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만큼 장성하였으면 성경대로가 아니라 자기 믿음대로!
작성자명 [류혜숙]
댓글 0
날짜 2009.09.07
리브가는 아브라함도 이삭도 본 적이 없다.
결혼을 하려면 당사자를 봐야하는데, 그 부모라도 봐야하는데
그러나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보낸 늙은 종, 그 엘리에셀 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다.
단지 그 한 사람만 보고, 단지 그 전하는 말만 듣고
자신의 일생 일대의 중요한 결혼문제를 결정해야하는 순간이 리브가에게 온 것이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순간이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인생 전부를 망가뜨리는 수가 있다.
그러니 어찌 그 종의 말만 듣고 덥석 결혼하겠다고 그 종을 따라나설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리브가는 참으로 깊이 잘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그 늙은 종, 엘리에셀을 잘 살펴보아야한다.
자기가 결혼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 유일한 실마리가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전하는 말을 곱씹고 또 곱씹어 보아야한다.
참으로 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 어떤 확실한 믿음이 없이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그 종의 말이 다 참말 같아도 만에 하나 거짓이 담겨있다면
그때부터 리브가의 인생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늙은 종을 따라나서는 그 길이 확실하고 완전한 자기의 보장이 될 수 있는 길인지
아니면 그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참으로 알 수 없는 깊은 어둠의 길인지
그 모든 것을 확실히 하지 않고서는
리브가로서는 결코 안심하고 그 종을 따라나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브가는 어떻게 해야 그 모든 것을 자기에게 확실히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그 늙은 종이 진정으로 진실하게 자기의 전할 말을 잘 전하고
또 성심을 다해 그 주인의 받은 신령한 복을 잘 설명한다고 해도
그 속에 있는 진실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그 늙은 종이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리브가는 자기 마음의 확실한 증거를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브가는 참으로 무엇으로 자신의 확실한 증거를 삼을 수 있단 말인가?
할수만 있다면 그 늙은 종의 뱃속을 한번 갈라봤으면 좋겠다만, 그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므로 리브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 늙은 종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의 전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참으로 그 얼굴이, 그 눈빛이 진정 그 마음에서 나오고, 그 심장에서 나오는 말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불순함이 섞여 마음 속을 흐려놓는 것은 없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그 마음속을 깊이 헤아려본다면,
그 헤아림으로 리브가는 자신의 알 수 없는 마음속까지도 또한 깊이 한번 헤아려보는 바가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늙은 종의 말이 담고 있는 그 어떤 진실이 참으로 진정성 있는 진실이라면
그 진실은 분명 리브가의 그 마음속을 뚫고 들어가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고 깊이 그 또아리를 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브가는 진정 믿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라도
진정 진실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라도
그 늙은 종의 전하는 말에서 자기 마음속을 뚫고 들어온 그 어떤 진실, 그 어떤 느낌,
온통 밤바다 같은 자기마음속을 환하게 비춰주는 그 어떤 작은 등대불빛 같은 그 빛줄기 하나만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리브가는 자기 마음속에 충분한 증거를 삼고 그 증거를 믿음으로써
다른 것은 다 뒤로하고 기꺼이 그 늙은 종을 따라나설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믿음이란 다른 어떤 외부에 있지 않다.
결국 자기의 믿음은 자기 마음속에 있고,
자기 마음속에서 자기 믿음에 대한 확신을 스스로 굳게 가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늙은 종에게 그 뒤로 어떤 의심스러운 것을 혹 발견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리브가는 자신의 그 믿음으로 그 늙은 종을 바라보게 되고
그 바라보는 것이 자기 마음속을 뚫고 들어온 그 진실로서 그 늙은 종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리브가가 그 늙은 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리브가 속에 있는 그 진실로 리브가가 그 늙은 종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진실로 바라보는 눈을 우리는 바로 그 믿음의 눈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어떤 사람도 믿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자기의 믿음 안에서 바로 세워진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 한 사람이 된 그 사람이야말로 자기에게 보내신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요,
그것은 바로 자기에게 그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믿음의 눈을 갖지 못한 자는
그 어떤 사람도 자기와 상관이 될 수 없는 세상의 다른 이방사람이 되는 것이요,
세상의 다른 이방사람이란 그 어떤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자신이 이방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을 이방사람이라고, 자기와 상관없다고 내친다면
그 내침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없는 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그 입으로 주여 주여 하고 부른다고 해도
주님이 그와 무슨 상관이 있어 그의 부름에 친히 대답하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