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3장 14절에서 4장 6절을 보며 아무개를 묵상한다.
아무개가 다가왔다.
그는 기업무를 자였다.
보아스 보다 먼저 기업무를 권리가 있는 자였다.
하지만 그는 기업을 무르지 않았다.
자기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룻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아무개다.
새번역 성경에 보면, 아무개 라고 또렷히 기록되어있다.
반면에 보아스의 이름은 명확히 기재되어있다.
보아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쓰여져 있다.
아무개..
하나님 앞에 기록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
그 이름자 석 자를 올릴 이유도 필요도 없는 사람,
그래서,
그저 아무개로 통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다.
성경은 그렇다.
굳이 의미없는 사람의 이름을 적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무런 소용도 필요도 없는 사람의 이름을 쓰기엔 잉크가 아까운 까닭이다.
아무개를 보면서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 역시 하늘나라에서 아무개로 취급당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내 이름자 석 자 또박또박 기록되어 있을까.
하루를 살더라도,
한순간을 살더라도,
의미없는 삶을 살고싶진 않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아무개로 살고싶진 않다.
하나님이 카운팅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생명책에 이름자가 기록되어 있는,
그런 존재로 살고싶다.
오늘도 하루가 밝았다.
또 아버지를 부른다.
내 이름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여 주소서.
하늘나라 생명책에 단디이 기록해 주소서.
이렇게 또 아버지를 부르며 토욜의 새아침을 힘차게 연다.
오늘은 무척 무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