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in ampldquo이스라엘에서 다윗까지amprdquo (역대상 2:1-17)
#FEBC #극동방송 #날마다큐티하는여자 #김양재목사입니다.
#본문 말씀
<이스라엘의 아들>
1절) 이스라엘의 아들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2절) 단과 요셉과 베냐민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더라
<유다의 자손>
3절) 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과 셀라니 이 세 사람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 유다에게 낳아 준 자요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고
4절)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더라
5절)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6절) 세라의 아들은 시므리와 에단과 헤만과 갈골과 다라니 모두 다섯 사람이요
7절) 갈미의 아들은 아갈이니 그는 진멸시킬 물건을 범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이며
8절) 에단의 아들은 아사랴더라
<다윗의 가계>
9절) 헤스론이 낳은 아들은 여라므엘과 람과 글루배라
10절)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으니 나손은 유다 자손의 방백이며
11절) 나손은 살마를 낳고 살마는 보아스를 낳고
12절)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13절) 이새는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로 아비나답과 셋째로 시므아와
14절) 넷째로 느다넬과 다섯째로 랏대와
15절) 여섯째로 오셈과 일곱째로 다윗을 나았으며
16절) 그들의 자매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형제요
17절) 아비가일은 아마사를 낳았으니 아마사의 아버지는 이스마엘 사람 예델이었더라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에서 다윗까지 예수님의 계보를 잘 이어주신 것처럼, 저희 또한 구원의 계보를 잘 이어가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그제와 어제에 큐티한 1장에서 역대기 기자는 아담에서 시작되어 노아와 셈, 아브라함을 거쳐서 이삭과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이 오실 구원의 계보를 주욱 나열합니다. 그리고 1장 마지막에서는 에서이 후손, 즉 에돔 족속의 죽고 죽음의 계보를 언급했죠.
그런데 오늘 2장 1절부터는 이스라엘의 아들은 이러하니amprsquo 하고 낳고 낳은 생명의 계보, 구원의 계보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누구입니까?
바로 야곱이죠.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지요. 그럼에도 야곱이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고 버티니 그때 그 천사가 뭐라고 이르죠?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amprsquo 했지요.
이스라엘은 그래서 얻게 된 새 이름이지만, 우리에게는 야곱이 훨씬 더 친숙합니다. 그런데도 역대기 기자는 왜 굳이 오늘 1절에서 이스라엘의 아들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야곱의 아들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언약의 백성이요,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닌가 해요.
아무튼 1절과 2절에, 야곱의 열 두 아들이 언급되는데, 이 순서를 가만히 보니 태어난 순서가 아니네요.
1절에,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amprsquo은 야곱의 첫 아내인 레아가 낳은 아들이죠. 그녀는 비록 야곱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다산을 통한 축복을 누렸어요.
그런데 창세기 29장에 보면 야곱은 레아의 동생인 라헬을 더 사랑함으로 결국 라헬을 두 번째 아내로 얻지요. 그러나 라헬은 아들을 낳지 못해서 그의 언니를 무척 시기합니다. 심지어 야곱에게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amprsquo 하고 떼를 부리죠. 그러다 결국 야곱을 자신의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게 해서 아들들을 얻는데, 그가 바로 단과 납달리에요. 그리고 갓과 아셀은 출산이 멈춘 레아가 자신의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해서 낫은 아들입니다.
그리고 2절에 요셉과 베냐민은 라헬이 한 참 후에 낳은 아들이죠. 참 복잡하죠?
그러나 라헬은 질투가 많고 하나님의 약속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결국 약속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레미야 31장에 보면, 라헬이 유업을 이어받을 후손이 끊어져 애곡했다고 하잖아요. 육적으로는 한 자매요 똑같이 야곱의 아내인데, 이 두 인생의 결말은 이토록 극명하게 다릅니다.
또 창세기 35장 22절에 보면, 라헬이 죽은 후에 야곱의 큰아들 르우벤이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였다고 하지요.
유다는 또 어땠습니까?
며느리 다말과 동침하잖아요. 나머지 형제들도 도긴개긴입니다. 동생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종으로 팔아넘기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의 원조들이 이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어떠세요?
예수님이 오시는 구원의 통로 역할을 잘하고 있습니까?
라헬처럼 시기 질투만 하고 살다가 영적자녀가 없어 애곡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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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3절에 보니, 며느리 다말과 동침한 유다의 아들들이 가장 먼저 언급됩니다. 야곱의 육적 장자는 분명 르우벤이고, 실질적인 집안의 장자는 요셉아닙니까?
그런데도 왜 역대기에는 유다의 아들이 가장 먼저 언급되었을까요?
아브라함에게는 영적 장자가 이삭이라고 가르쳐 주셨고 이삭에게는 야곱이라고 가르쳐 주신 하나님이세요. 창세기 49장에서 야곱 역시나 이스라엘의 영적 계보, 구원의 계보가 유다를 통해 이어질 것이라고 유언했잖아요.
그런데 오늘 3절에,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 유다에게 낳아 준amprsquo 에르와 오난과 셀라amprsquo 이 세 아들의 인생은 또 어떻습니까?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amprsquo 죽이셨다고 해요. 구체적인 죄악이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가 가나안 사람이니 모르긴 해도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을까 해요. 또 창세기 38장 8절에 보면 둘째 오난도 형수와 동침하여 형 에르의 씨를 이어주라는 유다의 명을 거역함으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셨다고 기록하고 있지요.
그리고 4절에 보니 또,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더라amprsquo고 합니다.
그러나 5절 이후 그 후손들도 그래요. 진멸시킬 물건을 범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amprsquo 아갈이 있는가 하면(7절),
11절의 살마는 기생 라합과의 사이에서 보아스를 낳고amprsquo
보아스는 모압여인 룻과 결혼해 오벳을 낳았습니다(12절).
이만하면 참, 콩가루 집안 아닙니까?
그럼에도 이 오벳이 낳은 이새를 통해 다윗이 태어난다는 것을 여러분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듯 구원의 계보는 우리의 편견을 뛰어넘어서 이어집니다. 가장 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며느리 다말과 동침한 유다도 그렇고 기생 라합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보아스나, 모압 여인 룻을 통해 태어난 오벳도 그래요. 그야말로 남 보기 부끄러운 수치스런 가족사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수치스런 가족사를 감추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셔서 예수님의 계보, 구원의 통로를 이어오셨어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나의 수치와 연약함을 드러내며 회개하고, 망하고 망하는 사건 가운데에서도 내 삶의 결론으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드릴게요.
창피해서 아직 드러내지 못하는 내 집안의 수치는 무엇입니까?
그 수치스런 부모와 배우자, 자식들을 통해 내 집안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이 믿어지세요?
#오늘의 묵상 간증(참된 회개와 자존감)
참된 회개로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한 집사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얼마 전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에, 빌딩과 별장을 가진 한 부자 친구가 딸아이를 시집 보내며 비싼 아파트를 사주었다는 말을 드었지요. 다른 친구들도 모두 성공해서 큰 기업의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어요. 저는 갑자기 제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배경도 학벌도 뒤쳐질 것이 없는데 제 인생이 가장 못 하다는 생각에 빠졌지요. 내가 인생 설계를 잘못했나 하는 자괴감 마저 들었어요.
예수 믿고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으며 넉넉히 살아왔지만, 믿지 않는 친구와 비교하면 늘 그들의 성공이 부럽습니다.
그런데 오늘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겔을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라 하시는 4절 말씀을 통해 내 수치의 족보도 예수님의 족보에 당당하게 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세상 성공과 힘을 부러워하는 것이 있어서 주님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유다처럼 참된 회개를 함으로 주의 자녀로서의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 제가 만난 예수님을 애통함으로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적용은,
친구들과 만날 때 믿지 않는 친구 부부에게 《큐티인》을 선물하며 전도하겠습니다.
가정예배에서 자녀들에게 저의 연약함을 고백함으로 제 속의 여전한 세상 가치관을 회개하겠습니다. 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다윗까지 예수님의 계보를 이어온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 보았다시피 약하기 그지없고 도덕적으로도 흠이 많았습니다.
특히나 유다는 며느리 다말과 동침하는 수치스러운 죄를 범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낳은 아들 베레스는 예수님이 오시는 구원의 통로가 되지요.
또 13절에,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어떳습니까?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얼마나 내세울 게 없었으면, 나이 많고 늙었다는 기록만 남았겠습니까?
더구나 성경에 이새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종종 다윗을 조롱할 때 사용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훗날 이새의 아들은 다윗의 존칭이 되었고, 이새의 뿌리는 메시야에게서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비록 지금은 약하고 비천하고 나이 많고 늙었고 죄가 많아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의 통로로 사용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또 그렇게 되기 위해 오늘 내가 돌이키고 끊고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드립니다.
주님!
세상만 바라보다가 죽고 죽으매의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데, 오늘 이렇게 낳고 또 낳았더라는 생명의 계보를 보여주시고 또 이 구원의 계보에 올려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또 오늘 말씀에, 같은 유다의 아들들이 있어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함으로 여호와께서 죽이신 아들이 있고, 유다가 며느리 다말과 동침하여 낳은 아들 가운데 베레스를 통해 다윗을 낳고 예수님이 오시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 시간 바라옵기는, 가진 것이 없어 수치스럽고 자식이 공부를 못해 수치스럽고, 내 죄가 수치스러워 낙망하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 바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붙잡아 주셔서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가는 놀라운 영광을 이루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랜 시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나라와 경제와 집안 살림이 참 많이 어려운데, 코로나를 완전히 소멸시켜 주셔서 이 나라와 모든 경제 활동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성도들이 구원의 통로가 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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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C #극동방송 #김양재 목사의 큐티 노트 2020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