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찰 때리는 목자 이야기
작성자명 [김성희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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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9.06
(예레미야 2:21)
나는 너를 종자가 아주 좋은, 제일 좋은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어떻게 하여 네가 엉뚱하게 들포도나무로 바뀌었느냐?
2주전 토요일과 지난주 화요일 아내를 때렸습니다.
내가 원하는 시각에 집을 나서지 못하는 아내에게 화를 내며 고함을 지르면서...
나의 약점과 상처이자 아내를 힘들게하는 부분은 약속시간(예배 시작시간, 아이들 어린이집버스 도착시간, 모임 약속시간, 출근시간 등등)을 지키지 못하게 될 때 안절부절 못하고 병적인 화를 내는 또 다른 내가 있습니다.
우리 큰 딸 나이 때인 시골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읍내 학교에서 있을 군지역 어린이 미술실기대회를 준비하던 나는 대회 전날 학교에 나가 최종 연습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만 학교 정문에 도착하고 보니 약속시간보다 불과 몇 분 지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안에 견딜 수 없는 불안으로 휩싸여 실기도구를 다 내팽개치고 학교를 나와 버렸던 일이 너무나 생생한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내가 5살 때부터 구구단을 외우게 하시던 육신의 아버지는 항상 내게 ‘우리 집안 장남인 너는 커서 판검사가 되어야 해’ 하시며 훌륭하게 자라고, 남에게 절대 피해주면 안된다고 줄기차게 가르치셨으나,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이 때부터 단 한 번도 나를 안아주시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 시대 아버지들의 공통된 모습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태도가 시간약속을 못지키는 것이 남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일로 여기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제가 사춘기 때 여러 가지 생활고 때문에 어머니에게 자주 폭력을 가하고 고함지르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엎드려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때까지도 우리집안은 예수님을 모르는 불모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공동체에 와서 보니 육의 아버지 또한 불쌍하고 상처입은 한 아들이었음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 아들은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 는 목사님 어록처럼.
언젠가 장남인 아버지는 당신이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학대한 일들을 내게 말씀하신 일이 있었는데, 그 정도가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말씀처럼 내가 제일 좋은 포도나무인데, 나의 상처 때문에 현재 들포도나무라는 성향을 보이며 아내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나의 존귀함’을 회복하는 것이 참된 복인데, 가정폭력에 상처입은 내 속의 내가, 시간약속 지키지 못할 때 오는 두려움의 그 아이가 내 속에 남아 지금의 아내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 쓴 뿌리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종자가 아주 좋은, 제일 좋은 포도나무’라고, 내가 존귀한 자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상처 입은 내 속의 또 다른 나에게 육의 아버지가 나에게 그리하셨듯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고, 나를 어루만져주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느혜미야(4:1~14) 설교 하실 때 가족의 구원을 방해하는 세력은 나를 조롱하는 가까운 식구들일 수 있지만 가장 무서운 세력은 내 속의 조롱과 비웃음이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합니다. 나에 대한 열등감으로 나를 조롱하고 비웃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대처하고 온전한 구원을 위한 방법은 ‘주 앞에 내 악을 덮어두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으니, 어제 목장에서 오픈하고 목자로서 목원들로부터 수치를 당할 각오로 적용하며 오픈 하였습니다.
오로지 공동체의 기도로, 말씀의 무기로 내 안에 방해를 제거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가계의 저주를 주께서 끊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목장 닉네임도 ‘가식덩어리 목장’으로 정하자고 하면서 목원들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한 분은 “맞습니다. 지금 내 모습의 80%가 가식입니다.”하시고, 또 한 부목자님은 “저는 95%가 가식입니다.”하시며 가식에서 자유로운 분은 아무도 없다고 해서 우리들을 모습을 담은 대명사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나 때문에 수고하는 목원들 생각하면 내가 교회에서 치리를 받아도 10번을 받아도 모자랄 존재입니다.
자존심과 상처로, 우울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우리목장 A집사님, 도망치고 싶은 지금의 환경이지만 어제 목장에서 울면서 고백했던 그 상처를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고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집사님.
나의 수치를 ‘큐티나눔’이라는 십자가에 높이 매어 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2:20)
그리고
“내 영혼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를 가장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