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작성자명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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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8.13
우리들교회 알곡 앞에서 그동안 이 가라지, 참 말을 많이 했습니다.
혼자 말하고 혼자 듣는다는 것이
혼자 알고 혼자 깨닫는 도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인데
이 가라지, 그동안 그 도사 폼을 좀 잡았으니
우리들교회 알곡이 그동안 내 그 꼴불견을 다 참고 봐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내가 안 보고도 다 아는 것은
나도 우리들교회 그 알곡 같은 자리에서 그동안 25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 무슨 할 말이 있어 우리들교회에 내 할 말을 다 쏟아놓겠는가 마는,
그 할 말이 내 할 말이 아니라, 참으로 해야만 하는 바로 그 할 말이기에
그 할 말을, 나는 바로 내 할 말로 그동안 우리들교회에 그렇게 다 쏟아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내 할 말을 쏟아놓기 전에
내가 겪은 지난 날을 먼저 털어놓아야 했었지만
그러나 내가 내 지난 날을 돌아보려면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같이 관심을 가지고 내 지난 날을 함께 돌아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관심도 내 관심사가 되는 것이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도 않는데
내 무슨 의미가 있어 그 지난 날을 내 지난 날이라고 내가 다시 돌아본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그 지난 날을 내가 다시 돌아보고자 한다면
내가 나와 같이 같은 한 관심을 가지고 같이 그 날들을 돌아봐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내가 내 지난 날들을 내 지난 날로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니
그럴 때 그 지난 날에 내게 의미가 되고
그 의미가 다시 내게 그 지난 날을 참으로 사람답게 산 날로 그 의미가 다시 내게 부여된다면
그때 그 부여된 의미야말로 진짜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진짜 의미도 없이 내가 무슨 좋은 날을 보겠다고
그저 내 앞에 어떤 사람들이 앉아있다는 이유는 그 앞에 내 지난 날을 펼쳐 놓을 것이며
그리고 아무리 내 살아온 날들이라고는 하지만
내 지나온 날들이 다 내가 혼자서 지나온 것이 아닌데
그 지나온 일을 내 아무리 잘 펼쳐놓아도
그때 그순간에 있었던 일을 바로 그때 그 일처럼 그렇게 생생하게는 다 펼쳐놓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펼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그 일들이 대충 어떤 것이었는가 조금이라도 헤아려준다면
그 헤아림으로도 사람들은 내 속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것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데
그 일이 그렇게 어려워서 사람들은 내 속도 모르고 그렇게나 딴소리를 하는지요.
그 딴 소리가 참으로 나는 그 사람들 속이 어떤지 알겠던데
그 아는 것이 바로 그 속이 내 속이고, 내 속이 바로 그 속이다, 이말 인 것이지요.
왜냐하면 사실 사람 속은 들어가보면 누구나 다 똑같더라 이 말입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나도 그 속을 다 겪어봤다는 것 아닙니까?
사람이 그 속을 안 겪어보고 어찌 그 속을 알 수 있겠으며
겪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대충 겪었다는 것인데
대충 겪어도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라
그 속성은 하나같이 다 한 길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 한 길로 왔다가 사람이 일곱 길로 도망가면
그 일곱 길이 또 다같이 그 한 길에서 또 만난다는 것은
사람 인생이라는 것은 다 돌고 도는 것이라서
그 도는 길에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람이 만나게 될지 모른다, 이 말인 것이지요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고, 그 사람이 또 그 사람 같아서
참으로 그 한 사람은 참 변한 것 없이 참 그대로 사는 것 같지만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변함 없이 똑같은 모습으로 사는 동물이 아닌 것입니다.
동물이야 한결같지 않습니까?
그 한결같음이 때로는 지겹게 느껴질 정도로 변한 것이 없고
그 변한 것 없는 것이 항상 그 자리 그렇게 그 엎드린 꼴로 자기 모습 한번 안 바꾸고
그렇게 그자리에서 그렇게 일정한 꼴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나 어디 사람이란 동물은 그렇게 일정한 동물처럼 한결 같습니까?
그 한결같은 것이 만일 사람이라면,
진짜 사람은 재미없어 못사는 것입니다.
그 못사는 것이 진짜 못살아서 못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못살아서 못산다는 것입니다.
그 못사는 것이 입고 먹고 마시는 것이 없어서 못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 사람이 입고 먹고 마시는 것이 없어서 못산다는 것입니다.
그 못산다는 것은 진짜 사는데 못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지 못해서 못산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 살아있지 못한다는 말이 무슨말 인가 하면
그 살아있는 것이 살지 못해서 못산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살아있는 것이 진짜 살지 못해서 못산다는 것입니다.
진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짜 산다는 것은 진짜 살아있는 것이 그 진짜 사는 것을 입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 진짜 사는 것은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요
그 진짜 살아있는 것은 그 움직임을 움직이게 하는 바로 그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생명이 그 사람을 움직이고,
그 사람이 그 움직이는 삶을 살고
그 삶이 바로 그 사람을 나타내며
그 나타내는 것이 바로 그 살아있는 생명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 생명을 나타내지 못하고
그 생명이 바로 그 사람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 어긋난 생명, 그 어긋난 어떤 무엇이라는 것이지요
그 어떤 무엇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 어떤 생명,
생명은 생명인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꼭 필요치는 않는 그런 어떤 무엇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 어떤 무엇이 내 생명이라면
내 생명은 내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꼭 필요치는 않는, 그런 생명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생명을 그런 생명으로 본다면, 그 생명은 또 나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나를 어떻게 보는 그 생명은 또 내가 사는 그 인생은 또 어떻게 보겠습니까?
내가 내 생명을 보는 대로, 내 생명 또한 나를 볼 것이며
그 나를 보는 내 생명은 또한 내가 그 보는 대로 그 인생을 그 생명이 이끌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내 생명은 내가 보는 대로 그 생명이 되어 줄 것이며
그 생명은 또한 그를 보는 대로 나를 이끌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곧 생명이시니,
생명이 있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된 자이며
하나님과 함께된 자는 곧 그 생명이 살아있는 자이니
그 생명이 살아있으면 그것은 바로 그 생명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인데
그 움직이는 것이 그 생명이 움직이는대로 그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고, 다른 움직임으로 나타난다면
그 나타남은 바로 그 생명, 바로 그 하나님과 어긋난 움직임이라는 뜻이지
그 속에 그 생명, 그 하나님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눈에 아무리 그 움직임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에 어긋난 것 같은 행동을 보이는 자도
그 행동이 어긋난 것이지
세상에 살아있는 그 어떤 사람도 그 하나님과 함께 있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그 한사람 조차도 하나님이 지금그 뜻대로 움직이시며 지금도 하나님이 일을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것은,
그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일을 하시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읽고 그 뜻을 잘 생각해보라고 주신,
그 하나님의 말씀책에 글자로 적힌 그 문자대로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글자를 읽고 사람에 따라, 그 나라, 시대, 천차만별 다른 그 해석에서
다수가 동의하는 가장 주류, 가장 힘센, 가장 유명한 그 목사들의 그 해석 기준에 따라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말씀책을 기록하셨다고 하나
그 말씀의 내용을 어찌 미물 같은 인간의 좁은 다 알아들을 수 있다고
그 한권의 말씀책에 담아 다 쓰실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좀 헤아림으로서 볼 수 있게
그 키가 자라면서 조금씩 그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그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처럼
신혼에서 은혼까지 겉에서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그 속을 알아가는 부부관계처럼,
그렇게 알아가도 평생 다 모르는데
그래도 그만큼만 알아가도 사람으로서는 아주 잘 아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