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타율
작성자명 [김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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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8.10
사람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야 철이 드나 봅니다. 7살에 왕이 된 요아스가 뭘 알았겠습니까?
장가들고 자녀를 낳은 후에, 성전을 중수할 뜻을 세우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이렇듯 때가 있습니다.
준비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요아스가 세운 성전중수 계획은 하나님을 위한 선한 일이었고,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호기있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모으고 수리할 돈을 거두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진행이 되지 않습니다. 왜 그를까요? 무슨 이유때문일까요?
본문을 잘 관찰해보면 몇가지 중요한 이유 혹은 결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가지 드는 생각은 여호야다의 역할, 제사장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 자발성의 결여등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여호야다의 역할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여호야다는 어린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습니다.
7살밖에 안되는 요아스가 장성하기까지 실제로 나라를 다스렸던 사람입니다.
물론 두 아내에게 장가들게 했다는 말씀의 뉘앙스를 통해 요아스에게 힘든 부분도 있을 법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성전중수와 같은 중대한 일에서 여호야다를 배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4절엔 요아스 가 사람들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12절은 왕과 여호야다 가 나란히 나옵니다.
무슨 일에든지 이런 원리는 적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야다를 제쳐두면 일이 안됩니다.
힘들 때 도움을 준 사람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나 혼자서 해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때론 여호야다가 귀챦아 보여도 그의 경륜과 지혜와 역할, 영향력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래도 그 일을 성공적으로 이룬 것은 요아스가 재빨리 여호야다의 도움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늘 묻고 도움을 청해야 하는 나의 여호야다는 누구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내 곁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의 권위와 영향력을 인정해야 할 사람을 제쳐두지 않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늘 도움을 구하는 겸손한 자세로 사역해야 겠습니다.
두번째 이유라고 생각되는 것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 대한 불신인 것같습니다.
7절에 보면 아달랴의 아들들이 전을 깨뜨리고, 성물들을 바알에게 바쳤던 일이 있습니다.
이 일의 하수인역할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하지 않았나 십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생명을 위협하는 마당에 누군들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성전이 퇴락하게된 이유를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불신이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본문을 세심하게 관찰하면 이런 것도 발견하게 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백성들에게서 돈을 거두는 것은 여러가지면에서 좋지 못한 방법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백성들에게서 성전수리를 위해 돈을 거둘 적격자가 아니었습니다.
신뢰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야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 일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는 백성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잘 세워야 합니다.
목적도 좋고 방법도 좋아도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누가 그것을 하느냐가 제일 중요합니다.
사람 세우는 일이 그만큼 힘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합니다.
세번째 이유는 성전중수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세는 누군가를 통해 거둬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일입니다.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은 성전세를 납부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무라고 해서 내기 싫어도 억지로 내어야 하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위대한 타율에 의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위대한 타율은 자발적 타율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스스로 선택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타율은 남에 의해서 마지못해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율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타율도 자율도 아닙니다. 위대한 타율입니다. 자율적 타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 기쁨으로 헌금을 드리는 원리와 꼭 같습니다.
십일조를 포함한 여러가지 헌금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러나 헌금을 드릴 때는 자원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헌금이 아닙니다.
성전건축헌금의 의미 또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전중수와 같은 너무나 당연한 일도 타율적으로 이루어 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율에서 자발로 바꾸자 백성들이 기쁘게 드렸습니다. 넘치도록 드렸습니다.
모든 일에 동기를 부여하고 목적을 설명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위대한 타율에 의해 모든 성도들이 기쁨으로 헌신하고 섬기는 공동체를 꿈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