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씩 테레비에서 극화 < 사이렌 >을 본다.부산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해서 다룬 범죄극화다.그걸 볼 때마다 느낀다.죄지은 사람, 범죄를 한 사람이 수치를 모른다는 것을..당연히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고 어쩔 줄 몰라해야 하는 상황인데,그래도 부족할 판인데,오히려 화를 내고 위협을 하고 공갈을 한다.그것도 모자라 돈을 요구한다.응하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이상하다. 고개를 갸우뚱한다.아닌데, 저게 아닌데..저건 저러면 안되는 건데..하지만 그게 통하지 않는다.모든 범죄가 다 그런 맥락으로 흐른다.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말하는 대신,오히려 화를 내고 공갈을 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세상..그럴 때마다 전율을 느낀다.몸이 마비가 되는 것같은, 100만 볼트 전기에 감전된 것같은 무서움이 온몸을 휘감는다.오늘 예레미야 3장 1-5절을 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너는 그렇지 아니하냐.너는 수치를 느끼고 있느냐.죄를 짓고 얼마나 부끄러워 하느냐, 얼마나 힘들어 하느냐..그런 말씀을 하신다.말 한마디,행동 하나가 문제가 아니다.생각까지도, 생각으로 하는 죄악까지도 다 카운팅하시는 하나님..그 하나님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며,그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끄러움을, 수치를 느끼느냐고 물으신다. 북국 이스라엘이 그랬듯, 남국 유다가 그랬듯그리고, 지금 이 땅을 사는 뒷골목의 사람들이 그렇듯,나 또한 부끄러움을,수치를 모르는 뻔뻔스런 양심을 가지고 있진 않으냐고 물으신다.부끄러움에 대해, 수치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냐고 물으신다.오늘도 하루가 밝았다.부끄러움을, 수치를 알게 해달라고,그것을 아는 밝은 마음을 잃지않게 해달라고 또 아버지를 부른다.사람이기에,한계가 많고,발을 이 땅에 딛고 있고,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이기에,때론 실수하고 잘못을 범하고, 그리고 또 고범죄를 반복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그래도,그때마다 수치를, 부끄러움을 잃지 않는 양심을 갖고싶다.그 양심 하나만은 간직하고 싶다.그래서 또 아버지를 부른다.아버지의 영에게 나를 맡긴다.오늘도, 이 하루도, 이 한 주간도수치를 알게 하소서, 부끄러움을 알게 하소서.선한 양심, 맑은 양심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이런 기도로 또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욜의 이른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