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에 일어나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또한 내 주거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유대인 회당을 도는데 밤 하늘의 별자리들이 왜 그리 선명한지요
주님!
정말 아름답습니다
지상에서 주님께서 가져간 추억 중
분명 저 별자리들도 있을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옛날 다윗도
저 별자리들을 보며
비파와 수금을 키며 주님을 찬양했을 것라는
생각을 하니 이렇듯 집에 들어 와 자판기를 두드리게 되네요

주님!
재작년과
작년 그리고 올해까지
지속되는 불경기로 올초부터 우리는 부동산을
정리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답니다
때마침 십년 전
우리에게 집을 판
유대인 시니어 라바이가
자꾸만 자기가 판 집을 다시 사겠다며
올 초부터 칠월 말까지 거의 반년 넘게 졸라댔답니다
근데 그 시니어 라바이가
집을 자기한테 다시 팔라고 말하는 순간
떠오른 첫 생각이 아하 나는 이곳에서 더이상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었나보다! 라는 자괴감이였답니다
주님!
그때부터 주님도 알다시피 우리는 계속 주님께 묻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사명 완수를 다해서 떠나야하는 것입니까?
아님 사명 불충으로 인한 자격 박탈에 축출당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한 오개월간을 기도하는데
경기는 좀처럼 펴지지 않고 빚은 가중되고
라바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 와 돈은 원하는대로 줄터이니 자꾸만 팔라 하고..........
정작으로 기다리는
당신의 시원스런 기별은 없고
대신 왜 그리 뒷 뜰에 사슴은 자주 보내시는지......
하루는 사슴이 뒷 뜰 숲에
무릎 끓고 앉아 두시간 내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정말 별 것 아니라고 저 사슴 한 마리
날 쳐다보는 것이 뭐그리 특별 계시냐며 주님의 뚜렷한
응답도 없고 하니 저 시니어 라바이가 우리에게 집을 싸게 주어
그동안 여기서 산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였는지 십년동안 편히
살았음은 족하지 뭐 그리 이 집에 미련을 둘 것인가?
그런 저런 생각하다 결국
미스터 그린(시니어 라바이 이름)이 왔길래 판다고 말했답니다
집 팔아 시원스레 빚갚고
어차피 마약과 알콜 중독자 회복을 위해
그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가 함께 살면 선교 활동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집 팔기로 결정한 내게 적쟎은 위로가 되었답니다
주님!
근데 뭔 일이래요
그리 갈등한 끝에 결단을 내렸으면
며칠은 시원해야 할 터인데 그리 결정한 순간으로부터
겨우 한 시간 정도 후련했을까? 그 이후부터는 영 아니올시다였으니....
남편은 돈에 관한한 내게 다 맡긴 상태이니
나 편한대로 하라 하는데 이 남편 내가 힘들게 살림 사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니 내게 집을 팔지 말고 지키라고 말할 사람은
더더욱 아닌 그 상황에 나는 참으로 나를 도와 이 집을 팔지 않도록
날 붙잡아 줄 그 한 사람이 그 순간부터 그립기 시작한데 겨우 일이분의
분초가 일이년처럼 길게 느껴지며 그 한 사람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게 아니겠어요?

주님!
그때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랬듯이 올 여름 대학교 졸업하자 마자
갤거리로 떠난 작은 딸에게 엄마가 집을 팔기로 결정했다고 전화하였답니다
그 말에 딸은 엄청 노하며
자기가 집으로 돌아 가 엄마를
도와 줄터이니 집을 팔지 말라는 것이였어요
작은 딸의 그 말 한마디가
어찌나 내게 힘을 실어 주던지
시니어 라바이에게 다시 집을 안팔겠다고
의사를 전달하니 이 양반 꼭 사고 말겠다는 집념속에
거듭 거듭 찾아 오는데 왜 그리 거절하기도 안 쉽던지요
자기네들이야말로
아브라함 후손이라고 자긍하는 그들앞에
우리가 얼마나 아브라함을 사랑하는지 아냐
우리 할아버지도 아브라함이라며 피차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그들이나 나나 삶으로 보여주는 상황에서 판다 했다 안판다 말할려니 이 인격이
어찌나 힘이 들던지......(그들의 삶은 우리보다 더 인격적인 아름다움이 있지요)
결국
남편이 옵션이란 법망을 통해
미스터 그린의 변호사가 포기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하게 되여
피차 인격의 데메지 없이 아브라함의 자손들답게 사건을 마무리 하게 되었답니다
(그 사건을 마무리한 뒤 미스터 그린은 곧장 이스라엘에 볼 일이 있어 떠났고요)

한갖 집 파는 문제를 놓고도
이렇듯 한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거늘
하물며 울 하늘 아빠 당신이 그렇게도 당신의 품을
두고 사랑하는 지상의 단 한 채의 집,단 하나의 예루살렘 성
단 하나의 예루살렘 성전을 심판해야 하는 대사건 앞에서야 그 심판을 막아 줄
한 사람이 오죽이나 그립고 그리우면 예레미야를 시켜 그 한 사람을 찾아 보라 싶습니다
내가 이렇게 내 집과
내 집을 사려는 시니어 라바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는데에는
집이 중요한게 아니라 이 집이 이스라엘과 이곳에 주거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선교 전략을 위한 영적 구축지로 견고하게 세움을 입느냐 마느냐의 절박한 순간들을
보여주기 위해였답니다
그까짓 집 파는게 뭐 그리 어렵고
그까짓 집 있고 없음이 뭐 그리 장황한 이야기감이 되겠습니까?
내가 이 집을
시니어 라바이에게 다시 판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판다는게 아니라 십자가 군병의
진지를 적에게 넘겨 주고 후퇴하는 격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내가 그토록 한 사람이 그립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지켜줄 수 있는 한 사람이 그립다는게 아니라
나와 함께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전략적인 요새로 이 집을
영적 진지로 구축화시킬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주님!
근데 그 한 사람이
바로 내 작은 딸이 되였다는게 참으로 놀랍습니다
작은 딸이 극상품의 포도로
엄마에게 다시 돌아왔다는게 얼마나 소중한 감사가 되는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주신 주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놓습니다
주님!
작은 딸이 오겠다는 팔월말보다
일주일 지체되어 돌아 온 그 날 밤
둘이 함께 유대인 회당을 도는데 내 느낌이 어떠했는지 아십니까?
천천만만을 거느리고
그리스도의 영광된 빛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이스라엘의 오래된 숙적인 사단과 싸우는 기분이였답니다
주님!
당신은
그 때 아무리 그 한 사람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하여 결국 당신 스스로 그 한 사람 되여
이 땅에 오셨음을 깨닫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다녀가신 이후로는
당신이 그리도 찾고 찾는 사람들이 때마다 나타나
당신의 진노를 거두도록 살펴 드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치 내가
무너져내려가는 것을
막아 줄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그리운 순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는 아버지 눈에
찾은 바 된 그 한 사람으로서의 작은 딸을 내 곁에 보내 준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유대인들은
아직도 알지 못하는 대상에게 예배하나
나는 당신으로 인하여 아버지를 알고 예배하는 자로
새롭게 유대인 회당앞에서 세움을 입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
주님께 간절히 비옵는 것은
내 곁에 그 한 사람으로 찾은 바 된
내 작은 딸이면서도 종내는 당신의 딸인 크로이를 축복하소서
나로 인하여
아니 당신의 왕국을 위하여
자기의 가야 할 길을 포기하고
이곳에 내곁에 잠시 돌아 온 그 딸을 당신의 눈동자로 품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