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와 질그릇
작성자명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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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8.08
보배(보물)는 소중한 것입니다.
세상을 돌고 돌아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렵게 구한 보배는 지키고 관리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것입니다.
투박하게 만들어진 보잘껏 없는 그룻입니다.
그래서 천하게 함부러 사용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7)
보배와 질그릇이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보배는 귀하기에 좋은 용기에 담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질그릇에는 하찮은 것을 담습니다.
누구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보배를 질그릇에 담았습니다.
질그릇에 눈길도 주지 않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릇 때문에 아니라, 보배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보배를 담던 상자에 돌을 넣었습니다.
보배 상자를 보고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 속에서 돌멩이를 본 순간 사람들은 돌아갔습니다.
그릇이나 상자보다 내용물이 더 중요합니다.
보배는 어디에 담아도 보배입니다.
질그릇에 넣어도 보배이고,
헝겊으로 싸도 보배입니다.
예수님은 보배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멋있고 아름다운 교회에서 생명의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교회가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8절)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 기가막힌 상황에서
답답한 일을 당한 힘든 상황에서도
보배이신 주님께서 계시면 그곳은 보배로운 곳이 됩니다.
핍박을 당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것은
보배이신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보배 때문에 사람들이 물러갑니다.
우겨쌈과 핍박, 거꾸러뜨림 속에서도
보배가 담겨져 있으면 존귀함은 결코 손상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것으로 치장을 해도 그 속에 보배가 없으면
굴러다니는 일개 포장 박스에 지나지 않습니다.
껍데기에서는 아무런 능력도 생명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12)
바울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고린도 교회에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무시당하는 답답한 상황을 여러 번 겪었고,
고린도 교회에서도 험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통해 생명의 역사가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존귀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존귀함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임명을 할 때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실 때 보배로운 사람이 됩니다.
내가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왕이 뽑아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내속에 담겨져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겨져 있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원합니다.
보배가 담겨져 있기에 복된 인생이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