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첫 환경
작성자명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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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8.07
고후 4:1-6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내용을 읽는다는 것이지만
사람에 따라 그 깊이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다른 내용을 가지고 사람들이 같이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 대화가 제각각이 되어
같은 내용도 서로 다른 내용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른 내용이 전혀 다른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같은 한 책에서 나온 같은 한 내용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그 한 내용이 서로 다른 내용이 되어버리는 것은
내용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읽는 사람의 깊이가 달라서이지요.
사람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은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마음에 품고 있는 그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며
그 생각이 다른 것은 처음부터 생각이 달랐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면서 보고 들은 그 환경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고
환경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김양재목사님의 말씀도 있습니다.
환경의 동물이란 말은
동물은 머리가 없으므로 환경이 시키는 대로 종처럼 이끌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며
또한 환경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말은
사람은 궁극적으로 환경을 만드는 주인이 아니므로 환경의 종이 될지언정 그 주인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환경의 주인인양
그 환경을 제 뜻대로 한번 고쳐보겠다고 덤벼들면서 주인행세를 하려고 든다면
그 주인행세는 얼마 못가서 결국 가짜라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환경의 진짜 주인이 가짜가 진짜처럼 행동하는 것을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어느 주인이, 주인도 아닌 것이 자기 코 앞에서 주인행세하는 그 가증함을 그냥 계속 내버려둔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 첫 환경으로 제일 먼저 그 자신에게 옷입혀지는 것은
그 부모도 아니요 그 나라도 아닌, 그 자신의 몸인 것이니
그 몸에서 나오는 생각이야말로,
그 밖에 다른 환경, 부모나 나라, 또는 교회 공동체가 주는 그 어떤 생각보다도 가장 우선되어야할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우선되어야할 생각이라는 것은
그 밖에 다른 생각, 그 어떤 세상의 전체적인 생각이라 할지라도 결코 그에 지지 말아야한다는 뜻이며
그 뜻은 또한 그 세상에 같은 사람으로써 같이 포함이 된 자신의 생각조차도 그 예외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각이란 자기 몸에서 나온 생각보다
세상에서 더 큰 몸, 더 큰 세력을 가진 다른 그 어떤 사람의 생각을 따라 더 동의가 되기 쉬운 것이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그 생각이라는 것도 자신의 생각이라기 보다,
자신이 따라간 그 어떤 사람의 생각, 곧 그 세상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그 어떤 사람, 그 어떤 세상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이라 여기고
직접 자기 몸에서 들려주는 그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무시해버린다면
아마도 그 목소리는, 자기 조차도 들어줄 수 없는
다른 사람, 다른 몸의 목소리인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 다른 사람, 다른 몸의 목소리가 왜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지...
그 붙어있는 목소리는 들어주지도 않는데 왜 늘 쉬지도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변함없는 소리를 내고 있는지...
참으로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이제는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볼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