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하기 왜 바울은 죽은 자를 잠자는 자라고 표현하는가?
■ 묵상하기
ampbull 고린도전서의 여러 구절에서 바울은 죽은 자를 잠자는 자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했다.
ampbull 바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험한 전도활동을 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 이 #039잠자는 자#039라는 한 단어에 함축되어 있는 것을 느낀다.
ampbull 나는 언제쯤 #039잠자는 자#039라는 표현을 할 수 있을까?
ampbull 내가 죽음을 깊게 생각하게 된 계가가 할아버지의 죽음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여러 죽음을 보았지만 무심했다. 고교시절 할머니가 돌아가신 일도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26세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 할아버지와 이 세상에서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대도시로 떠난 부모님을 대신해서 나의 양육을 맡으셨다. 나의 고집이 유난했을텐데도 할아버지는 단 한번도 나를 질책하신 기억이 없다. 할아버지가 떠나신 6개월후 아버지도 소천하셨다. 그리고 또 6개월 후 둘째형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이러한 연속적인 가족의 떠남이 나에게 근심이 되었다.
ampbull 죽음에 대해 근심하던 젊은 나에게 잠시 해답이 주어졌다. 당시 수학여행갔던 학생들이 철길건널목 사고로 많이 죽었다. 축소판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 때 어떤 신문의 사설에서 #039황진이가 영원히 죽지않고 강남 룸싸롱에 나타난다#039면 좋겠냐는 단순한 표현이었지만 그 표현이 나에게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죽음은 세대간 바톤터치이며 반드시 있어야할 사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ampbull 그런데 결혼을 하고 가족이 늘어나니 또다시 죽음의 문제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딸들의 안위가 늘 근심되었다. 교회를 다녀도 죽음의 문제만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ampbull 그런데 우리들교회에서 양육받고 모든 공식예배를 참석하면서 죽음에 대한 근심이 서서히 해소되기 시작했다. 부활이라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ampbull나의 믿음이 아직 어느정도인지 그 수준을 나 자신도 잘 모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정도가 나의 믿음에 대한 척도가 아닐까싶다. 그런데 최근들어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ampbull 나의 믿음의 척도가, 아직은 #039잠자는 자#039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고린도전서를 묵상하면서 바울이 #039잠자는 자#039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고린도전서 큐티를 하면서 바울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있음도 새롭게 발견하였다. 나중에 나도 #039잠자는 자#039가 되고 그 잠에서 깨어 바울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어진다.
■ 적용하기
고린도전서를 묵상하면서 #039잠자는 자#039를 알게 된 것에 감사하며, 계속 이러한 결실을 맺는 큐티를 하겠습니다