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극동방송을 통해 들은 얘기 한 토막.
어느 원로목사님이 후임목사님에게 하신 말.
내 평생 목회하면서 교회를 위해 저금통장 빼서 바친 사람 많이 봤다.
피를 뽑아서 바친 사람도 봤고,
집팔아서 바친 사람도 적잖이 봤다.
하지만,
성깔머리 뽑아서 바친 사람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 집근처에서 찍었습니다 -
그 설교를 듣고는 움찔했다.
헉, 나는 어떤가.
성깔머리, 더러운 성깔머리 얼만큼 뽑아서 십자가에 못박았던가..
오늘 고린도후서 5장 11-21절을 보며, 새로운 피조물을 묵상한다.
성경은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화평케하는 사람, 화목케하는 사람이라고,
화평하지 못한 곳, 화평이라곤 생각도 못하는 곳에 화평을 만드는 사람,
그렇게 하기 위해 새로이 지음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전에는 옳고 그른 것만 보였다.
그래서 한번 혈기를 내면 가당찮았다.
입으로 토해내는 말들도 센말이 많았다.
경상도 문디이들이 그렇듯 거칠고 강한 표현들이 많았다.
그랬다.
적어도 나의 자연인은 그랬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알고부턴 조금씩 조심을 한다.
매일아침 기도할 때 덧붙이는 말이 있다.
오늘 하루도 무리하고 악한 자 만나지 않게 하시고, 되지 않게 하소서.
무례하고 교만한 자 만나지 않게 하시고, 되지 않게 하소서..
악한 사람을 만나지도 않아야겠지만,
나 자신 그런 사람이 되지도 않아야된다는 말씀이다.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전에는 더러운 성깔머리 죽이지 못하고 겁도 없이 길길이 뛰어댔었지만,
이젠 그런 것 다 뽑아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은 새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내 옛사람은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루를 열며 아버지를 부른다.
이 하루도, 이 한 주간도 새로운 피조물로 살겠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답게 화평케 하며, 화목을 조장하며, 평강을 전하는 사람,
그런 사람, 예수님의 사신이 되겠습니다.
성령 하나님 도와주셔서 이 일이 가능케 해주소서.
이런 기도로 하루의 첫시간, 한 주간의 첫날을 또 힘차게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