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포라(diaphora)는 중요한 문제, 중요한 일이다.거기에 접두사 a가 붙으면, 중요하지 않은 문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된다.오늘 고린도후서 6장 1-13절을 보며, 아디아포라에 속하는 문제를 묵상한다.진리에 대한 문제는 디아포라다.그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양보할 수 없다.순교자들은 디아포라에 관한 문제에 양보하지 않으려고 목숨을 버렸다.우리도 그래야 한다.마땅히 그래야 한다.예수 그리스도외에 다른 것으로 구원얻을 방법은 없다.이건 우리가 목숨걸고 지켜야 할 디아포라의 문제다.하지만 아디아포라도 있다.성경에서 이렇게 저렇게 한계를 정해놓지 않고,우리의 신앙양심에 따라 행하도록 허락하신 문제다.부모를 공경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게 공경인가.매일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인가, 아니면 일주일에 한번 찾아뵙는 것인가..이건 성경에 정해져있지 않다.우리 각자의 신앙양심에 맡겨놓은 문제다.우린 이런 것을 아디아포라에 속한 문제라고 한다.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하는데 어디까지 지키는게 거룩하게 지키는 것인가.차도 안타고 걸어가는 것인가,밥 한끼 정도는 사먹어도 되는 것인가..이런 문제도 성경에 나와있지 않다.우리의 신앙양심에 맡겨진 문제, 아디아포라에 속한 문제다.사실 신앙생활하다 보면 아디아포라에 속한 문제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구약시대처럼 여자와 자지 않으면 간음을 하지 않았다고 보면 쉬운데,신약시대엔 여자를 보고 음란한 마음만 먹어도 간음이라고 친다.이럴 때 정말 간음에 대한 아디아포라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이것 역시 각자의 신앙양심에 따라 다를것이다.오늘 바울사도는 말한다.마음을 넓히라고,아디아포라에 속한 문제에 대해서는 마음을 넓히라고 했다.내식으로, 내 잣대로, 내 주관으로 남의 신앙을 정죄하지 말고 마음을 넓히라고 했다.넓게 생각하라고 했다.그러지 않으면, 속좁은 마음으로는내식으로 판단하고, 내식으로 정죄하면서나와 같지 않은 사람, 나와 다른 사람은 모두 꼽표를 쳐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성경은 말씀하고 있다.아디아포라에 속한 모든 문제는 덕을 세우는 방향으로 풀어나가라고,내 유익이 아닌 남의 유익을 구하는 방향으로 풀어가라고..고린도전서 10장 23-24절의 말씀이다.오늘도 하루가 밝았다.사도바울처럼 마음을 넓히고 싶다.예수님처럼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갖고 싶다.아디아포라에 속한 문제를 내식으로 고집하지 않고,덕을 세우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방법으로 품을 수 있는 바다같은 마음을 갖고싶다.그래서 밴댕이 창자가 되고싶지 않다. 진리가 아닌 문제에 고집쟁이가 되고싶지 않다.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또 아버지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