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인
작성자명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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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9.13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남편보다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마음에 품어 행음하겠지만,
남편보다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 없다면 그의 마음은 항상 남편을 품고 남편을 좇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보다 항상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은 진실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아니라고 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사람은 아무리 좋아도 자기가 먼저고 남편은 그 다음인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자기보다 남편을 먼저 그 위에 둔다.
남편을 먼저 위에 두지 않으면, 그 사람은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인과 같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인을 보면 자기 위에 머리가 되는 남자가 없기 때문에
항상 그 자신이 그 머리가 되고 또한 그 자신이 그 몸이 된다.
혼자 그 머리가 되고 혼자 그 몸이 되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그 사람은 남자 여자를 혼자 다 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 남자 여자를 다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은 참으로 다른 사람이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이 필요 없는 것은 참으로 그 사람은 그 혼자만으로도 그 자신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충분하다는 것은 참으로 그 사람의 능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기에게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란 자기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기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자기와 연합을 해도 다른 새로운 것을 기대할 것이 없다.
같은 성질은 계속 같은 성질만 낳을 뿐이며 새로움이 없어 정지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자기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과의 연합은 참으로 다른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다른 새로운 것은 또다른 새로운 것을 낳으며 그것은 항상 새로운 창조가 된다.
새로운 창조란 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사람을 흥분시킨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은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것이며 행복감 마저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런 행복감이 없다면 사람이 무슨 재미로 살 것이며
재미 없는 삶에서 사람이 어떻게 삶의 좋은 결론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삶의 좋은 결론을 기대할 수 없다면 사람은 그 앞을 내다볼 수 없고
그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그 희망이 없는 절망인 것이다.
절망이란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으로 충분히 삼킬 수 있는 적이다.
적은 참으로 무서운 대상이다. 그러나 그 적이 무섭지 않다면 이미 그것은 적이 아닌 것이다.
적이 아닌 것을 가지고 적으로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물리치려고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웃기는 헤프닝이 아닐 수 없다.
웃기는 헤프닝은 그냥 웃는 것으로 끝나면 되겠지만
그러나 그 과정에 있어서 참으로 그 적으로 생각하고 그 적을 물리치는데 온 힘을 다해 쏟는다면
그 쏟는 힘이 참으로 적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까지 다 쏟아야하는 것이므로
그 쏟는 힘을 보면 참으로 그 사람이 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평소에 그 사람에게서 볼 수 없는 그 젖먹던 힘까지 다 쏟아내는데
그 쏟아내는 힘이 어떤 경우에는 그 적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큰 힘으로 나타나서
참으로 그것이 사람의 힘이 아닌 것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의 힘이 아니라면 귀신의 힘이든지 하나님의 힘이든지 할텐데
하나님의 힘이라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힘이 될 것이고
귀신의 힘이라면 그것은 세상에서 두번째로 무서운 힘이 될 것이다.
힘이라는 것은 자기보다 세다고 하는 것이 증명되지 않을 때, 그 힘을 겨루어보는 것이지
자기보다 세다는 것이 증명이 되면
그 힘은 결코 자기에게서 그 힘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는 힘은 벌써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아는 자신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아래에 놓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도록 그 자신 스스로 상대방에게 자기 자신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허락하는 자신은 스스로 생각해도 자기 자신이 밉다.
그 미운 것이 참으로 자기 자신을 허락한 것이 아니라
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굴복시켜 스스로 그 자신을 자신이 내어주었다는 사실 때문인 것인데
그렇게 내어준 자신은 참으로 그 자신의 뜻이 아니다.
그 자신의 뜻은 따로 있고, 그 자신을 움직인 그 힘이 바로 그 뜻인 것이다.
그 뜻을 보면 참으로 그 뜻은 힘이 있어보인다.
그 힘이 진짜 그 힘으로 나타날 것인지 나타나지 않을 것인지는 나중에 두고 볼 일이지만
그러나 그 뜻을 세우는 순간 만큼은 참으로 그 힘이 느껴지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힘이 없으면 결코 그 뜻도 세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힘도 없으면서 세우는 뜻은 그 듣는 사람들은 고사하고,
뜻을 세우는 본인 조차도 그 뜻이 참으로 그 자신에게 허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자신 스스로 힘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 본인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는 힘을 어찌 다른 사람이 모를 수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참으로 그 힘을 겪어본 바가 없어서라는 말이 맞겠지만
그러나 사람이 꼭 겪어봐야만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꼭 겪어보지 않고도 그 비슷한 경험만으로도 사람 속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사람은 거기서 거기라 그 비슷 비슷한 경험들은 다 한가지씩 하고 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비슷 비슷한 경험으로 치면, 참으로 사람은 입으로 다 말할 수 없는 그 많은 사연들이라는 것인데
그 많은 사연들 중에 어찌 그 한 사람만의 것이 있어서
사람들은 그 한 사람을 참으로 모르는 척, 참으로 처음 보는 것인 양
그렇게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 한 사람을 그렇게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상한 눈이 참으로 이상한 것은
시람을 그렇게 겪어보고도 세상에 처음보는 사람도 다 있다는 듯이
사람을 그렇게 경계를 하고 사람을 그렇게 의심을 하고
사람을 그렇게 자기와는 도저히 상종치 못할 그런 사람으로 하나같이 다들 꺼린다는 것인데
그 꺼리낌이 진정 그 사람이 꺼려져서 꺼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 꺼리는 것이 참으로 그 사람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같이 하나씩 똑같이 있는 것들이라서
그 있는 것이 자기들 속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도 다 볼 수 있게 그 모습을 그 형체로 그 표적이 나타내주고 있으니
거울처럼 뚜렷한 자기들의 그 모습을 참으로 그 자신들이 보기에도 싫어서
거울을 깨버리듯이 그렇게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그 표적을 향해 그 자신들의 굳은 돌을 던지는 것인가?
사람이 사람을 향해 왜 돌을 던지게 되는 것인가?
사람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참으로 자기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바로 눈앞에 보여도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참으로 몰라서도 돌을 못던진다.
그런데 사람이 돌을 던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그 표적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참으로 알고 있다는 뜻인데
참으로 안다는 것은 참으로 그 사람의 마음속에도 정확히 그 정체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해주는 그것이 바로 그 자신의 몸으로 다 말을 하고 있건만
참으로 그 자신은 참으로 그 표적을 비켜갈 수 있는 그 무엇인양 참으로 혼자 고고하게 그 자신 서 있으니
그 고고한 것이 참으로 우습기도 하고 한편 가엽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표적이 참으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가 들리는 것인데
그 들린 인자는 아래로 고개를 숙여야하고, 그 고고한 자는 위로 고개를 쳐들어야 서로 눈이 마주치는 것이니
서로 눈이 마주치지 않고서는 사람이 서로 그 마음을 알아볼 길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서로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서로 그 눈을 봐야하고
서로 그 눈으로 그 마음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상대방에 따라 상대적으로 움직인다.
상대방이 강하게 움직이면 그 자신은 참으로 약해지고
그 자신이 강하게 움직이면 상대방은 참으로 약해지는 것이다.
서로 그 약해지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참으로 그 상대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인데
그 알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참으로 그 상대방은 어디에서 그 힘을 얻어 그 자신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참으로 다른 무엇으로 그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직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그 가진 것에 대한 믿음, 그 믿음이 그 자신을 형성하는 것이며
그 형성된 자신을 가지고 사람은 이 세상을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바로 그 자신 하나에 달렸다고 하는 것인데
그 달린 것이 그 자신에게 달린 그 가진 것인가, 아니면 그 자신이 달린 그 하나님인가 하는 것은
바로 그 자신 어디에서 그 힘을 받는가 하는 바로 그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 문제는 참으로 우리의 그 믿음의 문제라는 것인데
그 믿음의 문제가, 참으로 그 사람에게 달린 그 가진 것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달린 그 하나님께 있는 것인지
그 말하는 대로 우리들교회가 받는 그 힘이 참으로 그 하나님께 받는 바로 그 힘이라면
나는 참으로 내 자신이 받는 그 힘으로 진정 우리들교회에 한번 묻고 싶다는 것이다.
아니, 나는 우리들교회의 그 머리되는 담임목사에게 한번 묻고 싶다.
목사가 자신의 받는 그 힘이 참으로 하나님께 받는 바로 그 힘이라면
왜 지금까지 3년 반이 넘도록 그 자신의 교회를 대적으로 삼아 대치되고 있는 이 사람을
바로 쫓아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 자신의 교회로 흡수시키지도 못하고
계속 그 대적의 상태로 남겨두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는 것인데
만일 이 사람이 그 대적이 아니라면 목사는 이 사람과 한번 눈이라도 마주쳐볼 일이요
만일 이 사람이 그 대적이라면 그 또한 목사는 이 사람과 한번 마주쳐 그 눈싸움이라도 해볼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자신이 받는 힘이 참으로 하나님께 받는 바로 그 힘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건만
우리들교회는 그런 내 자신을 다른 것으로부터 받는 힘이라 의심을 하고 또 경계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내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그 힘으로 선 사람인지
아니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으로 힘을 받아 선 사람인지
참으로 내 자신이 목사와 겨루어 한번 스스로 내 자신을 확인해보고 싶은 것은
나는 목사와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목사와 같이 내 자신이 바로 그 하나님의 힘을 받는 사람이라면
그 힘은 참으로 서로 같은 힘이기 때문에
그 힘이야말로 서로 합하여 함께 일어날 수 있는 바로 그 부흥의 힘이요,
만일 내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으로 힘을 받는 사람이라면
그 힘은 어쩔 수 없이 목사에게 약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귀신의 힘일 것이기에
그 힘 때문이라도 내 자신 굴복시켜 어찌 목사에게 내 자신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허락하는 것이 참으로 내 뜻이 아니라 힘이 없는 까닭에 강제로 움직여진 그 목사의 뜻이라서
못내 자존심이 상하고 분하여 견딜 수 없다면
내 자신 스스로 목사와 떨어져 내 갈 길을 가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나 역시 이 세상에 의지할 데가 없고 기댈 데가 없는 처지라
내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그 공동체에 내 자신을 종속시키고 충성하고 싶다는 것이
바로 그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그 진심도 있는 바
나는 우리들교회의 그 머리되는 담임목사의 눈과 진실로 한번 마주쳐보고 싶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