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하는 사람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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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8.23
교회에서 지체들을 만나면 축복을 해주고 싶은 감동을 느낀다.
특히 갓난아이들을 보면 달려가서 안고 마음껏 복을 빌어주고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다가 문득 오바하는 건 아닐까.
실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성령의 감동이라고 확신이 들면 다가간다.
그리곤 안고 기도를 한다, 마음껏 복을 빌어준다.
내 어릴 땐 그런 기억이 없다.
교회의 장로님에게서 그런 축복기도를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몸에 익숙하지도 못하고 자연스럽지도 못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습을 한다.
그리스도인은 축복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임상에서 환자를 보면서도 문득 축복기도를 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삶의 문제, 질병의 문제로 고통당하는 영혼들을 볼 때
나도 모르게 내 속에서 감동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느낀다.
그럴 때 물어본다.
제가 축복기도 해드려도 좋겠습니까.
이제껏 아무도 거부한 적이 없다.
모두다 좋다며, 감사히 받았다.
간절히 축복기도를 드리면 눈물까지도 줄줄 흘린다.
하나님의 영이 감동하셨기 때문이다.
삶의 현장에서 그런 때가 많다.
자식들, 누워자는 자식들을 볼 때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머리를 만지며 축복의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케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복을 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복을 줄 능력은 없지만 복을 빌 권리는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축복할 수 있을 때,
내 눈이 살아있고 내 입이 살아있을 때,
아직 하나님을 부를 수 있을 때 마음껏 축복하는 연습을 한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축복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 고린도후서 13장을 보면서 축복하는 사람을 묵상한다.
바울은 축복하는 사람이었다.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이런저런 나무람도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는 축복하는 사람이었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한 사람이었다.
이제 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을 주신 것은 축복하기 위해 주신 것임을,
서로를 위해 마음껏 축복하고 감사하기 위해 주신 것임을,
그리스도인은,
축복을 받을 뿐아니라,
남을 위해 축복하는 사람, 축복을 연습하는 사람, 축복을 훈련하며 익히는 사람인 것을 안다.
오늘도 주일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교회에서 어떤 사람에게 축복을 할까, 할 수 있을까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주일의 아침을 또 힘차게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