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셀 때까지..
우린 그런 경험이 많다.
하나,둘, 둘의 반, 둘의 반의반, 둘의 반의반의 반..
그러면서 차마 셋은 세지 못했던 일.
셋 셀 때까지 말안들으면 몽둥이 찜질을 할 것이라 말은 해놓고,
차마 셋은 세질 못하는,
우리 어릴 때 어른들이 우리에게 그러하셨듯,
우리 역시 자식들에게 그렇게 하며 살았다.
그래서 차마 셋은 세지 못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많이 있었다.

- 해운대 인근에 이런 멋진 곳이 아직도 있답니다 -
자식넘들이, 자식이라고 하는 넘들이
좀 눈치를 채줬으면 좋겠건만,
그래서 몽둥이 찜질을 하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건만,
눈 내리깔고 날 잡아잡수소 하고 덤벼들 때는 기가 찬다.
어이가 없다.
그럴 땐 도리없이 몽둥이를 들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이 바보같은 것이, 이 둔한 것이, 이 미련한 것이..
아버지 마음은 그렇다.
애비 마음은 그렇다.
말은 험하게 했어도 몽둥이를 들고싶지 않은게다.
들고싶지 않은 몽둥이.. 그게 바로 애비 마음이다.
오늘 예레미야 5장 1-11절을 보며, 들고싶지 않은 몽둥이를 묵상한다.
하나님이 그러셨다.
이스라엘에게, 남국 유다에게 몇번이나 경고를 하셨다.
거듭거듭 주의를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치없는 이네들이 계속적으로 범죄를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너희중에 한사람이라도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한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그 한사람을 봐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익스큐즈하시겠다는 하나님,
아버지 마음이다.
절절한 마음이다. 애절한 마음이다.
몽둥이가 옆에 있지만, 그 몽둥이를 들고싶지 않은 아버지 마음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본다.
심판보다는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사랑하시기에, 채찍보다는 사랑으로 안아주시기를 더 원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그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본다.
나의 죄, 나의 실수, 나의 많은 허물을 보시면서도,
그것때문에 진노하실 구실을 만드시는게 아니라,
그중 하나라도 끊으면 그것을 보아 용서해주시려는 하나님,
익스큐즈해주시려는 하나님,
나에게 몽둥이를 대고싶지 않은 하나님, 그 하나님을 본다.
오늘도 그 하나님을 바라며 하루를 연다.
오늘 토욜의 이 하루도,
눈치없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고집센 탕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부르며 또 하루를 연다.
잔뜩 흐린 하늘, 금방이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