 안 믿었잖아요. 때가되서 그 모든 것이 씨를뿌리고 있다가 때가되면 야고보가 한마디로 변하는거죠!. 이방인도 한번만 심방하셔도 주님의 때가되면 주님의 경륜의 의한 시간이되면 다 달라집니다. 모든 것은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어떤 표적과 기사를 봤더라도 말씀으로 최종결론을 내야 합니다.
찬양: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 밖에 없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 밖에 없네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료하네 고통받는 자녀 품으시니 주밖에 없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 밖에 없네
기도제목: 성령의 돌보심을 알게 해 달라고...우리의 상황에서 하나님이 방문하시고, 권고하시고, 찾아오셔 달라고...우리의 모든 식구들...나도, 우리의 식구들...모든 목장식구들... 방문해 달라고... 그리고 구원 때문에 눈높이를 잘 맞추도록... 오늘 야고보 같은 사람도...이방인도...주님의 그 심방의 시간을 잘 기다리게 해 달라고... 그래도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하게 해 달라고... 그래서 올해는 심방의 해로 잘 심방받고, 심방 잘 하도록.... 온 라인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서 말씀이 최종 답이 되도록 ...태아 생명보호법과 낙태개정법위해서 기도....
기도: 주님 우리 주님이 이땅에 사실때 미첬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것을 묵상을 했습니다 주님은 창조주로 흠이 없이 그렇게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제 인생도 미치지 않고야 어찌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겠습니까? 예수의 미친게 맞는데 전 우리창조주 예수님처럼 온전하지 못해서 눈 높이도 못 마추고, 심방도 못하고, 방문도 못하고, 힘들사람들 살피지도 못하고 그것을 생각하며 예수님 식구들도 살아 생전에 아무도 안 믿었는데 저 또한 미친 인생을 살아온 결론이 ...제가 할수 있는 것은 죽는거, 죽어야 하나님이 400년후라도 방문하시고, 심방하신다는거, 이것이 믿어집니다. 주님 우리 모든 식구들 예수님의 인생을 생각을 하면 답이 나오는데... 늘 내 인생만 묵상하니 오늘도 이혼을 하겠다 죽이겠다~ 너 죽고 나 죽자~ 누구를 사형을 시켜라!! 말라~ 사형시키는데.... 동의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겠다. 주님 제가 죽지를 못해서 그래요. 제가 죽어야 하는데... 그래서 오늘 주님을 보니까 죽어야 살아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 제가 영육간에 죽어진 후에 반드시 이 말씀을 들은 모든 분들에게 400년후라도 반드시 권고하시고, 방문하시고, 심방하셔서, 성령의 돌보심을, 알게하시고, 또한 그래서 돌봄을 받고, 돌보는 여러분들이 될수 있도록 주님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생명보호법은 제가 그냥 무슨 사회복지를 위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많이 애통이되요. 주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 보호법이 제정되게 도와주시고, 낙태법도 개정되게 도와주시고, 우리 다 성령의 돌보심가운데 오해하고, 미워하는거, 하지않게 도와주시고, 그래서 주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조끔이나마 일치할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느낀점: 성령의 돌보심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저 같으면 그냥 스쳐지나갈 한 구절,한 글자에숨결을 불어넣고 부활시키셔서 우리에게먹여주시니 너무나 감사하게된다.
표적과 기사는 십자가이고, 박해 중에도 복음을 전해지는 것이라든가, .
출애굽때 허다한잡족중에 나도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야고보가 헬라어 성경을 사용한것이 눈높이를 이방인들에게 맞춘것이라든지, 이방인들이 주님을 찾게될 것이라든지, 다윗의 퇴락한 성을 다시 일으키시라는 말씀이 나의 구속사와 말씀과 일치가됨을 느낀다.
우교 오기전에는 (후에도...)은혜받아도 말씀과 일치가되지 않아서, 감정에 따라 요동을 쳤었는데....김양재목사님의 범접할수 없는탁월하신 말씀묵상으로먹여주셔서 영혼이 풍요로움을 느끼게된다.
올해는 심방의 해라고 하셔서.....적용합니다.
우리목장에 한분 집사님이 계시다.
작년 2월에 두번 목장참석하시고는 몸이 아프고 거동이 불편해서 동네교회가야되겠다 하시고
전화도 차단을 하시고 카톡방에도나가신분이 있다.
우리목장에 오셔서 목장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가신다고 하니...그래도 동네교회에서 잘 다니시는지 살폈습니다.
때마침 코로나로 가까운 교회를 나가지 못해서.... 계속 저의 목장과 초원에서 품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한계를 느끼며, 회개가되었고,하나님께서 나를 파카드, 효과적으로돌보심을 받았기에 집사님에게 마음이 갔다.
교회오신지도 얼마 안되고... 세례도 안 받으셨고... 동네교회간다고 전화도 차단이되고 목장카톡방에도 나가서
어찌 할바를 몰라 담당 목사님과 초원님과 함께 심방을 갔다.
후에 들으니... 코로나때 심방오게 했다고 아들에게 면박을 받으시고는 부목자님 전화도 안 받으셔서.....
난감하고 있었다.
2021년되어 거리가 동에서 서만큼 멀어서 가까운곳에서 돌볼목장으로 보내주시길 바랐지만.....
올해도 같이 가게되었습니다.
갑자기 아프셔서 검사받는다고 해서 부목자님 통해서 전화 심방을 주마다 했습니다.
위축이들고 나를 거부한다는 내 생각으로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목사님께서 내가 죽어야 한다고 하시니.... 죽어지기로 결단 했습니다.
그래서 집전화로통화를 했습니다.
가슴이 물찬것은 오진이라고 ... 그래도 여전히 숨이 차고 힘들고 아프다고 하시니 주일말씀처럼 아플때,힘들때,
고통받을때 하나님의 효과적인 방문과 권고를 하신다 하셔서 저도 말씀대로 할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눈에 하얀것이 끼어서 레이져 시술을 하셨는데...지난번 시술한 것이 마취가 안되었는지 너무 아팠다고 합니다.
주님~ 장집사님이 숨이가프고 온 몸이 붓고 힘든가운데 있습니다.
눈도 시술해서 아픕니다. 목장에서 대면으로 심방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저를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효과적으로 방문하여주시고, 권고하시고,아픈것도 감하여 주시고, 복음도 들리고,
깨끗이 치료되어 예수님을 믿어구원으로 결론나기를 간구드리며,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