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기도를 해도 아플 때가 있다.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뼈빠지게 노력을 해도 이루지 못할 때가 있다.
원하는 성공은 오지 않고,
생각도 하기 싫은 실패만 닥칠 때가 있다.

- 진주에 가니 소나무 하나도 싱그런 아름다움이더군요-
그래서 자꾸 가슴이 터질 때가 있다.
갑갑한 마음에 마음 둘 곳을 찾지못할 때가 있다.
아무리, 아무리 아버지를 불러봐도 대답이 없을 때가 있다.
공중에 흩어지는, 메아리없이 산산히 흩어지는 소리뿐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침묵을 느낀다.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의 외면하심, 고개돌리심..
무섭다.
재앙보다 무서운 것,
폐허보다 무서운 것,
무엇보다 무서운 것, 더 무서운 것, 가장 무서운 것..
우린 그것이 하나님의 침묵임을 안다.
오늘 시편 74편 1-11절을 보며 더 무서운 것을 묵상한다.
시편기자는 말한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버리시나이까,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진노의 연기를 발하시나이까..
이렇게 부르짖는다.
어제 극동방송에서 칼럼을 방송하면서 예수님의 눈길을 얘기했다.
성도는 예수님의 눈길을 받아야 산다고 했다.
예수님 시대에 많은 중풍병자가 있었고,
귀신들린 자가 많았으며,
귀머거리, 앉은뱅이, 장님들 또한 많았었다.
죽은 자는 부지기로 많았고..
하지만 그들이 다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다 나음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예수님의 눈빛이었다.
예수님의 손길이었다.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었다.
그것을 받아야 했다.
그것을 입어야 했다.
그것을 받은 자만이 회복되었고 구원을 받았다.
그래야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의 눈빛, 사랑의 눈빛 한번 받으면 된다, 그때 문제가 해결되고 해답을 얻는다.
무서운 것, 더 무서운 것은
예수님의 눈빛을 받지 못하는 것, 예수님의 눈길 한번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 한번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만큼 불행이 없다.
그것만큼 안타까움이 없다.
그것만큼 답답함이 또 없다.
몸이 아프고, 물질의 어려움을 겪고,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분명 무서운 일이다.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예수님의 눈길을 얻지 못하는 것, 그분의 사랑의 터치를 받지 못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임을 깨닫는다.
오늘도 하루를 열며,
예수님의 눈길을 달라고, 사랑의 타치를 해달라고 또 부르짖는다.
그래서 내 부르짖음에 침묵하시지 말아달라고 기도드린다.
오늘도 이 하루도,
그렇게 또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수욜의 아침을 힘차게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