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일지 2019-08-09 금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 믿음으로 행함 / 담대하여 원하는 바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저도 우리에게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바울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사모하며 믿음으로 행합니다.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는 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각자 선악 간의 행위에 따라 보응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 나는 무엇 때문에 탄식합니까? 오늘 나에게 일어난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하며 예수생명으로 덧입혀지고 있습니까?(2~4절)
2. 나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에 요동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7절)
3. 나의 선택과 결정은 내 기쁨이 먼저입니까, 주님의 기쁨이 우선입니까?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구해야 할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9절)
#묵상합니다
이혼으로 떨어져 지내는 세 아들들이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보이지 않으니 일상에 빠져 하루가 그냥 지난 것을 알고 나면 더 그렇습니다. 큰 아이는 강원도 고성에서 직업군인으로 있다가 이 달에 나온다고 했고, 둘째는 킨텍스와 세텍, 경기도 여기 저기로 전시 광고 설치 철거 일하러 다닙니다. 셋째는 공황장애로 공익 판정 받았는데 인천 쪽 식품회사 일이 힘들것 같아 지리산 쪽에 최근에 다녀왔습니다. 가서 어찌 보였는지 그쪽 친구들이 서로 연락이 옵니다. 위로인지 응원인지 그저 안타까움인지 ... 감사할 뿐입니다. 그나마도 아이마다 소통이 다르니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모자람으로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졌지만 셋째와 휘문채플에서 만난 것으로 ...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1
셋째랑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씩 보나 했더니 벌써 여러주째 못보고 있습니다. 지리산 다녀와 통화하면서 이번 주일에 가려고는 하는데 ... 하며 말끝을 또 흐렸습니다. 살고 있는 인천에서 휘문채플에 오려면 가까운 거리는 아닙니다. 더운 날 오가며 양복 웃도리 등판이 허옇게 소금이 앉을 정도인 것을 압니다. 아빠랑 예배 끝나고 먹는 국수 맛있어서 온다고 말해주곤 합니다. 그럴 때면 밖에서 보지 못해도 괜찮으니 참된 예배의 구조 안에서 말씀의 가족으로 살기를 탄식하며 간절히 사모합니다. 하늘로 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2
인천이든 지리산이든 아이 가까운 곳에 우리 목회자세미나 오셔서 큐티하고 공동체 운영되는 교회를 이야기 하고 알아보려 합니다. 자주 보는 것에 욕심이 나지만 말씀 묵상에 더 욕심이 난다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저는 어제부터 해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욕심을 내는 것은 언제 부르시는 날이 올지 모르고 그 날에 세 아이와 제가 흩어진 가족으로 주님 앞에 서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3 생명의 주님이시니 함께 할 수 있는 때가 있으실 것을 말씀과 공동체에서 믿고 살아갑니다:4,5
저의 선택과 결정이 제 기쁨이 먼저인지 주님의 기쁨이 우선인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떨어져 지내는 상태를 보면 지금까지 제 기쁨을 위한 선택과 결정을 하며 산 것 같습니다. 아직 분별이 얼른 안되는걸 보면 말씀 묵상을 시작한지도 일천하고 몸에 익지도 않아서 입니다. 이제라도 제가 담대히 주님의 기쁨을 택하기를 원합니다:8 어제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 대해 이야기 했더니 아내가 '사람에 대한 관심이 좀 생겼나보네요?' 했습니다. 제가 항상 문제 해결, 철학과 기술, 미래의 흐름에만 관심이 있고 입에 담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안지 얼마 안되신 분들은 제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은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좀 지나면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시곤 합니다. 학교 다닐 때 이후로 퇴화해버린 마음이 돌아오면 좋겠습니다:9
#감사합니다
큐티페스티벌로 집을 비워 아이들 티격대는 소리가 천사의 소리인 것을 알게 하셔서
아내에게 저녁도 사고, 길도 잘못들었지만 청큐 글은 어찌어찌 될 것 같아서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막내동생이 여동생에 이어 어머니 하계위문공연 다녀와서
#적용합니다
묵상 내용을 세 아이들 단톡방에 복붙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떨어져 지내는 세 아들들과 말씀 안에서 다시 함께 사는 소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생각대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아이들의 어린 날을 곁에서 돌보지 못하고 이제야 안타까워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삶의 끊없는 요동 가운데 믿음으로 주의 뜻을 구하며 살고 그 날에 주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