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장 1-13절을 보며, 필요한 가시를 묵상한다.
가시는 다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몸이 아픈 것도,
어렵고 힘든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리고,
물질적 어려움을 겪는 것도..
우리 삶에 부딪히는 육체의 가시는 모두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있어서는 안되는, 없으면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여겨왔다.

- 섬진강 펜션 뒷편의 계곡이 아름답습니다 -
바울형님도 그랬던게다.
자기에게 주신 가시, 육체의 가시가 없어야 한다고, 없어져야 한다고 믿었던게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구했다.
없애달라고, 제거해달라고,
그렇게 간절히 세 번 간구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요한 가시라고, 있어야만 하는 가시, 없어서는 안될 가시라고..
그래서 제거해주지 않으셨다.
바울에게, 바울을 위해 그 가시를 남겨두셨다.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을, 하나님만을 붙들게 하시려고 그 가시를 남겨두셨다.
남들에게는 손만 얹어도, 손수건만 던져주어도 병이 낫게 했던 바울,
그 능력의 바울도, 정작 자신에게만은 어쩔 수 없는 가시,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
그것때문에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우린 안다.
바울이 바울될 수 있었던 것은 그 가시덕분이었다고,
그 가시의 찔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게 없었다면,
바울 역시 교만방자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고 말씀을 떠나고,
자기 잘난 맛에 취해서 생명을 잃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우리에게 꼭 불필요한 가시는 제해주시지만,
때론 있어야 할 가시는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그 가시때문에,
가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얻고,
하나님의 주신 생명을 잃지 않게 하시려는 섭리가 있으시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몸에도 육체의 가시가 현저하지만,
이제 그 가시조차도 필요하기에 허락하셨음을 알고 감사함으로 받는다.
이제껏 없이 해달라고, 제거해달라고,
나 역시 바울처럼 몸부림쳐댔었지만,
이제 그게 있어야하는 것이기에,
나에게 필요한 것이기에,
나의 생명을 위해 없으면 안되는 것이기에 허락하심을 알고 아멘으로 받는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사랑하는 백성에게,
사랑하시기에 허락하신 가시,
그 가시로 말미암아 더욱 겸허하고 진실하며,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하지만,
믿음에 대하여는 부요한 자로 만들어가시는 분이심을 또 한번 확인한다.
이사야서 말씀처럼,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내 생각과 길보다는 높고도 다르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닫는 금욜의 후덥지근한 여름날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