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성이 감정을 지배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는 말이 있다.
확인할 수 없어 정말인진 모르겠지만,
그만큼 어렵다는 말인 것만큼은 분명할게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감정이 동하면,
이제까지, 어제까지의 이성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우린 그렇게 살아왔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내 눈으로 본 적이 없다.
오늘 룻기 3장 1-13절을 보며, 역사가 시작된 이래를 묵상한다.
보아스는 달랐다.
감정에 이성이 지배당하지 않은,
감정을 지배하는 이성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래서 놀랍다.
밤에,
밤에는 정욕이 발동되기 쉬운 시간이다.
그것도 아무도 없는 밤에,
젊디젊은 여인이 자신을 유혹했다.
남자같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백에 아흔아홉은 다 넘어진다.
그게 남자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런 상황에서 넘어지지 않은 남자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보아스는 달랐다.
냉정하게 이성을 회복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일이니이까..
그것을 물었다.
대단하다.
보아스가 대단함에 놀라지만,
그런 보아스였기에 사용하신 하나님이심을 또한 깨닫는다.
그런 인물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만한 인격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어디 쓰시기나 하겠는가.
말씀을 묵상하는데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신다.
그게 보아스의 힘인줄 아느냐.
보아스는 어디 남자가 아니라더냐.
그건 하나님의 힘이었느니라.
성령 하나님이 붙들어주신 때문이었느니라..
그리스도인은 그렇다.
내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산다.
내힘으로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견딘다.
그래서 헤쳐나갈 수 있다.
그래서 견뎌나갈 수 있다.
이제 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제힘으로 이성이 감정을 지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오직,
하나님의 능력, 은혜, 그리고 도우심이 있을 때,
성령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을 때
그때 가능한 것임을 배운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하나님의 영에 붙들림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붙들어 주시면,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인 것을 또한번 깨닫는 금욜의 새아침이다.
오늘은 어제완 달리
비가 조금씩 내린다.
실낱같은 빗방울이 한점 두점 사박사박 떨어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