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애가 4장 1-10절을 보며, 죄의 권세를 묵상한다.
죄는 힘이 있다.
금이 빛을 잃게 하고,
순금이 변질되게 하며,
순금같은 보배로운 아들들이 토기장이가 만든 한낱 질항아리가 되게도 한다.
오늘 애가에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죄의 권세다. 죄의 힘이다.
세상을 살아보면 안다.
금이 빛을 잃는 것은 한 순간이며,
순금이 변질되는 것 또한 잠깐인 것을,
보배로운 그릇이 한낱 질항아리로 전락되고 마는 것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을 말이다.
죄를 지으면 그렇다.
당당하던 사람이 당당함을 잃게 되고,
아름답던 사람이 아름다움을 잃는다.
한순간이다.
한순간에 당하는 급전직하다.
죄의 힘이요 권세다.
죄의 능력이요 파워다.
돈 많은 것도,
인물이 잘난 것도,
그리고,
명예와 권세가 화려한 것도,
학벌이 찬란한 것도,
아무 소용이 없다.
죄를 지으면,
그래서 죄의 손아귀에 움키움을 당하면,
한순간에 몰락한다,
순식간에 끝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만다.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한순간에 빛을 잃고 만다.
죄의 권세다.
죄의 힘이요, 능력이다.
죄에게는 그런 파워가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혹, 알고 있기도 하지만 자주 잊어버린다.
그래서 당한다.
구원에는 세가지 시제가 있다고 한다.
구원의 과거적 의미는 죄의 형벌로 부터 건지움을 받은 것이고,
현재적 의미는 죄의 권세로 부터 건지움을 받고있는 것이며,
미래적 의미는 장차 죄의 존재 자체로부터 건지움을 받을 것이라 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이미 죄의 형벌인 죽음, 사망, 지옥에서 건짐을 받았으며,
장차 죽으면 죄의 존재 자체가 없는 천국에 갈 약속을 받았으나,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동안은,
죄의 권세로 부터 끝없는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땅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죄의 권세로 부터 계속적인 구원을 받고있는 사람이다.
매일매일 삶의 현장에서 죄와, 죄의 권세와의 전쟁을 치루고 있는 사람이다.
내 힘으론, 내 능력으론, 내 권세론 할 수 없으니
예수님의 힘, 능력,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여 싸우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고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도 하루가 밝았다.
죄의 권세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또 아버지를 부른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의 권세,
음란과 부정과 사욕, 악한 정욕과 탐심, 우상숭배의 권세,
그리고,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런 것들에 대한 유혹의 권세,
걱정과 근심, 염려와 불안, 긴장, 두려움,
분노와 원망, 적개심..
이 모든 악한 감정의 권세..
이 모든 권세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기도를 한다.
예수의 십자가에 꽝꽝 못을 박는다.
그 권세가, 그 능력이, 그 힘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그 힘으로 내목을 조우지 못하도록,
오늘도 예수 이름에, 예수님의 권세에 맡긴다.
그분의 이름을 의지한다.
그 이름으로 오늘 하루도 연다.
오늘, 7월의 아홉째날,
이 하루도 예수 이름의 권세로 죄의 권세를 능히 물리치게 해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또 아버지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