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과 웅덩이
작성자명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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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9.04
물을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샘에 가면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웅덩이(항아리)에 물을 채워 놓는 것입니다.
샘에서는 생수가 계속 올라옵니다.
아무리 물을 길어도 마르지 않습니다.
샘물은 퍼낼수록 맑고 시원한 물이 나옵니다.
웅덩이(항아리)에 물을 채워 놓고 물을 마십니다.
항아리에서 물을 얻으려면 미리 물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항아리 물은 제한되어있기에 많이 꺼내 쓰면 없어지기에
조금씩 아껴서 사용해야 합니다.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13)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두 가지 악 중에 하나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샘물과 같이 끊임없이 생수를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두 번째 악은 스스로 웅덩이(항아리)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물을 담아둘 수 없는 금이 간 항아리였습니다.
그 항아리에 물을 계속 부어넣지만 어느새 없어집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혼자서 살겠다고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공급을 끊어버리고 자신의 항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벌어서 항아리에 쌓아두었습니다.
그러나 금이 간 항아리는 조금 지나면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항아리에 채우는 것이 힘들어 지자,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항아리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착취하고, 속여 빼앗습니다.
힘이 약한 사람의 것을 빼앗기 위해 싸움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항아리에 담았지만 또 다시 빈 항아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에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마찰이고 다툼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살 수 없기에 계속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것이 지속적으로 악을 행하는 이유입니다.
생수의 근원에서 단절되고,
자신이 준비한 금이 간 항아리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구조적으로 악을 행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구조적인 악에서 벗어나는 길은
금이 간 항아리를 깨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물이 나오는 샘터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오지 않아도
풍성하고 넉넉하게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였습니다.
하나님으로 풍성한 공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 독립하여 살겠다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고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14)
그로인해 가정은 깨어지고 주변 사람에게 아픔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마음에 하나님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을 행하는 것이요 그로인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열심히 수고해서 채우고 부어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을 따라 가는 것에서 돌이키기 원합니다.
금이 가고 깨어진 항아리에 애착하지 않기 원합니다.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아버지의 풍성함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기 원합니다.
오늘 바가지를 가지고 진 밖으로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하루 분의 만나를 가지고 옵니다.
내일 가면 또 가져올 수 있기에 하루 먹을 양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하루를 위해 하루 분량의 은혜를 기대합니다.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상대를 해하지 않습니다.
매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기 원합니다.
그 풍성함, 그 행복을 날마다 누리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