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오후 두시쯤
도매상 가기 위해 캐쉬대에서 내려와
가게 문 밖으로 나오는데
집사님! 신발 신고 가야지요 라는
정 아 집사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하여
내 발을 보니 어머야 양발만 신은채 나온 것이 아니겠어요
(내가 정신없이 그럴때면 정 아 집사님이 신발 신고 가라고 챙겨주었거든요
여러모로 챙겨주었는데 지금은 교회와 수요 큐팀모임을 위하여 토론토로 이사
가서 넘 많이 생각나지요.)
다행인가?
불행인가?
벗은 발도 아니고
목도 마르지 아니하여
적쟎이 위로는 받았지만
느닷없이 고인이 되신 친정 어머님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겠어요?
갑자기 가해지는 폭격에
버선을 신고 피신하기 위해
급히 버선을 찾는데 한 짝은 영 찾을 수 없어
폭격이 끝나는대로 다시 방안에 들어 와 찾아 신기로 하고
한 짝만 신고 나온 것이 북녁 고향 집에서의 마지막 순간이였노라던 어머님이 떠오르더라고요
(1.4 후퇴 이야기)
동시에 사회적인 분배와 평등이란
푸른 나무 아래 절하기 위해 하나님을 떠난
나의 북녁이 너무나 오래간만에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제는 내 분수를 알고
내 한계를 알고 다 잊어버리고 사는 줄 알았는데 말예요
그래서인지 그동안 예레미야를 묵상하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예레미야 3장 18절을 읽을 때였어요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
말씀을 읽는 첫 순간
나는 여호와로 인해 남과 북이 함께
동행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였어요
혹여 너무나 고대하던 것인지라
신기루같은 착시 현상이라해도 주안에서
내 그리 믿는 것을 금할 세력이나 사람이나 영들은 없다고 보네요
그러고보면 예레미야는
내 지역 내 교회 내 발등의 불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나에게 잠시만이라도 북녁 동포들과
지하 교회가 당하는 온갖 고난의 상처들을 보도록 만들고 있지 않나 싶네요
또한 남한은 북녁의 재앙을 경고삼아
맘몬과 쾌락과 편리함과 사치와 헛된 온갖 영광으로부터
돌이킴으로 유다가 이스라엘의 패망을 보면서도 더 패역했던 그 범죄를 상쇄시킬 수 있는
영적 저력을 하늘의 천군천사들과 온 세계 열방들에게 보여 주길 간절히 빌고 비는 바이네요
그리하여 열방들이
내 조국 여호와로 인하여 복을 받고
그 여호와로 인하여 자랑하는 역사가 나타나길 고대해보네요
주가 생명을 속전으로 내 놓아
자유케하신 조국 교회의 자유를
지식과 명철의 말씀으로 양육받지 못해
다른 영이나
다른 복음이나
다른 예수의 씨종이 되거나
남의 사상이나 논리나 주장에 종이 되거나
정치나 권세나 명예나 이권이나 재벌의 종이 되여 조국 교회가
조국의 구심점 역활을 상실하게 된다면
나의 조국은 정말 불행해 질 것이예요

저
그저 내 주제를 알아
내 이웃의 패망을 보며 나 한 사람만
맘몬과 성공과 야망과 명예란 푸른 나무 아래
절 안하면 되지 뭐 그리 거창하게 조국은 들먹거리는지 모르겠네요
실로 정직과 성실보다는
물질과 다급함을 우선시하던 그 부끄러운
것으로 인하여 내 양심이 삼킨바 된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다행히 진리의 영으로 인하여
깨닫게 하사 진노중일찌라도 진멸당하지 않고
오늘 이렇게 살아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때문에 나는 이 순간 희망의 정의를 새롭게 조명해보네요
희망이란 진노중일지라도 진멸당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고.....
나의 조국이 분단이란 진노중일찌라도
진멸당하지 않고 있는 이 상태야말로 희망의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네요
나와 나의 조국이
지식과 명철을 쫓아 양육받기보담은
성공과 부와 복을 좇아 양육받기를 좋아한고로
내가 모태에서 조성되기 전부터 내 열조들의 산업은
삼킨바 되였고 수많은 가정들은 이산 가족으로 삼킨바 되고
수많은 아들들과 남편들이 전쟁에 삼킨바 된 나의 조국이였음에도
아직도 생존하고 있는 나의 조국이 있어 주께 감사드리는 밤이네요
한편
진노중일찌라도
진멸치 아니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오늘따라 정직과 공의를 행하는 한 사람을
데리고 오라 하는데 나는 누구를 데려가야 할까요
아하!
나는 내가 그 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게 무척이나 애닯은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