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불만
작성자명 [황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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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8.17
왜 왕들은 조상들에게서 교훈을 받았을 텐데 파멸의 길을 걸은건 지,
왜 하나님을 스스로 저버리는 길로 갔는지 생각해 봅니다.
엄청난 부와 권력, 아직 천국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영성도 체험을 통해 깊어 간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도 없이
어떻게 인간이 눈 앞에 보이는 안락하고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데,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승진되어서 믿을 수도 있는데 또 그렇게 잘 믿는 사람도 있는데, 눈 앞의 승진을 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잘못은 상대가 더 크게 했는데……, 내가 사과해야 하는가. 진정 마음이 복종되지
않는다면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상처에 고통받고 그 고통을 어찌할 수 없다는 분노와 괴로움을
말씀이 치유하는가? 시간이 가서 잊혀 지는 것이 아닌가. 등등
최근 남편의 외도로 고통 받은 당사자가 내 뱉은 말들입니다. 항상 과장된 몸짓을 남편에게
하고 아무 일 없다면서 술 마시고, 술 마시면 이야기하고, 그렇지만 교회에 나가고 성가대
열심히 봉사하고 그 이면에는 절대 치유되지 않는 남편에 대한 신뢰의 깨어짐이 있습니다.
그 분은 제 눈에 왕으로 보였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문제, 자기 연민, 그리고 인간에 의지하는
마음 그 밑바닥에는 자기가 편해야 하고 자기가 비참하지 않아야 하며 자신은 이런 대우를
받으면 안되며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내가 죽어야 되는 급박한 순간에는 남은 죽어도 된다는
세상적 가치관의 똥물이 가득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보지 않으니 주님이 주신 평강이 무엇인지 알 리가 없습니다.
변화를 해야 합니다.
그 마음의 상처가 낮지 않는 병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리고 해결책은 말씀이라지만 애써 말씀을
거부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사람이 알아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치유받을 수 있을텐데, 인내하질 못합니다.
믿음의 분량은 인내의 분량입니다. 나를 비난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어려운 환경에 있을
지라도 믿음으로 말없이 인내할 때 주님이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시는데.
우선 인내하지 못합니다. 혈기를 부립니다.
말씀을 전해주며 비슷한 경우의 살아난 이야기를 해도 자기의 고통이 절대치라고만 이야기를
합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나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 대화하면서 벽을 느낍니다. 요하스가 철저히 하나님을 버리는 길로 가서
망했듯이 망하지 않아야 된다고 말씀에 있다고 말해 주어도 믿질 못합니다.
참 답답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떨지 묵상해 봅니다.
그런 배신을 당하면 정말 말씀만 붙잡고 갈 수 있을까?
왜 나만 당하는 고통이냐고 주님이 동행함을 믿지 않고 외치면 결국 혼자 당하는 고통으로
끝나고 말며 그 고통이 주님이 더욱 가까이 하시기 위해 주신 것이고 그 치유하심을 믿으면
천국을 누릴 수 있다고 알고는 있는데.......
실제로는 자신이 없습니다. 주님과 가까워진다는 즐거움으로 가득해야 할텐데,
그 수준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말씀을 보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설령 기복적이든 기계적이든
더욱 철저히 말씀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변화되기를 갈망합니다
그 갈망은 저를 들뜨게 합니다. 마음을 급하게 합니다.
주님께 더욱 의뢰합니다. 세상의 돈, 사람, 쾌락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라
“날마다 조그만한 것이라도 적용하는 삶” 더욱 철저히 직원들에게 말씀 전하고 업무와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그래서 인내함으로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변하게 해 주심을 믿겠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글에서 변화를 위해 현재에 대한 “거룩한 불만”을 믿음으로 갈망해야 변할 수
있다고 하셨듯이 온전한 믿음을 위해, 삶의 변화를 위해 저의 현재에 대해 말씀에 의한 거룩한
불만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